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6·25전쟁 이후 국민 생선이 된 멸치

기자 2024. 6. 16.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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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인의 식생활과 가장 밀접한 생선을 꼽으라면 멸치가 단연 으뜸이다. 멸치는 한국인의 기본 반찬인 김치를 담글 때는 물론이고, 다양한 음식의 국물을 만들 때 두루 쓰인다. 삶아 말린 것을 볶아서 먹거나 찜 같은 음식에 부재료로 넣기도 한다. 멸치가 많이 잡히는 바닷가 마을에서 맛보는 회무침 또한 뭇 사람의 입안에 군침이 돌게 한다.

이렇듯 한국인이라면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하는 게 멸치이지만, 사실 멸치가 우리 밥상을 ‘점령’한 세월은 오래되지 않았다. 멸치와 관련한 속담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조선 후기 학자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멸치에 대해 설명하며 “별로 가치가 없어 한자로 ‘업신여길 멸(蔑)’ 자를 써서 ‘멸어’라 부른다”고 했다. 또 “급한 성질 탓에 물 밖으로 나오면 금방 죽는다는 의미에서 ‘멸할 멸(滅) 자’를 쓰기도 한다”고 했다. 다만 우리 바다에서 워낙 많이 잡혀 일반 백성이 그나마 쉽게 맛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옛 문헌에 나온다.

멸치가 우리 식생활에 널리 퍼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우리는 소고기나 닭고기 등으로 육수를 만든 반면 불교의 영향으로 육고기를 멀리한 일본은 생선으로 육수를 만들어 썼다. 그러한 음식문화는 소고기나 닭고기 등을 구하기 어려운 우리네 서민들에게도 빠르게 퍼져 갔다. 게다가 일본은 우리 바다에서 많이 잡히는 멸치로 기름을 생산하고 남은 찌꺼기는 사료용으로 썼다. 이로 인해 멸치는 금방 한반도에서 가장 중요한 어족 자원이 됐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해 물러가면서 멸치 어업은 위기를 맞았다. 이때 새 활로가 된 곳이 우리 군대다. 값싸고 영양분 많은 멸치는 군대식량으로 제격이었다. 이후 6·25전쟁으로 삶이 황폐해진 서민들 사이에서도 멸치가 유용한 먹거리로 자리 잡으면서 이제 ‘국민 생선’이 됐다.

멸치는 ‘며르치’ ‘메루치’ ‘멜따구’ ‘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하지만 표준어는 멸치뿐이다. 고깃집에서 양념장으로 내놓는 ‘멜젓’ 역시 ‘멸치젓’이 바른말이다.

엄민용 <당신은 우리말을 모른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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