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그림자 혼재된 OTT 학원물, 여전히 매력적인가?
(시사저널=정덕현 문화 평론가)
어느새 OTT 학원물은 드라마의 한 흐름처럼 자리한 느낌이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하이라키》 역시 학원물이다. 그런데 OTT 학원물은 그간 지상파 등에서 해왔던 그것과는 사뭇 색깔이 다르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강하지만, 자극과 수위도 높은 편이다.
넷플릭스 《하이라키》, 글로벌 인기몰이
전용 서킷에서 스포츠카로 경주하고, 그들만의 은밀하고 화려한 파티를 벌인다. 심지어 학생이 선생님보다 더 위에 군림한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예 넥타이 색깔로 신분이 나뉜다. 0.01%의 상위 그룹은 평범한 학생들과는 아예 동석하지 않는다. 평범한 학생들은 그들의 공간에 들어갈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하이라키》는 이처럼 현실에서는 도저히 존재하지 않는 주신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그 견고한 계급 구조를 가진 학교로 장학생 강하(이채민)가 전학을 온다. 그는 이 학교를 다니다 사망한 강인한(김민철)의 이란성 쌍둥이 동생이다. 이 정도 설정이면 《하이라키》라는 학원물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느 정도는 예감할 수 있다. 형의 죽음을 밝히기 위한 강하의 진실 찾기가 시작되고, 이 계급 구조의 가장 꼭대기에 서있는 주신그룹 후계자 김리안(김재원)과의 대결 구도가 형성될 것이다. 그 사이에서 김리안의 연인이었다가 강하와 가까워진 정재이(노정의)를 두고 두 사람의 팽팽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여전히 K드라마에 대한 글로벌 관심이 높은 데다, 특히 넷플릭스가 지금껏 잇따라 내놓은 학원물들에 대한 기대감 때문인지 《하이라키》의 글로벌 성적은 좋다. 6월7일 공개 직후 TV쇼 부문에서 글로벌 5위를 차지했다(6월9일 기준 플릭스 패트롤). 한국을 비롯해 볼리비아, 도미니카공화국, 에콰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홍콩,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대만, 태국, 베트남 등 전 세계 23개국에서 1위에 올랐다.
하지만 《하이라키》에는 분명한 넷플릭스표 학원물이 가진 빛과 그림자가 겹쳐져 있다. 주신고등학교라는 가상의 공간을 통해 은유하는 계급적인 사회구조에 대한 사회 비판적 요소가 그 빛이라면, 이제는 그런 방식이 너무 익숙해 이야기가 다소 뻔해 보이고, 그래서 오히려 비판적 색깔이 자극적인 상황들을 끌어오기 위한 명분처럼 보이는 것은 그림자다. 이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로부터 촉발된 새로운 학원물들이 봇물을 이루면서 갖게 된 빛과 그림자 그대로다.
물론 OTT 학원물의 시작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지금껏 지상파 기준에 맞춰져 제작되곤 했던 학원물들은 다뤄지는 소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입시 현실과 꿈 사이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나 사춘기 청소년들의 사랑과 우정 같은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보편적 시청자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던 지상파의 한계였다. 하지만 넷플릭스가 공개한 《인간수업》은 청소년들의 성매매 문제를 소재로 가져왔다. 지금껏 잘 다뤄지지 않았던 문제였지만, 오히려 그간 감춰져 있던 현실이라는 점에서 신선했다. 청소년과 범죄라는 소재는 결코 한자리에 묶을 수 없는 어떤 것처럼 여겨지던 그 금기를 《인간수업》은 깨버렸다.
