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로 입사한 직원이 이런 일까지?"…IT기업 '파격'

'에·당·토' 개발자는 이렇게 일한다…'벤지니어 전성시대'

3세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비즈니스향 개발자인 '벤지니어(비즈니스+엔지니어)'를 앞세우면서 IT업계에서 개발자에 요구되는 능력이 변화하고 있다. 컴퓨터 앞에서 개발 작업만 하는 게 아니라 개발자가 적극적으로 사업 기획에 참여하거나 팀 전체를 이끄는 방식이다. 

 '에이블리·당근·토스' 엔지니어는

16일 업계에 따르면 스타일테크 기업 에이블리 배송팀 개발자들은 서울 성수동 약 4000평 규모의 에이블리 풀필먼트 센터에 여러 차례 방문했다. 상품 수요 예측 및 재고 관리 시스템을 효율화하려면 개발자부터 현장을 이해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에이블리는 '벤지니어'라는 키워드를 공식적으로 내세운 회사다. 개발자가 단일 기능을 개선하는데 집중하기보다는 사업 성장을 목표로 서비스 기획 단계부터 주도적으로 참여해 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것이다.

동대문 도매 시장의 휴가 시즌에 사입이 안돼 배송이 지연되는 문제를 풀어낸 방식이 대표적이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일반적인 개발자라면 배송 지연을 막는 물류 기술을 개발했겠지만, 에이블리 개발자들은 배송이 늦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객에게 사전에 안내하는 팝업 배너 영역을 기획해 설계했다"며 "제품 완성도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문제 해결과 사업 지표에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역생활 커뮤니티 당근은 개발자로 입사한 직원이 당근의 핵심 신사업인 '당근알바'의 리더가 돼 서비스 자체를 이끌고 있다. 당근 관계자는 "기술적인 요소와 비즈니스적인 요소가 부딪힐 수 있는데 이 때 비즈니스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며 "창업가 정신으로 제품을 바라보는 개발자가 당근에 잘 맞는 인재"라고 했다. 

토스에서도 개발자가 제품을 총괄하는 프로덕트오너(PO)가 된 사례가 여럿 있다. 개발자가 활발하게 서비스 기획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다. 토스 관계자는 "본인의 흥미를 깨닫거나 성취감을 느끼면서 직무 자체를 변경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3세대 IT기업이 달라진 이유

1~2세대 IT기업이 새롭고 좋은 기술과 개발 능력 자체에 초점을 뒀다면 3세대 기업들은 실제 '비즈니스 임팩트'를 낼 수 있는 역량을 중시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투자 시장 혹한기 여파로 개발 영역에서 중시하는 요소가 달라졌다"며 "빠르게 문제를 해결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는 인재를 찾는다"고 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발달하면서 독보적인 개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엔지니어의 경우 다른 역량을 함께 개발해야 도태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나온다. 원티드랩 개발자 리포트에 따르면 개발자의 83.6%는 생성AI가 일부 개발업무를 대체할 수 있다고 봤다. 완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응답도 8.2%에 달했다. 

사업 기획, 영업 등 다른 직무를 뽑을 때 개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호하는 추세도 나타나고 있다. 야놀자는 최근 기획자를 뽑으면서 머신러닝(ML) 등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자격 요건에 포함시켰다. 원티드랩도 사업 개발 직무에 AX 개발 경력이 있는 인재를 채용했다. 업계 관계자는 "마케팅과 기획 업무에 개발 역량을 지난 인재들이 점점 더 투입되는 추세"라며 "최신 기술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영업을 할 때도 도움이 된다"고 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