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세상]아예 공영방송법을 따로 만들자

기자 2024. 6. 1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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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영방송사들은 어떤 의무를 지고 있을까? 놀랍게도 법에 규정된 의무로는 공직 선거 출마자들의 방송 연설과 토론을 무료로 방송해주는 것 외에는 없다! 사실, 방송법 등 방송관련법들에 ‘공영방송’이란 말 자체가 전혀 안 나온다. 엉뚱하게도 공직선거법만이 공영방송사가 선거방송 의무를 진다면서 그것들이 KBS와 MBC에 해당한다고 적고 있을 뿐이다.

방송법은 KBS를 ‘국가기간방송’이라고만 칭한다. 기간(基幹)이란 으뜸이나 중심이 된다는 뜻으로 구체성이 떨어지는 용어다. 방송법상으로 이 ‘으뜸 방송’의 설립 목적은 “공정하고 건전한 방송문화를 정착시키고 국내외 방송을 효율적으로 실시”한다는 것으로 매우 상투적이다. 이 ‘중심 방송’에 주어진 책임은 “공정성과 공익성” “지역적 다양성” “양질의 방송 서비스” 등으로 동어반복적이고 추상적이며, 민영방송에 기대하는 바들과 별다르지 않다. EBS의 법적 정체성은 더 모호하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는 이 방송사가 텔레비전·라디오·위성 등을 이용해 ‘교육 방송’을 하라고만 돼 있다. 교육 방송이 무엇인지, 다양한 교육적 내용을 서비스하는 민영 방송들과 어떤 차이를 둬야 하는지 알 수 없다. MBC는 아예 회사 이름조차 관련법들에 안 나온다. “방송문화진흥회가 최다출자자인 방송사업자”일 뿐인 MBC는 SBS와 같은 지상파 방송의 하나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공영방송은 어쩌다 생겨나지만, 그래도 사후적 의미 부여는 건전한 생존에 필수다.

한국 공영방송의 정체성이 명확하지 않으니 내·외부의 누구든 자신이 생각하는 바가 공영방송이라고 쉽게 주장한다. 그래서 모든 잘잘못은 상대적인 게 돼버리고 결론 없는 논란만 지속된다. 결국 그간 해오던 것들이 곧 정체성이다. 권력도 그간 해오던 관행이나 암묵적 권한으로, 그리고 나름의 공영방송론으로 장악에 나선다. 민주당의 이른바 ‘방송 3법’(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일부 개정안도 정체성의 총론 없는 각론이다. 나는 정치권의 지분을 줄이자는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독립성과 경영 합리성이 보장될 것 같지는 않다. 법적 토대가 약한 상태에서 어떤 제도도 정권이 작심하고 각종 기존 법을 악용하고 나설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현실에서 생생히 보고 있다. 이사가 21명이나 되는 방송사에서 효율적 경영 논의가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방송법을 전면 개정하고 공영방송법을 따로 만들어 공영방송 정의와 역할, 공적 지위, 독립성 보장 등을 명확히 할 때가 됐다. 아날로그 시절인 2000년에 만든 현 방송법의 화두는 (모든) 방송의 “자유와 독립”이다. 방송법상으로 (모든) 방송은 “시청자의 권익 보호” “민주적 여론형성” “국민문화 향상 도모”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해야 한다. 모두가 같은 목표와 의무, 평가 체계를 갖는다면 공영방송만 따로 더 할 것도, 특별히 보호받을 것도 없다. 지난 20여년간 정신 없는 미디어 변화상을 일부 조항 개정 방식으로 난개발하며 버텼다. 이제 누더기 조항 개정이 아닌 패러다임 전환을 해보자. 공영방송에 어떤 역할을 맡길지 먼저 결정해야 다른 방송(전자미디어)에 대한 규제도 시대에 맞게 개선할 수 있다.

공정성 파업의 정당성, 부당 해임 방지, 제작 자율성 등 그간 법정에서 다퉈온 이슈들도 법적 근거로 탄탄히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차별화된 법적 토대가 없다면 공영방송은 수도, 전기 등을 서비스하는 일반 공공기관의 하나로 취급되거나(KBS) 상법상 주식회사로만 이해돼(MBC) 정권 개입이 정당화되거나 그것을 막기 어렵다. 종사자도 권력도, 법원도 현 패러다임에서는 무한 미디어 시대 공영방송의 차별성을 인지하고 구현해 내기 어렵다. 지금 한국에서 법적으로 공영방송은 없다. 다만 방송만이 있을 뿐이다.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강형철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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