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 50억 넘으면 살인죄와 형량 같아…"CEO를 중범죄자 취급"

강경민/김익환 2024. 6. 16.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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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포커스
경영자 운신 좁히는 악법, 배임죄
적용 범위·기준 모두 모호하고
손해발생 '위험'만으로도 기소
미국·영국 등 배임죄 규정 없어
전세계서 한국만 '과도한 처벌'
이복현이 쏘아올린 '배임죄 폐지'
논평도 없는 巨野 설득이 관건

배임죄는 검찰 등 수사당국이 기업 및 오너 일가를 수사할 때 적용하는 대표적 혐의다. 한국엔 형법상 배임죄 및 업무상 배임죄에 더해 상법상 특별배임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상 배임죄 규정을 두고 있다. 배임을 통한 이득액이 50억원을 넘으면 가중처벌되는 특경법상 배임죄는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선고할 수 있다. 사형선고가 사실상 사라진 점을 고려하면 ‘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 적용되는 살인죄와 동등한 형량이다. 재계는 적용 범위가 넓고 기준이 모호한 데다 대기업 투자나 자금거래 과정에서 50억원을 넘기는 경우도 많아 오너와 기업 최고경영자(CEO)의 운신의 폭을 옥죄는 대표적인 악법으로 배임죄를 꼽고 있다.

 쉬운 고발에 잦은 기소까지

16일 한국경제인협회 등에 따르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주요 6개국 중 형법에 배임죄를 명문화한 국가는 한국과 프랑스 독일 일본 등 4개국이다. 미국과 영국은 배임죄 처벌 규정이 없다. 사기죄 및 민사 손해배상으로 다룬다. 배임죄를 명문화한 4개국 중에서도 한국은 배임죄를 가장 과도하게 처벌한다. 형법상 배임죄에 더해 업무상 배임죄가 있을 뿐 아니라 상법상 특별배임죄, 특경법상 배임죄 규정을 따로 두고 있다.

문제는 배임죄의 적용 범위 및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다. 형법상 횡령이 금전 등 구체적인 재산을 빼돌려 이익을 취한 행위인 것에 비해 배임은 모호한 ‘재산상 이익’으로만 명시돼 있다. 더욱이 손해가 실제로 발생했을 때뿐만이 아니라 손해 발생의 위험성만으로도 처벌이 가능하다. 이해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배임죄 고발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발 역시 잦다. 업무상 배임죄 신고 건수가 연간 2000건 이상을 항상 웃도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렇다 보니 국내 10대 그룹 총수의 상당수는 배임죄로 기소된 전력이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대표적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경영권 불법승계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지 3년5개월 만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업무상 배임죄를 비롯해 19개 혐의에 대해 무죄를 받았다. 하지만 2심 재판이 지난달 말 시작되는 등 대법원 확정 판결까진 수년간의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어서 경영활동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연 한화 회장도 계열사 부당 지원에 따른 특경법상 배임죄로 기소돼 2014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어떤 개인적 이득을 취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실 계열사도 살려냈지만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배임죄 폐지 野 설득 가능할까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배임죄 적용을 앞세운 수사당국의 이른바 ‘기업 길들이기’ 수사는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2023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2022년 기준 횡령·배임죄의 무죄율(1심 기준)은 5.8%로 전체 형사사건 무죄율(3.1%)의 두 배에 육박했다.

지난 14일 배임죄 폐지를 제안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2020년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제범죄형사부장 시절 이 회장을 업무상 배임죄로 기소했다. 이 원장은“배임죄 기소를 제일 많이 해 본 사람 중 한 명으로서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이 더 설득력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법무부 등 관계부처도 배임죄 폐지를 놓고 본격 논의할 예정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방향으로 상법을 개정하되, 배임죄 폐지 혹은 경영판단원칙 법제화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겠다는 것이다.

다만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야당은 소액주주 보호를 명분으로 이사 충실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에 적극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배임죄 폐지와 관련해선 당 차원에서 아직까지 공식 논평은 없다.

강경민/김익환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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