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상과실치상죄는 왜 발생하는가 [세상읽기]
류영재 | 의정부지방법원 남양주지원 판사
많은 작업 현장에서 주의의무 위반이 발생한다. 법규나 교과서에는 작업장에서 지켜야 할 수많은 주의사항들이 적혀 있지만 실제로 모두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다. 주로 비용 절감과 비효율성 때문에 그렇다. 주의사항들을 모두 지키기 위해선 돈과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이를 갖추기가 쉽지 않다. 주의사항들을 모두 지키지 않아도 그것이 당장 인명을 해하는 사고로 이어지지 않는다. 백이면 백 사고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데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은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주의의무를 위반하는 흐름은 업계 관행으로 굳어지고, 관행을 개인이 뒤집기는 어렵다. 오히려 관행에 익숙해지고 방심하게 된다. 그리 위험하진 않을 것이라 믿게 된다.
익숙함 속에서 위험한 관행은 결국 사고를 낸다. 두 사람이 해야 하는 사다리 작업이 단독 작업으로 실시되는 관행 속에서 사다리가 흔들리고 사람이 떨어진다. 안전화와 안전장갑을 착용하고 신중히 진행해야 하는 화학물품 운반 작업이 단순 물품 운반 작업으로 실시되는 관행 속에서 화학물질이 사람 몸에 쏟아진다. 삼킴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 사람의 음식 섭취는 요양보호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 하는데, 요양보호사가 한번에 여러 사람들에게 간식을 나눠주는 관행 속에서 간식을 잘 삼키지 못한 사람이 질식에 이른다. 인화성 물질 도포 작업과 용접 작업은 충분한 시간차를 두고 진행되어야 하는데, 두 작업이 동시에 또는 연이어 진행되는 관행 속에서 용접 과정에서 튀긴 불씨가 인화성 물질을 타고 번져 온 건물을 태워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친다. 작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사고는 이렇듯 ‘지금까지 아무 일 없었는데’ 갑자기 발생하고, 사고를 일으킨 사람의 주의의무 위반도 사소하다. 사소하지만 위험한, 관행이 된 주의의무 위반이 인명피해로 이어지면 위반한 사람에게 ‘업무상과실치사상죄’가 성립한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는 주의의무 위반, 즉 과실을 처벌하는 몇 안 되는 범죄 중 하나다.
업무상과실치사상죄에 대한 재판에선 흔히 피고인의 당혹과 억울을 마주하게 된다. 인명피해를 의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실의 정도도 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그 주의의무 위반이 업계의 관행이었고, 관행을 자신만 거스르기가 어려웠으며, 관행을 벗어나 원칙을 따르다가는 과다하게 늘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게 될 상황에서 발생한 사고라면 당혹과 억울은 피고인뿐 아니라 업계 전반으로 퍼지게 된다. 남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재판을 하는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다. 순전히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기엔 굳어진 관행과 관행을 유발시키는 불합리한 사회구조의 책임이 눈에 밟히기 때문이다. 특히 기회비용의 관점에서 주의의무를 충분히 기울일 수 있는 구조와 안전한 작업 환경을 만들지 않은 채 주의의무 위반만을 처벌한다고 업계의 위험한 관행이 사라질 리 없다.
최근 파킨슨병 환자에게 병력을 확인하지 않고 구토억제제인 ‘맥페란’을 투여하여 부작용을 발생시킨 의사에 대해 금고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맥페란이 구토억제제로서 광범위하게 투여되는 약물인 만큼 의료계에서는 맥페란 투여 시 의사가 부담하는 주의의무의 정도와 내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 지켜야 할 주의의무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과다한 방어진료를 부르게 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판사로서 확정되지 않은 판결에 대해 말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해당 판결 사안을 모든 맥페란 투여 상황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사법은 이미 의료행위의 본질적인 위험성을 인지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 의사가 내린 판단에 대한 의료 재량을 인정하며 의료행위와 결과 간 인과관계를 엄격히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판결을 둘러싼 많은 목소리들을 들으며, 이는 비단 의료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업무상과실치상죄 전반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유발하는 근본적인 원인, 즉 위법한 관행을 지울 수 있도록 합리적인 구조와 안전한 작업환경을 구축하는 대신 불합리한 구조는 내버려두고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만 형사책임을 지우는 쉽고 값싼 방식 아래에선 사법과 업계의 대립만이 계속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정작 업무상과실치상죄를 줄이는 데에는 기여하지 못할 것임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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