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노숙인들, 그 가장자리를 찾는 상담원 [6411의 목소리]

한겨레 2024. 6. 16.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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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홈리스에게 외국인으로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다. ♣️H6s필자 제공

김용극 | 홈리스 아웃리치 상담활동가

햇수로 7년째이다. 나는 ‘홈리스’를 상대로 거리에서 상담 활동을 한다. 거리의 노숙인은 정보 접근성이 떨어지는 탓에 적극적으로 먼저 찾아가 도움을 주는 아웃리치(outreach) 봉사활동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들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관련 업무를 하는 분들과 노숙인의 간격을 체감상 좁혀나가는 매개 노동이 필요하다. 아웃리치 상담원들이 공식적으로 하는 일은 거리에서의 위기 상황 발견 및 조치, 시에서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나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이용과 관련된 정보 안내 등이다.

아웃리치 상담 활동가는 다양한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서울역 인근은 특히 그렇다. 그곳엔 비단 우리 국적의 노숙인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 출신의 노숙인이 제법 많다. 소위 ‘코리안 드림’이라는 꿈을 안고 한국에 찾아온 이들이다. 그들 중 일부는 녹록지 않은 현실과 싸우다 이슬 피할 곳조차 찾지 못해 노숙 현장으로 내몰린다.

상담 활동을 처음 시작했을 즈음, 재일동포 출신의 여성 홈리스를 만났다. 한국어로 소통이 되지 않는 분이었다. 일천하지만 일본어 회화가 가능했던 내가 통역 및 상담을 맡게 되었다. 그녀는 재외국민 신분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영주귀국을 원하고 있었다. 70대의 고령이었고, 여권을 비롯해 본인을 증명할 어떤 신분증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일본으로 되돌아가기 싫어서 찢어버렸다고 했다. 귀국을 거듭 권유했지만, 끝내 거절하였다. 자기증명을 훼손하기까지 수많은 고통이 그녀를 관통하였을 것이다. 본인 결심대로 영주귀국 절차를 도울 수밖에 없었다. 경찰의 도움으로 지문을 찍어 신분 확인을 했고, 찢어버린 여권은 분실신고했다. 신분증 재발급을 위해 주민센터를 오가고, 외교부 여권과를 드나들며 제반 서류 작성을 도왔다. 임시 주소지를 노숙인종합지원센터 쪽으로 옮기고 기초생활수급자 지정을 위해 주민센터 상담 통역을 하였다. 다행히 영주귀국이 확정되었다. 수급자로 지정된 뒤에는 주민센터 사회복지담당 공무원을 통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왔다.

최근에는 일본 국적의 한 남성 노숙인을 만났다. 한류의 영향이었을까. 그는 한국 생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같은 것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언어 소통이 되지 않은 탓에 무언가를 시도하기가 쉽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귀화하지 않은 순수 일본인이었으므로 인도적 차원의 지원 외에 제도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전무했다. 그분에게 자신이 처한 상황에 관해 설명했다. 일본대사관을 통해 귀국을 권유하는 것 외에는 달리 도울 방법이 없다고. 안타까워하며 상담하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세금 한푼 안 내는 외국인 노숙자를 왜 그렇게 도우려고 해요?” 나는 그 말에 내가 가진 믿음을 들어 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도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그저 나그네 같은 존재들이었을 테니까요.”

외국 국적의 홈리스들은 이 땅에 온 나그네 중 나그네라고 할 수 있다. 거리에서 발견된 위기 상황을 보고도 그냥 넘어가는 것은 아웃리치 상담 활동가에게는 직무유기와 같다. 국적을 막론하고 이야기를 경청하고, 도울 수 있는 길을 알아보고, 이에 관한 정보를 동원해 도와야 한다. 결국 이 일본인 남성 홈리스는 귀국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찾겠다며 나와의 인연을 일단락 지었다. 그의 선택을 지지하며 상담을 끝마칠 수밖에 없었다.

7년여간의 활동 속에서 수없이 많은 홈리스의 삶과 죽음을 목도해왔다. 그 다난한 삶과 조용한 죽음 속에는 그들이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 삶에 대한 의지, 살아가고자 했던 열망이 숨겨져 있다. 홈리스 현장의 최전선을 담당하고 있는 나 같은 아웃리치 상담원들은 거리의 일터로 나서며, 그 의지와 열망이 밀려난 가장자리를 찾아서 활동한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에게 삶을 향한 충동들을 발견하며, 이를 다시 세상에 나아가는 데 사용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돕는다.

밝은 곳이 아닌 어두운 곳으로, 주인공이 아닌 나그네들이 사는 곳으로, 국적과 성별, 건강과 나이가 다른 이들이 끝내 밀려난 곳으로, 나는 또 다른 나그네를 찾아 나선다. 가장자리의 가장자리를 향해 나아간다.

♣️H5s※노회찬 재단과 한겨레신문사가 공동기획한 ‘6411의 목소리’에서는 일과 노동을 주제로 한 당신의 글을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12장 분량의 원고를 6411voice@gmail.com으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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