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은 힘이 세다 [서울 말고]

한겨레 2024. 6. 1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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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지리산도서관 전경.

권영란 | ‘지역쓰담’ 대표

산청지리산도서관 2층 불빛이 환하다. 자유학습실로 쓰이는 북카페는 밤 9시까지 연다. 면 단위 인구 6천명이 되지 않는 시골 동네 도서관에 누가 있을까 싶지만 어느 때는 취업준비 청년·장년들이 책상 앞에 줄지어 앉아 있다. 중고교 시험 기간에는 학생들로 꽉 찬다.

산청군 신안면으로 이사 온 지 몇 달 됐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도서관이 있다. 새로운 주거지를 정하는데 가장 큰 요인이었다. 2020년 10월 개관한 산청지리산도서관은 같은 시기 개관한 산청 작은영화관과 함께 주민들의 생활문화를 확 바꾸었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고 독서·영화모임을 만들고 수시로 작가들의 특강을 직접 듣게 됐다. 때로는 놀이방이 되고 약속 장소가 됐다. 이전에는 주민들이 어떻게 지냈을까 싶다. 산청군처럼 문화소외지역에서 공공도서관이 지역공동체의 구심이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재 경남지역 공공도서관 통계를 보면 2022년 기준 79곳이다. 2018년 71곳이었는데 지난 몇 년 새 계속 늘었다. 창원 18곳, 진주 9곳, 김해 9곳, 양산 7곳, 거제 7곳, 통영 5곳, 밀양 4곳, 창녕 3곳, 산청·고성·남해·함안·거창군에 각 2곳씩, 하동·함양·의령·합천군에 각 1곳씩 분포해 있다. 숫자만 는 게 아니라 규모나 시설도 좋아졌다. 지역공동체와 오랫동안 같이해온 도서관은 대부분 이용자 편의대로 개축했고 더러는 지역 환경에 맞춰 복합문화공간으로 새로 개관했다.

이웃한 거창군에는 읍내에 거창군립 한마음도서관이 있다. 오후 3시가 지나면 1층 열린북카페에서부터 2층 종합자료실과 로비, 3층 자유열람실이 학생들로 꽉 찬다. 책을 읽거나 공부하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창군은 인구 6만명 중 4만명 정도가 거창읍내에 몰려 있다. 학생 인구가 많다. 읍내에만 유치원 5곳, 초등학교 6곳, 중학교 5곳, 고등학교 7곳. 대학이 2곳이나 된다. 학생들은 “수업을 마쳐도 갈 데가 없어 도서관에 온다”면서 “학원과 학원 사이 짬이 생겨도 거의 도서관으로 오는데 항상 친구들과 마주친다”고 말한다. 학생들에게 도서관은 ‘책이 있는 놀이터’ 같은 곳이다.

또 다른 이웃 지역 의령군에는 서점이 없다. 의령군은 인구 2만5천명으로 경남 18개 시·군 중 가장 작은 지자체이다. 의령읍과 이웃한 가례면에 인구의 절반이 몰려 있고 초중고가 6곳이지만 읍내에는 제대로 된 서점이 없다. 다행히 공공도서관인 경남도교육청 산하 의령도서관이 주민들의 불편과 문화적 갈증을 다소 해소해 준다. 주민들은 “자녀 공부에 필요한 책은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인근 도시인 진주나 창원에 가서 산다. 베스트셀러나 읽고 싶은 책은 도서관에 가서 찾아본다. 없으면 희망 도서 신청을 한다. 시간이 걸려도 도서관에서 원하는 책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처럼 산청·거창·의령군과 같은 지역에서는 공공도서관이 도서관 그 이상의 역할을 한다. 중앙정부와 학계·언론은 인구가 줄고 출생률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10년 전부터 이들 지역을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했지만 답 없는 걱정보다는 해당 지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행복하게 살아내는 사람들, 공간들에 주목하고 아낌없이 지원해야지 않을까. 귀띔하자면, 거기에는 공공도서관이 제대로 한몫한다. ‘책이 있는 공간’이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바꾸고, 여럿을 불러 모으고, 지역공동체를 바꿔놓는다. 그렇다보니 인구감소지역 혹은 문화소외지역의 공공도서관은 지역공동체의 서사와 지역 현실을 오롯이 담고 있는 또 하나의 기록관이기도 하다.

가끔 서울·수도권 친구들을 만나면 ‘우리 동네 도서관 있다’ ‘영화관도 있다’고 자랑한다. 짐짓 놀라지만 그게 대수냐다. 서점도 독서실도 없는 시골, 늦은 밤 도서관 불빛이 마치 밤바다의 등댓불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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