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공 민주화 30년 만에 연립정부 탄생…라마포사 대통령 연임
1994년 민주 선거가 치러진 이래 줄곧 아프리카민족회의(ANC)가 단독 집권해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첫 연립정부가 14일(현지시간) 구성됐다. 총선 참패로 정치적 위기를 맞았던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은 연임이 확정됐다. 첫 연정 통치를 앞둔 남아공은 정치적 격변기를 맞이할 전망이다.
‘30년 만의 참패’ 겪은 ANC, ‘친기업’ 제1야당과 통합정부 구성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남아공 의회는 이날 케이프타운의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첫 회의를 열고 전체 339표 중 283표를 얻은 라마포사 대통령을 차기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남아공은 총선을 치른 뒤 의회에서 과반 동의로 대통령을 뽑는다.
연임이 확정된 라마포사 대통령은 “남아공에 새로운 시대가 찾아왔다”며 “이제는 서로의 차이를 극복하고 협력해야 할 때”고 밝혔다.
앞서 라마포사 대통령이 이끄는 ANC는 지난 29일 치러진 총선에서 역사적인 ‘참패’를 기록해 위기를 맞았다. 잇따른 정치권의 부패와 경제 실정으로 민심을 잃은 ANC가 ‘민주화의 아버지’ 넬슨 만델라를 배출한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득표에 실패한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ANC가 확보한 의석은 400석 중 159석에 그쳤다.
이에 ANC는 지난 2주간 치열한 연정 협상을 벌여왔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국민통합정부(GNU)를 공식 제안했다. 인종 갈등과 빈부격차에 따른 정치 양극화가 심한 만큼 최대한 많은 정당과 협력하겠다는 취지다. 막판까지 치열한 줄다리기를 벌인 끝에 제1야당 민주동맹(DA)이 참여를 확정했고, 의석수 5~6위의 군소 정당도 합류해 GNU 구성이 확정됐다. 의석수 3~4위를 차지한 급진좌파 성향의 2개 야당은 연정 참여를 거부했다.
존 스틴헤이즌 DA 대표는 “1994년 이후 처음으로 민주적인 권력 분립이 이뤄졌다”라며 “DA는 협력의 정신으로 남아공을 공동통치할 것이며, 이제 연정은 새로운 표준”이라고 밝혔다.
그간 DA는 ANC의 가장 유력한 연정 상대로 꼽혔다. 친기업 정당인 DA와 손잡아야 자유주의 성향의 라마포사 대통령이 안정적인 정권 운영을 이어갈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극심한 빈부격차와 32%가 넘는 실업률 등으로 등 돌린 민심을 수습해야 하는 ANC에겐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주요 공약으로 내건 DA와의 연합이 경제 실정 극복 의지를 보여줄 기회다.
인종 갈등부터 정책 대립까지…정국 혼란 맞을 듯
그러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가장 큰 걸림돌은 백인 주류 정당인 DA에 대한 ANC 내부와 지지자들의 반감이 여전히 크다는 점이다. 과거 백인 소수정권에 뿌리를 두고 있는 DA는 지도부 대부분이 백인 고소득층이다. 인종차별철폐운동에 앞장섰던 ANC가 정치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흑인들의 정당’이라는 정체성을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두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적 차이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DA는 흑인 경제권 강화 등 우대 정책을 비롯한 ANC의 핵심 정책에 강하게 반대한다. 이에 ANC의 최대 지지기반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COSATU)는 성명을 내고 “DA는 최저임금제와 전 국민 의료보험에 반대하며, 노동자가 너무 많은 혜택을 누린다고 주장하는 정당”이라며 연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
남아공의 첫 연정 구성을 둘러싼 외부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우선 남아공 정치권의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우려가 크다. 케이프타운대학의 피에르 드보스 헌법학 교수는 “이론상으로는 훌륭한 연립정부이지만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너무나 불확실하다”면서 “남아공 사회는 지난 30년간 분열돼 있었고, 불평등과 인종 차별과 같은 오래된 난제에 대한 두 정당의 입장은 정반대”라고 알자지라에 말했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연정이 30년간 단독 집권해 온 ANC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정치적 양극화를 극복할 기회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혜린 기자 cher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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