[詩想과 세상]비행하는 구름들
기자 2024. 6. 16. 20:38
귓속에 빗소리가 가득 찬 새벽
몸 안에는 노래를 부르다 죽은 가수가 떠밀려 와
나는 종종 깨어나 가수의 마지막 노래를 이어 부르지
죽은 가수의 노래는 날마다
동시대에 살지 않았던 사람의 목청으로 새롭게 불리고
교실 창밖으로 날린 수천개의 비행기 중 하나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한 수풀에서 날개를 회복한다
햇빛이 공처럼 날마다 창문으로 날아와
베개에 피어오르는 꿈의 먼지
매일 가장 어린 새와 가장 늙은 새가
서로의 영혼을 뒤바꾸는 아침
어린 새가 첫 비행을 시작하자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지고
비가 내린 뒤에 세탁된 구름들
골목을 빠져나온 아이들의 떠들썩한 소리
언젠가 사라질 얼굴을 티셔츠 안으로 넣자마자
모든 공기가 나를 새롭게 통과한다
강우근(1995~)
잠의 깊은 계곡에서 빗소리를 들었다. “귓속에 빗소리가 가득 찬 새벽” “죽은 가수”의 가느다란 노래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시인은 그 노래의 끝을 이어 부르다가 문득 오래전 “교실 창밖으로 날린” 수많은 “비행기 중 하나”를 떠올린다. 깊은 숲속에 떨어진 그 비행기는 간신히 날개를 일으켜 날아갔을 것이다. 하늘에 작은 비행운을 만들면서.
꿈에서 깨어나는 아침, 노래는 새가 된다. 다시 꾸는 꿈이 된다. “어린 새가 첫 비행을 시작”하자 구름이 밀려온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이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지”는 아침. 어린 새는 작은 섬이 된다. 파도가 된다. 구름이 된다. 그런 아침은 신비로 가득하다. “가장 어린 새”와 “가장 늙은 새”가 “서로의 영혼을 뒤바꾸”니까. 세상에서 사라져 버릴 “얼굴을 티셔츠”에 넣자 “모든 공기가 나를 새롭게 통과”해 간다. 파도를 타는 어린 새의 첫 비행처럼.
이설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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