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중재에도 서울대병원 "교수 절반 휴진"… 의료 파국 '갈림길'
국회 복지위·서울의대 교수 회동도 '빈손'
의협 '증원 재논의' 요구안에 정부 "불가"
정부 "병원 피해 구상권 청구 요청" 강수
서울대 의과대학 및 서울대병원 교수 가운데 절반가량이 17일 무기한 휴진에 나서기로 해 120일 가까이 지속된 의료 사태가 중대 위기를 맞았다. 환자단체가 휴진 철회를 호소하고 국회가 중재에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서울대병원 휴진은 18일 대한의사협회(의협) 휴진과 다른 대학병원 교수들의 집단행동에도 영향을 미치는 탓에 정부는 상황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만 의료계 내부 반발과 환자단체 등의 거센 비판에다 의협이 전공의단체와 불협화음을 빚는 등 응집력이 떨어져 휴진 장기화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서울대병원, 집단 휴진 확산의 도화선 되나
16일 서울대 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오후 8시 기준 서울대병원,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강남센터 등 4개 병원에서 17일부터 22일까지 6일간 외래진료를 휴진 또는 축소하거나 수술 일정 등을 연기한 교수는 529명이다. 전체 교수 1,475명에서 필수의료 분야 및 기초의학교실 등을 제외한 967명 중 54.7%다. 수술실 가동률은 62.7%에서 33.5%로 반토막 날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장이 휴진을 불허하고 병원 직원들은 예약 변경을 거부해 교수들은 비대위 도움을 받거나 직접 환자에게 연락해 진료 일정을 비웠다. 분당서울대병원 노동조합 관계자는 "진료 취소·연기를 문자로만 안내한 경우도 있어 이를 모르고 내원하는 환자가 적지 않을 것"이라며 "큰 혼란이 벌어질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이날 서울대 의대 교수 비대위와 서울대병원 집행부를 잇달아 만났지만 '휴진 철회'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비대위는 △전공의 행정처분 완전 취소 △의정 간 상설 협의체 구성 △의대 증원 논의 시 의료계와 협의 등을 요구했고, 복지위 의원들은 원론적으로 공감을 표했다. 회동에 참석한 한 의원은 "첫 만남이라 당장 휴진 철회를 설득하기보다 교수들 의견을 경청했다"며 "앞으로 국회 차원에서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답을 드렸다"고 설명했다.
서울대병원 휴진은 의사계 집단 휴진 확산 여부를 가늠할 분수령이 될 수 있어 정부와 의료계 모두 긴장하고 있다. 휴진 참여율이 높으면 오는 27일부터 무기한 휴진을 선언한 세브란스병원을 비롯해 서울아산병원과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등 주요 대학병원들의 무기한 휴진 움직임에 불이 붙을 가능성이 크다.
의협도 △의대 증원 재논의 △필수의료 패키지 쟁점 사안 수정·보완 △전공의·의대생에 관한 행정명령 및 처분 소급 취소 등 '3대 대정부 요구안'을 내놓고 18일 이후 무기한 휴진을 포함한 전면전에 나서겠다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내년도 의대 증원은 이미 끝났고 전공의 처분 소급 취소는 그간 조치를 무효화한다는 뜻이라 정부 입장에서는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안이다. 보건복지부는 "불법적인 전면 휴진을 전제로 정책 사항을 요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거부했다.
내부 불협화음에 휴진 장기화 어려울 듯
17, 18일 집단 휴진은 기정사실이 됐지만 사태가 장기화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개원의들은 휴진 시 수익 저하 때문에 병원 문을 오래 닫기 힘들다. 맘카페와 지역커뮤니티에는 '휴진 병원을 불매하겠다'는 글도 올라온다. 전공의 복귀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환자 생명을 볼모로 '제자 보호'를 주장하는 대학병원 교수들을 향한 비판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분만병의원협회, 대한아동병원협회, 거점뇌전증지원병원협의체 등 의료계 내부에서 휴진 불참 선언도 잇따랐다.
의협도 임현택 회장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대위원장 간 내홍을 겪고 있어 의사계 응집력은 더 약해지고 있다. '의협이 단일화된 소통 창구'라는 의협 주장에 박 비대위원장이 "합의한 적 없다"고 선을 긋자, 임 회장이 일부 전공의가 모인 대화방에서 "전공의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글을 올린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었다.
정부는 집단 휴진이 의료법 15조에서 금지한 ‘정당한 사유 없는 진료 거부’에 해당한다고 보고 엄정 대응할 방침이다. 병원에 손실이 발생할 경우 병원장에게 구상권 청구를 요청하고, 집단 진료거부 사태를 방치하면 건강보험 급여비용 선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의료대란을 막기 위해 중증응급질환별 전국 단위 순환당직제, 국립암센터 및 공공병원 병상 최대치 가동, 진료지원 간호사 수당 지급, 환자 피해 집중 지원 등 비상대책도 내놨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료계가 무리한 요구를 거두고 의료개혁의 주체가 돼 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정신 못 차린 밀양 성폭행 가해자…"이왕이면 잘 나온 사진으로" | 한국일보
- “소변 받아먹어”… 90대 요양환자 학대한 80대 간병인 | 한국일보
- 이승기 측, 장인 '주가조작' 무죄 파기에 "결혼 전 일...가족 건드리지 말길" | 한국일보
- '음주 뺑소니' 김호중, 한 달여 만 피해 택시기사와 합의 | 한국일보
- 습기찬 노란 물…부부가 음식점에 놓고 간 페트병 정체에 '충격' | 한국일보
- "살던 집에서 매달 122만 원 따박따박"... '자식보다 효자' 주택연금 | 한국일보
- [단독] "돼지 먹일 사료도 없다"... 북한군 내부 문건에 담긴 굶주림 실태[문지방] | 한국일보
- 희소병 아들 엄마 "'못 고치는 병'이라 뒷전... 사지로 몰리고 있다" | 한국일보
- 김원희, 입양 고민했던 아동 비보에 "천국에서 만나자" | 한국일보
- 예약·주문·결제 전부 휴대폰으로… 식당 이용 소외당하는 고령층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