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업땐 신불자, 어쩔 수 없이 투잡·스리잡" 자영업자의 눈물[벼랑 끝 자영업자, 경제위기 뇌관 되나 上]
비용부담 느는데 매출 갈수록 급감
팔수록 적자… 임대료 내기 힘들어
대출로 버티지만 돌아오는 건 빚뿐
#. 서울 종로구 북창동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A씨는 최근 인근 호텔에서 조식을 담당하는 주방장으로 '투잡'을 뛰기 시작했다. 음식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나고, 매달 갚아야 할 대출 원금과 이자는 적지 않기 때문이다. A씨는 "인건비와 식자재 값이 급등했지만 음식 값은 거의 올리지 못해 매출이 늘어날수록 마이너스"라며 "자영업자·소상공인 대출 상환 유예조치가 지난해 9월 끝나면서 매달 대출 원금과 이자도 같이 갚아야 한다. 얼마나 힘들면 투잡을 뛰겠나"라고 반문했다. A씨는 "폐업비용이 몇천만원에 달해 돈이 없으면 폐업도 못한다"며 "폐업을 안 하면 적자가 쌓이고 폐업을 하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고 전했다.
#. MZ세대를 주 고객층으로 주점 프랜차이즈를 운영 중인 B씨는 최근 직영점 3곳 중 1곳을 폐업했다. 젊은 층들이 많이 찾는 서울 강남역 인근이다. 조만간 서울 광진구 건대 직영점도 폐업 예정이다. 코로나19 종식 선언 이후 14개까지 늘어났던 가맹점은 현재 5곳만 빼고 모두 문을 닫았다. 김 모씨는 "전국 주점 프랜차이즈 가운데 평균 매출 2위를 기록하고 있지만 임대료도 제 때 내지 못할 정도로 운영이 어렵다"며 "주변에 젊은층을 대상으로 하는 동종 업종들이 거의 다 망하거나 업종을 바꿨다"고 전했다. 그는 "수원 인계동은 술집이 사라진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건물 1~3층이 모두 주점으로 가득 찼던 경기도 일산은 이제 2층과 3층에 있던 주점들이 문을 닫아 공실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현재 주점 10곳 중 1곳 정도만 장사가 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고금리·고물가 장기화와 경기침체 여파로 빚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자영업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월매출 300만원 미만)뿐 아니라 일반 자영업자도, 매출이 안 나오는 사업장뿐 아니라 매출이 상당한 사업장도 문을 닫고 있다.
■"폐업도 어렵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자영업자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건 △인건비 증가와 고물가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경기침체로 인한 소비위축 △고금리에 따른 이자부담 증가 및 원금상환 부담△막대한 폐업비용 등이다.
경기도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는 "인건비와 식자재 값이 너무 올랐다"며 "코로나19 이전에는 한국인에 비해 임금이 30~40% 정도 싼 조선족 근로자를 썼는데 지금은 한국인과 크게 임금 차이가 안 난다. 시간당 1만2000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조선족 근로자 중 상당수가 귀국하자 몸값이 뛰었기 때문이다. 그는 "노동의 질은 떨어지고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하는데 내년 최저임금이 더 오르면 인건비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는 것도 자영업자가 버티지 못하는 이유다. 이두영 신한소호(SOHO)사관학교 과장은 "오히려 필라테스, PT샵, 스튜디오 촬영 등 서비스 업종이 사각지대"라며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사람들이 꼭 필요한 곳 외에는 돈을 쓰려 하지 않는데 이 중 인건비가 비싼 업종은 심각한 위기를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자영업자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지난달 말부터 가게에 파리 한 마리 날리지 않는다"면서 "여름휴가철인 7~8월, 추석명절이 있는 9월까지 이대로라면 버틸 자신이 없다"는 게시글이 다수 올라오고 있다.
폐업을 하고 싶어도 막대한 비용 때문에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소상공인 폐업비용은 2022년 평균 2323만8000원으로 전년(557만원) 대비 약 4배 급증했다. 한 자영업자는 "폐업을 고민할 시점에는 이미 막다른 골목에 몰려있기 때문에 몇천만원에 달하는 폐업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밀린 인건비와 월세, 각종 세금 등을 내고 나면 신용불량자로 직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부 폐업지원금은 '언 발에 오줌 누기'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희망리턴패키지 원스톱폐업지원' 사업이 자영업자에게 제공하는 철거지원금은 최대 250만원이다.
■돌아오는 건 빚폭탄뿐
폐업도 못하고 대출로 연명하면서 투잡, 스리잡을 뛰지만 돌아오는 건 빚폭탄이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었던 양경숙 전 의원이 나이스평가정보로부터 제출받은 '개인사업자 가계·사업자 대출 현황'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335만9590명의 개인사업자가 보유한 대출(가계·사업자 대출)은 총 1112조7400억원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 직전이던 2019년 말(209만7221명, 738조600억원)과 비교하면 차주 수는 60%, 대출금액은 51% 증가했다.
원금 갚기도 막막한데 고금리로 이자비용까지 늘어나자 연체율은 높아지고 있다. 같은 기간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상환 위험차주의 전체 보유 대출규모는 15조6200억원에서 31조3000억원으로 2배가량 급증했다. 이 중 2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실행한 다중채무자의 연체액은 24조7534억원으로 79%에 달한다.
다이소나 올리브영 등 종합몰이 확대되면서 영세 소상공인의 주요 창업업종인 소매·판매업 성장을 정체시키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종합몰의 취급액과 가맹점 수는 2019년 대비 94.5%, 21.9% 각각 증가했다. 같은 기간 소매·판매업 자영업자들의 취급액과 가맹점 수가 각각 10.9%, 2.7% 증가한 것과 대조된다.
수도권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코로나 이후 자영업은 끝난 것 같다"며 "최저임금 인상,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원자재 가격 상승, 택시비 인상 이후 회식 없는 삶과 저녁 외식 감소 등으로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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