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방’을 내국인이 줬다면 [한겨레 프리즘]

조혜정 기자 2024. 6. 16.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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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5일(현지시간) 우즈베키스탄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인 고도시 사마르칸트 공항에 도착해 아리포프 우즈베크 총리와 대화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조혜정 | 정치팀장

“직무관련성이 없으면 청탁금지법상 당연히 신고 의무가 없고, 직무관련성이 있으면 대통령기록물법이 적용돼 당연히 신고 의무가 없다.”

지난 12일, 김건희 여사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 조사 종결’을 알리며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이 내놓은 이 설명은 몇십번을 읽어도 뒤통수가 얼얼하다. 아마 누군가는 “어머, 이렇게 기똥찬 순환논리라니!”라며 무릎을 쳤을 거다. “청탁금지법엔 배우자 제재 조문이 없다”는 김 여사 조사 종결 근거도 말은 그럴싸하다.

청탁금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9조 2항은 ‘공직자는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하면 이를 소속 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금품은 되돌려주거나 소속 기관장에게 인도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신고하지 않은 공직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22조)을 받을 수 있다. 한편, 대통령기록물법 2조는 ‘직무와 관련해 외국인에게 받은 선물’도 대통령기록물로 정하고, 3조는 이를 국가 소유로 규정하고 있다.

정 부위원장의 설명을 다시 요약하면 이렇다. ‘윤 대통령이 신고를 했는지 안 했는지는 따질 필요가 없고, 직무관련성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윤 대통령 부부는 처벌할 수 없다.’ 권익위는 최재영 목사가 외국인이라는 점에 근거해 이렇게 결론 내렸다. 하지만 설령 내국인이라 해도 달라졌을 것 같진 않다. 대통령기록물법상 내국인 선물은 ‘국가적 보존 가치’가 있어야 대통령기록물로 인정하지만(2조), 이 가방이 ‘여성미를 강조한 뉴 룩으로 세계 패션사에 한 획을 그은 78년 전통 프랑스 명품 브랜드의 작품’이라며 보존 가치가 있다고 우기면 그뿐이니 말이다.

“청탁금지법은 처벌하기 위한 법이 아니라, 거절하기 쉽도록 매뉴얼을 제공하는 법”(2017년 9월22일 한겨레 인터뷰)이라는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의 설명에 비춰보면, 정 부위원장의 논리는 정해놓은 결론에 들어맞는 법조문만 가져다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하다. 김 전 위원장은 청탁금지법 입법을 제안한 이다.(‘스폰서 검사’ ‘벤츠 검사’를 막자는 취지로 청탁금지법에선 직무관련성을 따지지 말자고 했으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바뀌었다.)

이 법 1조도 “공직자 등에 대한 부정청탁 및 공직자 등의 금품 등 수수를 금지함으로써 공정한 직무수행을 보장”하는 게 목표라고 못박고 있다. 배우자의 금품 등 수수 신고 조항 역시, 미신고 시 처벌이 아니라, “누가 내 배우자를 통해 공직자인 나한테 금품을 줬다”고 소속 기관에 알리고, 받은 금품은 당사자에게 되돌려주거나 소속 기관에 인도하면 그만인 일종의 ‘면책조항’이 우선순위다.

게다가 명품 가방을 준 당사자인 최 목사가 이 일을 ‘청탁 시도’라고 강조하며 “사건의 본질은 (김 여사가) 대통령 권한을 이용하고 사유화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2022년 7월10일 김창준 전 미국 연방하원의원을 “대통령 내외분이 함께 접견”하자는 최 목사의 제안에 김 여사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라고 하겠다”고 답하는 등 명품 가방 선물과 윤 대통령의 직무관련성을 의심할 만한 카카오톡 메시지도 공개된 바 있다.

그렇다면 권익위는 ‘처벌 여부’가 아니라, 왜 김 여사가 명품 가방을 받게 됐는지, 윤 대통령은 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부터 살폈어야 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최 목사 조사는 하지도 않았고, 다른 조사도 “일절 답변할 수 없다”고만 했다.

권익위의 유철환 위원장과 김태규·박종민 부위원장은 판사, 정 부위원장은 검사 출신이다. 유 위원장은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대 동기, 정·박 부위원장은 후배이고, 김 부위원장은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 지지 활동을 했다. 누구보다 법을 잘 아는 법조 엘리트들이 어떤 목적으로 상식에 반하는 결론을 만들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법비’(법을 악용해 사적 이익을 취하는 이들)라는 단어가 입속에 맴돈다.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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