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독서, 어린이·어른 모두에게 꿈·희망 갖게 하는 것"

김재근 선임기자 2024. 6. 16. 17: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현재 1만 5000권 보유… 365일 24시간 문열어
기존 도서관과 달리 떠들어도 간섭없이 운영
장인순 前 한국원자력연구원장
세종서 '전의마을도서관' 운영
도서관 입구에 생각하고 질문하며 책을 읽으라는 뜻으로 왜(Why)라는 글씨를 써놓았다.

'대한민국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세종시 전의면에서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아이들에게 책을 빌려주고, 이곳을 찾아오는 마을사람이나 지인들과 얘기를 나누는 게 일상이다. 그 자신도 틈이 날 때마다 책을 읽고 책을 쓴다. 적지 않은 나이(84세)에 365일 책을 대하며 건강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그를 만나봤다.

- 도서관 '관장'이라고 해야 하는지? 원자력연구원장을 지내 '원장'이란 호칭이 귀에 익을 텐데… 여기에 도서관을 연 동기가 궁금하다.

"2005년 한국원자력연구소장을 퇴임한지 20년이 흘렀다. 딸이 이곳에서 고려전통기술이라는 회사를 운영하는데 마침 공간이 있어서 2021년에 도서관을 열었다. 전의는 시골이라 도서관이 하나도 없었다. 신문도 배달이 잘 안되고, 공부를 하거나 지식과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환경도 열악하다. 아이들에게 뭔가 도움을 주면서 나도 책을 읽고 싶었다."

※ 고려전통기술은 전통 도검류 등을 생산하는 전문기업으로 라연희 대표는 장 관장이 아끼는 수양딸이다.

장인순 도서관장이 평소 책을 읽고 원고도 쓰는 개인서재.

□ 책판 돈 5000만원으로 출발, 옛동료와 지인들이 도움

- 개인이 도서관을 여는데 어려움도 많았을 텐데… 책과 서가, 책상 등은 어떻게 마련했나?

"2020년에 <여든의 서재>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으로 5000만원을 벌었는데 그 돈으로 모두 책을 샀다. 옛동료와 지인들이 책을 기증하고 많은 도움을 줬다. 현재 1만5000여 권이 있다."

장인순 관장이 도서관 서가에 꽂혀있는 책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어떤 분들이 도움을 줬는가?

"KAIST 등 여러 대학의 교수들이 책을 보내줬다. 미국에 사는 80대 은퇴 간호사가 3천 달러를 보내주고, 어떤 기업인도 수천만원을 후원했다. 여러 분이 그림이나 도자기를 보내줘, 도서관 밖에 전시하고 있다. 대전에 사는 후원자는 매달 커피를 보내주고 있다. 정말 고마운 분들이다."

□ 놀고, 떠들어도 아무 간섭 없는 '마음대로 도서관'

- 기존의 도서관과 다르게 매우 자유스럽게 이용할 수 있다고 들었다.

"아무런 간섭이 없다. 기록도 않고 책을 빌려준다. 언제든지 보고 싶은 책이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가서 보라고 한다. 며칠 뒤에 가져와도 좋고 한달, 1년 뒤에 가져와도 좋다. 갖고 싶으면 가지라고 한다. 필요하면 또 사다 놓으면 되지 않은가?"

- 아이들이 많이 온다고 들었는데, 책을 읽을 수 있는 분위기가 유지되는가?
"놀고 떠들든 책을 읽든 그냥 둔다. 마실 것도 있고 과자도 있다. 먹고 놀며 피아노를 쳐도 좋다. 사실 책을 읽는데 집중하면 누가 옆에서 떠들어도 전혀 상관이 없다. 이런 환경에서 책을 읽다 보면 공부할 때 집중력도 길러진다."

도서관 밖에는 지인들이 기증한 그림과 도자기 등을 전시하고 있다.

