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재활용 섬유' 개척, 子 고급화 혁신…매출 2배 껑충
(4) 최장수 '리사이클 섬유' 건백
'쓰레기 취급' PET 부산물 재활용
故 박종계 회장, 국내 첫 섬유 생산
미국 진출…매출 비중 80%로
1970년대 섬유 원료 폴리프로필렌(PP) 제조사에 근무하던 고(故) 박종계 전 건백 회장은 섬유 찌꺼기인 폴리에스테르(PET) 부산물에서 미래를 꿈꿨다. 쓰레기로 취급받던 PET 부산물을 일본이 리사이클 섬유로 활용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다.
박 전 회장은 재활용 기술이 없어 매립되던 PET를 섬유로 탈바꿈하기 위해 1년간 연구개발에 매달렸다. 때마침 밀린 급여와 퇴직금 대신 받은 회사의 공장 설비는 꿈을 현실화하는 자양분이 됐다. ‘쓰레기도 자원이다’는 일념으로 국내 최초로 리사이클 폴리에스테르 섬유 생산에 성공한 건백은 1975년 그렇게 세워졌다. 건백은 국내 최장수 리사이클 섬유 제조업체로 꼽힌다. 회사명 건백(建百)은 많은 일을 세우며 번창해 나가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미국과의 반덤핑 소송 이긴 창업주
리사이클 단섬유(최종 용도에 맞춰 잘라 놓은 섬유)로 국내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건백은 1990년대 초반 시장 포화 상태였던 한국을 벗어나 미국으로 눈을 돌렸다. 가격 경쟁력을 갖춘 리사이클 섬유를 앞세워 2000년 무렵 매출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거뒀다.
사세를 넓혀가던 건백은 2000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반덤핑 부과 대상에 오르며 위기를 맞는다. 섬유 생태계 붕괴를 우려한 미국이 한국과 대만의 단섬유 생산업체들을 제재하면서다. 박 전 회장은 국내 동종업계 대표들을 한데 모아 비상대책회의를 주도했다. 1차 재심 대상이 된 기업들의 소송비용을 업계 차원에서 함께 대응할 수 있도록 설득하며 미국과의 소송전에 들어갔다.
이런 노력에도 반덤핑 과세율이 7.9%로 구체화되자 박 전 회장은 독자적으로 3년간 재심을 이어갔다. 2004년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덤핑 과세 면제를 얻어낸 것은 그의 집념이 만든 결과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 전 회장의 장남인 박경택 건백 대표는 “선친께서 집요하게 이뤄낸 성과가 지금의 건백이 글로벌 기업으로 발돋움할 발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섬유 고급화’ 체질 개선한 2세
박 대표가 2001년 유학의 꿈을 접고 건백에 몸담은 계기는 그런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9·11 테러로 미국 물류망이 전면 봉쇄돼 건백이 또다시 위기를 겪을 때였다. 박 대표는 “어학연수를 다녀온 터라 급박하게 돌아가는 현지 거래업체와 원활하게 소통하는 일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입사하기로 맘먹었다”고 회상했다.
이들 부자가 호흡을 맞추며 일한 시간은 10년을 넘기지 못했다. 박 전 회장이 2008년 혈액암으로 유명을 달리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종교처럼 믿고 따르던 선친이 일궈낸 회사에 부끄럼 없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며 “지금도 회사에 선친의 흉상을 모셔놓고 기리는 이유”라고 말했다.
37세의 나이로 건백을 책임지게 된 박 대표는 미국으로 편중된 수출 모델의 체질 개선에 나섰다. 친환경 소비에 대한 니즈가 큰 유럽 시장에 주목해 ‘섬유의 고급화’에 주력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50분의 1 수준의 섬유 제품 에코스타(ECOSTAR)가 대표적 사례다. 이 제품은 오리털과 거위털의 보온력을 90% 넘게 대체할 수 있는 비건 충전재로 평가받는다.
혼합 섬유인 에코럭스(ECOLUXE)는 일반 섬유보다 흡음력과 보온력이 높아 자동차 흡음재와 침낭, 건축 내장·보온재 등에 활용할 수 있다. 박 대표는 “중국 및 동남아시아에서 대량 생산되는 저가 제품에 대응하는 고품질·고기능 제품으로 유럽 시장에서 파이를 키워가고 있다”며 “국내 동종업계에 비해 3~4배가량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설비·기술 투자…‘혁신경영’ 지속
건백은 2018년 경북 경산시 하양읍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하며 ‘다품종소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서로 다른 세 가지 품목의 섬유를 동시에 생산할 수 있다. 기술력을 높이기 위한 협업도 분주하다. 미국의 섬유 기술 스타트업(IAM)의 특허기술 시클로(CiCLO)를 접목한 생분해성 섬유 제품을 지난해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이 기술은 폴리에스테르 등의 합성섬유가 천연섬유처럼 생분해되도록 돕는 친환경 기술이다.
건백의 매출은 지난해 320억원을 기록하며 박 대표가 취임한 2008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현재 건백의 매출 비중은 미국 50%, 유럽 30%, 국내 20%로 비교적 고른 편이다. 올해는 매출 350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박 대표는 “수많은 중소기업이 100년 기업을 꿈꾸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도록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주 52시간 유연화 등 규제가 완화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산=원종환 기자 won04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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