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노린 ‘이상동기 범죄’···의문과 공포, 슬픔은 거리에 남은 이들의 몫
현충일인 지난 6일 서울역 길거리에서 조성후씨(가명·63)가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30대 남성 A씨가 범인이었다. “환청을 들었다”며 자수한 A씨는 조씨와 일면식이 없었다. 경찰은 A씨에 대한 수사를 이어갔지만 이렇다 할 범행 동기를 찾지 못했다. 원한관계도 없었고, 동선상 계획범행이라는 증거도 부족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조씨를 살해한 혐의로 A씨를 지난 13일 검찰에 송치했다고 16일 밝혔다.
그날 새벽 인근에 김성훈씨(가명·48)가 있었다. 김씨가 자리잡은 서울역 한 지하도 입구에는 그와 조씨를 포함해 6명이 간격을 두고 누워 있었다. 이날도 김씨는 일찍 눈을 떴다. 오랜 노숙 생활에 잠귀가 예민했다. 서둘러 찾아온 여름이라 길거리는 더 일찍 밝았다. 무료 급식시간인 오전 5시에 맞춰 자리를 떴다가 돌아오던 길이었다.
“그 아저씨 어떻게 된 거냐. 침낭을 뒤집어썼는데 옆으로 피가 막 줄줄 흐르더라.” 아는 형님이 건네준 소식이었다. ‘그새 누구한테 맞았나? 다녀간 사람이 있었나?’ 김씨는 온갖 생각이 오갔다고 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간밤의 잠자리에 폴리스라인을 쳤다.
도심 한복판서 벌어진 이상동기 범죄에도 세상은 잠잠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임에도 세상은 조용했다. 지난해 잇따라 발생한 이상동기·흉기난동 범죄 때와도 온도 차가 컸다. 경찰은 지난 2월 “횡행하는 이상동기 범죄를 막겠다”며 기동순찰대·형사기동대를 신설했다.
조씨가 이상동기 범죄로 숨진 다음 날인 지난 7일 홈리스행동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 조직 개편 이후 불심검문을 경험한 노숙인이 늘었다는 내용의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역·용산역·영등포역·고속터미널 일대 노숙인 104명 중 절반 이상(51%)이 지난 1년간 경찰로부터 불심검문을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공권력의 단속과 감시는 늘었지만 범죄로부터 노숙인은 지키지 못했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406071416001
사건 현장은 폐쇄회로(CC)TV 사각지대였다. 경찰 관계자는 “범행 장면을 찍은 카메라가 없는 상황에서 A씨 범행 동기 등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기자와 현장을 동행한 최현숙 홈리스행동 인권지킴이 활동가는 “온갖 곳에 그렇게 많이 달린 CCTV가 이런 데에는 없다”고 했다.
서울 중구청 관계자는 ‘사건 이후 구청에서 논의 중인 노숙인 안전 관련 대책’에 대해 “새롭게 논의 중인 것은 없다”고 답했다. 구청 측은 “서울역 인근 다시서기지원종합센터에서 상담이나 의료서비스·시설 등을 폭넓게 제공하고 있다”면서도 “(노숙 현장을) 계속 지킬 수 없어 갑작스러운 범죄 대응에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사건에 대한 풀리지 않는 의문과 공포, 슬픔은 거리에 남은 이들의 몫이었다. 6명이 잠을 청했던 사건 현장엔 발길이 뜸해졌다. 인근 쪽방에서 사는 B씨(83)는 “살인사건이 있고 나서 확실히 자러 오는 사람이 줄었다”고 했다.
홈리스 지원 활동가들은 이들이 더 위험하고, 열악한 곳으로 옮겨간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는 “노숙인들이 먹거리나 안전 등을 이유로 터를 잡은 곳에서 이동할 때는 더 취약한 곳으로 갈 확률이 높다”며 “고시원·여관 등 비적정 주거로 이동해 일시적으로 거리 노숙 상태를 벗어나더라도 열악한 상황은 그대로일 것”이라고 했다.
김씨도 지난 9일 그 거리를 떠났다. 꼭 조씨의 죽음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는 “계속 노숙을 했더라도 찝찝해서 이 부근에서 지내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왜 하필 조씨였을까. 내가 됐을 수도 있었을까?” 이후에도 줄곧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했다.
김씨는 조씨가 노숙인 중에서도 유독 주변과 교류가 없는 편이었다는 게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조씨가 ‘말이 없고’ ‘한 자리에만 있었다’고 했다. 김씨는 “항상 누워 있는, 고립된 사람을 특정해 범행을 저질렀다는 게 우연일까”라며 “범인이 이전에 근처를 들러 만만한 사람을 점찍은 건 아닐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씨는 거리를 떠나기 전날인 지난 8일 청소노동자의 부탁을 받고 보도블록에 스민 핏물을 호스를 수도에 연결해 씻어냈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리던 날이었다. 그는 “(청소 노동자가) 자기는 못 하겠다며 부탁을 하길래, 비를 맞아가며 씻어냈다”고 말했다. 김씨가 씻어낸 핏자국과 함께,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흔적도 옅어졌다. 조씨의 유일한 가족은 형제인데, 곤궁한 형편 때문에 시신 인계를 포기했다고 한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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