- 평소에 어떻게 도서관을 운영하는가?
"365일 24시간 문을 열어 놓는다. 내가 없으면 누구나 저쪽에 놓은 열쇠로 열고 들어와 불을 켜고 책을 읽는다. 이전에는 대전에서 여기까지 왕복 100여km를 오가느라 힘들었는데, 얼마 전 저쪽 건물에 거처를 마련했다. 지난해 아내가 세상을 떠나 도서관 옆에 수목장을 했다. 내 자신이 게을러지지 않도록 매일 아침 시간에 맞춰 저쪽 건물에서 이곳으로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 도서관이 외진 곳에 있다. 버스 노선에서도 좀 떨어져 있고…
"요즘 농가도 승용차가 많아 대개 부모가 이곳에 데려온다. 차가 안되면 택시를 타고 오라 하고 왕복 택시비를 준다. 토-일요일에는 가까운 식당에서 밥을 시켜다 먹게 한다. 시간을 아껴 책을 더 많이 볼 수 있도록…"

- 어린이들이 책을 읽는 데 조언해주는 것은 없는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왜'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으라는 것이다. 도서관 입구에 왜(Why)라고 써놓았다. 인류는 '왜'라는 것 때문에 발전해왔다. 왜라고 질문하고 그것을 해결하려는 사람이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다. 책을 많이 일어야 질문이 나오고, 고민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 노력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땅이 넓고 자원이 많은 나라가 아니다. 책을 많이 읽고 지식과 정보로 무장한 우수한 인적자원이 국력이 아닌가? 둘째는 언제나 쓰고 기록하라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다가 생각이 들면 메모도 하고 책에다 낙서도 하라고 한다. 낙서를 하는 것은 책을 맹목적으로 읽는 게 아니라 생각도 한다는 것 아닌가? 그것은 아름다운 낙서다."

□ "매일 한권씩 책 읽고 원고 쓰는 게 행복"

- 어린이들을 대하면서 뭔가를 느낀 에피소드가 있다면?
"아이들한테 일기를 쓰라고 한다. 지난 일을 기록하지 말고 내가 뭣이 되겠다는 식으로 미래에 대한 것을 적은 뒤 그것을 꼭 지키라고 한다. 중학교 1학년 학생한테 10년 후에 너의 모습을 그려보라고 했더니 얼마 뒤 와서 며칠 동안 잠을 못 잤다고 하더라. 이전에 미래에 대해 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항공우주를 전공하겠다며 수학공부를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꿈이 생기니 실천계획도 생긴 것이다."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이 세종시에서 전의마을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김재근 선임기자

- 요즘 어떻게 생활하고, 어떤 책을 읽는가?

"요즘도 거의 매일 한 권씩 읽는다. 여기서 10시간 이상 머물며 2시간 정도 컴퓨터 작업을 하고 하고 나머지 8시간은 책을 본다. 연구원장을 퇴임하고 15년 동안 4,500권 넘게 읽었다. 요즘은 주로 시집과 인문학 책을 본다. 책을 읽고 원고를 쓰는 게 일과다."

□ "대안 없는 원자력 비난은 나라 망치는 일"

- 미국 아이오와 대학에서 연구원으로 있다가 박정희 대통령 때 해외과학자 유치 프로젝트에 따라 귀국하여 원자력 연구에 평생을 보냈다. 현재 우리나라 원자력의 수준과 미래는?

전의마을도서관은 고려전통기술 건물의 2층에 입주해 있다.

"이승만 대통령이 원자력의 꿈을 안고 인재들을 미국으로 유학보냈고, 박정희 대통령이 과학자들을 불러들여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정말 열심히 해서 표준형원자로를 개발하고 핵연료도 국산화했다. 현재 우리 원자력 기술은 미국에도 뒤지지 않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원전 기술도 그렇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을 만들 수 있다. 원전이 산업화에 미친 효과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원전으로 양질의 전기를 저렴하게 공급해준 덕분에 기업들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게 됐다. 대안도 없이 원자력을 비난, 홀대하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길이다."

- 도서관을 운영하고 늘 책을 대하고 산다. 사회에 느낀 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이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고 지혜를 일깨워주는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정직이라 것도 가르쳐준다. 정직을 부정하는 책이 있는가? 지금 누구보다 정치인이 정직해야 한다. 정치인이 아무 것도 않고 잠만 자고 있으면 경제도 성장하고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말이 있다. 정치권이 정직하게 일하고 이것저것 쓸 데 없이 간섭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