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감당 못해 줄폐업 악순환 위기… ‘옥석’ 가릴 기회 삼아야 [심층기획-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

이도형 2024. 6. 16.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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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자 비중 24%… OECD국 중 6위
2023년 개인사업자 폐업률 9.5%로 증가
서울 2024년 1분기 외식업체 5922곳 폐업
정부, 사업단계별 맞춤형 채무조정 등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서 구체안 제시
학계 “구조조정에 초점 맞춰야” 지적
579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당장 구조개혁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치는 것은 고금리·고물가에 따른 내수 회복 지연에 빚을 감당하지 못한 채 줄폐업이 이어지고 있는 현실과 무관치 않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상공인에게 어려운 이 시점이 역설적이게도 정책 당국에는 ‘옥석’을 가릴 기회”라고 했다.

정부도 자영업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한편 생계 탓에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나서는 비자발적 창업을 최대한 방지한다는 방침이다. 구체적으로 폐업을 지원하되 임금근로자로 다시 일할 수 있도록 취업을 연계·지원하는 등의 방안이 거론된다.

13일 서울 중구 중앙시장에서 만난 중고 주방용품 판매업체 관계자는 “자영업자 폐업률이 높다는 얘기가 실감된다”며 “올해 들어 대형 냉장고 등 주방기기가 중고로 많이 나와 새 제품 가격까지 10%가량 떨어졌다”고 전했다.

1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사업자의 폐업률은 9.5%로 전년 대비 0.8%포인트 상승했다. 폐업자 수도 91만1000명으로 11만1000명 늘었다. 폐업 증가는 그만큼 매출이 부진하다는 얘기다.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주로 이용하는 IBK기업은행의 개인사업자 카드 매출 증감을 분석한 결과 2022년 ‘플러스’에서 지난해 ‘마이너스(-)로 돌아섰는데, 지난해 12월엔 전년 동기 대비 -6.4%에 이르렀다.

◆서울 폐업한 음식점 ‘6000’곳 육박

올해도 추이는 꺾이지 않고 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5월 고용원을 두지 않은 1인 카페 사장 등 이른바 ‘나홀로’ 자영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1만4000명이 감소했다. 임금근로자를 포함한 전체 취업자가 8만명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서울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지역에서 폐업한 외식업체는 5922개로 작년 동기보다 2.9% 늘었다.

소상공인의 생활 안정과 노후 보장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운영하는 노란우산 공제에서 폐업 사유로 지급한 공제금 건수는 연초부터 지난달 말까지 5만2283건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보다 7.83%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폐업 공제금은 11만15건으로 사상 처음으로 10만건을 넘었고, 공제액도 1조원을 웃돈 바 있다.

폐업하고 나면 당장 대출금을 죄다 상환해야 하는 탓에 자구책으로 휴업을 택하는 자영업자도 적잖다. 강원의 한 관광지에서 숙박업을 하는 박모씨는 “소상공인 대출을 유지해야 하거나 폐업 후 갚아야 하는 탓에 대신 휴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주변에 많다”고 전했다.

◆“턱밑 전 ‘가슴’에서 끌어내야”

정부가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 마련에 서두르는 이유는 이런 배경에서다.

먼저 금융위원회는 관련 정부기관, 민간단체와 함께 ‘서민·자영업자 지원방안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대책을 준비 중이다. TF는 지원방안을 크게 취약계층의 경제적 자립 근본적 제고, 사업단계별 맞춤형 채무 조정, 금융지원 강화 등 3가지로 나누어 검토하기로 했는데 주목되는 부분은 채무 조정이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지원책이 될 수 있어서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턱밑’이나 ‘코앞’까지 물이 차오르는 것이 연체라면, ‘가슴’까지 차올랐을 때 끌어내야 한다”고 비유했다. 문제는 채무 조정의 대상을 어디까지 허용해주느냐다. 자칫 도덕적 해이라는 비판이 직면할 수도 있다.

정부는 이러한 방안을 포함해 다음달 있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구체적인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 폐업을 위한 ‘출구전략’ 등이 구체적으로 담길 것으로 관측된다. 임금근로자 취업 유도는 폐업 지원안과 함께 연계돼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 사업 유지를 원하는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현금 지원은 최소화하되 경영 효율화를 위한 기술 지원 등 경쟁력 제고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예측된다. 가령 인건비를 직접 지원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키오스크 도입을 돕는 식이다.

◆학계 “자영업자 구조조정 기회로”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중은 2021년 기준 23.9%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위로 경제 규모에 비해 과도하게 높은 편이다. 이에 학계에서는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은 ‘지원’만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 제기돼왔다. 임금노동자 전환이나 부실 사업장 정리와 같은 ‘구조조정’에도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석 교수는 “자영업자의 사업성을 선별하는 건 정부가 하기보다는 직접 금융거래를 해서 신용상태를 잘 아는 금융사들이 나서는 게 바람직하다”며 “‘옥’을 구별하는 것은 ‘금융회사’가, ‘석’에 대해 정부가 지원을 나서는 투 트랙이 적합하다”고 조언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정부가 폐업을 원하는 자영업자에 보조를 해주고 재취업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도 “코로나 시기에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빚을 진 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은 사회가 책임져야 할 필요가 있다”며 “‘옥석’을 가리는 기준은 재무제표나 금융기관 등이 그동안 가져온 기준을 고루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도형·채명준·이예림 기자, 세종=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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