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점령 영토 포기하라” 푸틴 ‘협상 조건’에 서방 맹비난···러 성토장 된 ‘우크라 평화회의’
젤렌스키 “히틀러 같은 짓” 맹비난
러시아 빠진 ‘우크라 평화회의’
공동성명에 ‘영토 보전’ 못 박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영토를 포기할 것을 전쟁을 끝내기 위한 ‘협상 조건’으로 제시하자 우크라이나와 서방 동맹국들은 러시아를 강하게 비판했다. 전쟁 종식을 위한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를 하루 앞두고 나온 푸틴 대통령의 발표에 우크라이나는 “영토 포기는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고, 전쟁 당사자인 러시아 없이 진행된 평화회의는 ‘러시아 성토장’이 됐다.
15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전날 푸틴 대통령이 제시한 ‘협상 조건’에 대해 “과거와 다르지 않은 최후통첩 메시지”라며 “과거 아돌프 히틀러가 하던 것과 똑같은 짓이며, 이젠 나치즘이 푸틴의 얼굴을 하고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전날 자국 외교부 회의에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에서 군대를 철수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을 포기하면 즉시 휴전하고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군의 철수를 요구한 지역은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루한스크주와 남부 자포리자·헤르손주 등 4개 지역이다. 러시아는 2022년 이들 지역을 부분적으로 점령한 뒤 러시아와의 합병을 일방적으로 선언했고, 이곳에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 역시 치렀다. 이들 4개 점령지는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약 18%에 해당한다.
푸틴 대통령은 우크라이나가 철군과 나토 가입 포기라는 협상 조건을 수용한다면 “내일이라도 기꺼이 우크라이나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군의 안전한 철수도 보장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제안의 본질은 서방이 원하는 일시적인 휴전이나 분쟁의 동결이 아니라 완전한 결말에 관한 것”이라며 우크라이나가 제안을 거부할 경우 “협상의 조건은 우크라이나 정권에 유리하지 않게 계속 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같은 협상 조건은 종전에 비해 구체화되긴 했으나, 우크라이나 입장에선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그간 영토 회복 없는 전쟁 종식을 ‘항복 선언’으로 간주하고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고, 더 나아가 이번 전쟁에서 2014년 러시아가 강제 병합한 크름반도 역시 회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푸틴 대통령의 제안이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를 논의하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도중, 우크라이나 평화회의를 하루 앞두고 나왔다는 점에서 회의에 찬물을 끼얹기 위한 일종의 ‘여론전’이란 분석도 나온다.
전날 G7 정상들은 러시아 동결 자산으로 우크라이나에 500억달러(약 68조5000억원)를 지원하는 데 합의했다.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러시아 동결자산 압류 및 활용을 “도둑질”이라고 비판하며 대러 제재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각국 정상들은 이튿날부터 스위스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평화회의에서 푸틴 대통령의 ‘협상조건 제시’를 일제히 성토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진지한 제안이 아니라 (평화회의를)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가려는 시도”라고 비판했고, 리시 수낵 영국 총리도 “푸틴은 진정한 평화에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현재 점령지를 동결한 채 분쟁을 멈추는 것은 해법이 될 수 없다”면서 “이는 미래의 침략 전쟁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90개 평화회의 참가국들은 회의 마지막 날인 16일 발표되는 공동성명 초안에서 전쟁을 일으킨 러시아에 대한 규탄과 ‘우크라이나 영토 보전 촉구’ 등을 못 박았다.
다만 전쟁의 평화적 종식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회의에 정작 전쟁의 당사자인 러시아는 초청받지 않아, 실효성 있는 해법보다는 정치적 선언 수준의 결론만 나왔다는 평가도 있다. 중국 역시 러시아의 불참을 이유로 회의를 보이콧했다. 튀르키예,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오스트리아 등 일부 참가국들은 논의의 의미 있는 진전을 위해 러시아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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