그 후 마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그간 다뤄지지 않았던 청소년 범죄를 담은 OTT 학원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청소년 마약을 다룬 《소년비행》이 나왔다. 《지금 우리 학교는》은 좀비 장르를 통해 학교폭력 문제들을 액션물과 버무려 전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그 후로 주목받는 소재는 학교폭력이었다. 디즈니+가 《3인칭 복수》를, 티빙이 《돼지의 왕》을, 그리고 웨이브가 《약한 영웅》을 내놨다. 역시 파격적인 폭력 수위와 더불어, 학교폭력은 물론이고 그 이면에 놓인 어른 사회의 폭력까지를 꼬집는 것으로 이들 작품은 호평받았다. 그 이후에도 OTT들은 좀 더 버전업된 형태의 다양한 학원물을 내놨다. 《오징어 게임》의 학원물 버전이라고도 얘기됐던 《피라미드 게임》을 티빙이 내놨고, 한 입만 먹어도 욕망을 실현시켜주는 의문의 수제쿠키가 한 고등학교에 퍼지면서 벌어지는 사건으로 청소년 마약 문제를 은유했던 《하이쿠키》가 U+모바일 TV를 통해 공개됐다. 그리고 이 흐름 위에서 《하이라키》라는 시리즈가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것이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소재와 높은 수위인 데다, 그걸 어른이 아닌 청소년들을 통해 보여준다는 점은 자극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 구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그런데 이 작품들에는 사회 비판적 요소들도 들어있다. 그러니 자극을 즐기면서도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한국의 OTT 학원물에 대한 신뢰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익숙한 설정에 뻔한 사회 비판 메시지
하지만 그 신선함은 너무 많은 학원물이 쏟아져 나오면서 생겨난 빠른 소비와 더불어 급속도로 희석되었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 게임》은 학교에서 벌어지는 게임을 통해 우리 사회의 피라미드 지배구조를 비판한 드라마지만, 그 게임적 방식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다. 《오징어 게임》이 만들어낸 잔상일 수 있지만, 다소 도식화된 은유 방식이 시청자들에게 기시감을 준다.
《하이라키》도 마찬가지다. 고위층만 다니는 학교 설정과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계급의 꼭대기에 서서 아이들을 지배하는 설정, 또 그곳에서 죽은 형의 진실을 파헤치는 복수의 서사 또한 어딘가 《펜트하우스》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이런 계급 시스템 속으로 전학생이 와서 벌어지는 서사 역시 《피라미드 게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강하와 재이 그리고 리안 사이에 벌어지는 밀고 당기는 멜로 구조도 저 하이틴 로맨스의 틀을 그대로 답습한다. 진실을 파헤치는 미스터리 스릴러에 적당한 하이틴 로맨스 그리고 계급 구조에 맞서 싸우는 학원액션이 겹쳐져 있는 이야기다. 물론 어떤 결론을 보여줄 것인지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가 흘러갈 것이라는 건 누구나 쉽게 알아챌 수 있는 드라마다.
그러니 학교 사회를 통한 사회 비판이라는 명목이 익숙한 설정들 속에서 희석되면서 남는 건 자극적인 상황과 장면들이다. 《하이라키》는 지금껏 학원물에서 좀체 등장하지 않았던 선생님과 학생이 한 침대에서 스킨십을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선정적인 수위로 표현된 건 아니지만 설정 자체는 그간 금기로 여겼던 부분을 깬 것이다. 또 고등학생들의 파티라고는 믿기지 않는 수영장에서 스킨십을 하거나 노골적인 벌칙이 있는 술 게임을 하는 장면들도 나온다. 사실 이런 장면들은 현실적이지도 않은지라 굳이 이토록 과하게 표현할 필요가 있나 싶은 의구심마저 들게 만든다.
OTT 학원물이 계속 나오게 된 건, 국내에서는 이제 조금씩 식상해지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여전히 이런 작품들이 화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탈선만큼 자극적인 소재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출연 배우를 신인들로 캐스팅해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 또한 있다. 적은 비용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괜찮은 성과를 낼 수 있으니 OTT로서도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제 그 형식적 틀이 굳어져 하나의 클리셰처럼 여겨지는 뻔한 내용들이 그저 자극만을 더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는 건 자칫 K드라마의 퇴행을 불러올 수 있는 일이다. 여전히 글로벌에서는 핫할지 모르지만 OTT 학원물에 대해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적지 않게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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