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제적 아닌 '눈치보기' 통화정책…Fed는 왜 필요한가 [한상춘의 국제경제 읽기]

한상춘 2024. 6. 1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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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 중 4곳이 금리 내려
파월은 여전히 신중론
중앙은행 '선제성' 실종
지표 해석에 자의성 과도
일각 'Fed 무용론' 제기

“서두를 필요가 없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겠다.” ‘선제성(preemptive)’을 생명으로 여기는 통화정책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발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비롯해 각국 중앙은행 수장들이 마치 유행처럼 이런 말을 쏟아내고 있다. 일부에서 중앙은행 총재 역할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다.

Fed는 1913년 설립 이후 지금까지 가장 치욕적으로 여기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하나는 ‘에클스 실수’다. 1929년 허버트 후버 대통령 취임 직후 미국 경제가 침체를 보이자 당시 매리너 에클스 Fed 의장은 금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 후 물가가 곧바로 오르자 급하게 금리를 올렸다가 대공황을 낳았다.

다른 하나는 ‘볼커 실수’다. 2차 오일쇼크 이후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폴 볼커 전 Fed 의장은 고심 끝에 금리를 올렸다. 장기간 갈 것으로 봤던 물가가 빨리 잡힐 기미를 보이자 성급하게 금리를 내린 것이 화근이 돼 물가가 다시 올랐다. “볼커의 키가 1센티미터만 작았더라면”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아쉬운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1980년대 이후 Fed의 통화정책을 보면 이 두 가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강박관념에 선제성을 잃는 경우가 자주 발생했다. 최근 사례로는 코로나19 사태 후유증으로 물가가 올랐음에도 에클스 실수를 우려해 금리 인상에 주저한 것이다. 초기에는 ‘일시적’으로, 나중에는 ‘평균물가목표제’까지 도입해 방관하다가 2022년 3월에 가서야 첫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이달 들어서는 금리 인하 시기까지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어느덧 피벗(통화정책 전환) 필요성이 나온 지 1년 반이 넘었다. Fed보다 금리를 늦게 올린 유럽중앙은행(ECB)은 먼저 피벗을 단행했다. 특수한 환경에 놓인 일본은행(BOJ) 등을 제외하고는 주요 7개국(G7) 중 4개국이 금리를 내렸다.

Fed가 금리 변경을 주저하는 나름의 이유는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해장술(hair of the dog) 이론’이 등장할 만큼 위기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금융시장은 실물 시장보다 3배 이상 커졌다. 금융 우위 시대에 금리 변경은 소득대체 효과와 자산 효과가 겹쳐 두 가지 실수를 초래하곤 한다. 소득대체 효과는 저축과 소비에 미치는 효과를, 자산 효과는 주가와 부동산 가격 변화에 따라 소비에 미치는 효과를 말한다.

지난 2년 동안 Fed가 금리 변경에 주저했는지를 두 효과를 통해 분석해 보면 명확해진다. 2년 전처럼 경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금리를 서둘러 올리면 부(負)의 소득대체 효과와 자산 효과로 에클스 실수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진다. 최근처럼 물가가 다 잡히기 전에 금리를 서둘러 내리면 정(正)의 소득대체 효과와 자산 효과가 겹쳐 물가가 다시 오를 확률이 높아져 Fed로서는 주저할 수밖에 없다.

점도표와 Fed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선제성을 잃는 데는 ‘최적통제준칙(OCR·optimal control rule)’에 근거한 통화정책 운용 방식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다. OCR은 양대 목표로부터의 편차를 최소화하는 기준금리 경로를 말한다. 그때그때 통화정책 여건을 반영하는 유연성 면에서 적정 금리를 토대로 운용하는 테일러 준칙과는 차이가 난다.

문제는 금리 변경 시기를 OCR 경로보다 앞당기거나 늦출 때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의 ‘자의성(discretionary)’이 너무 개입한다는 점이다. 2년 전처럼 금리를 올릴 때 ‘에클스 실수’를, 최근처럼 금리를 내릴 때 ‘볼커 실수’를 우려하면 OCR 경로보다 앞당겨 선제성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제지표를 해석할 때 Fed의 통계 조작 문제가 자주 거론되는 것도 같은 이치다. 통계 조작은 정량적 통계의 ‘작성’ 단계에서 발생한다. 작성 조작은 각각의 통계당 세부 구성 항목 선정과 가중치 설정 문제로 귀결된다. 물가지표는 국민 경제생활에 민감한 항목을 제외하거나 가중치를 낮게 설정하면 늘 안정된 것처럼 나온다.

Fed가 비판받는 통계 조작은 양대 책무지표 해석상의 문제다. 같은 지표라고 하더라도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의지가 강할 때는 ‘불안’하다고 해석해 매파적인 결정을 한다. 하지만 경기부양 등을 고려해야 할 때는 ‘안정’됐다고 해석해 비둘기파 결정을 한다. Fed에 어떤 성향의 인사를 많이 채우느냐가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한국은행도 마찬가지다. Fed 인사와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다양해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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