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개인전 여는 재일작가 최아희 “그림으로 한일 간 가교 되고파”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6. 16.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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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개인전
점·선·도형으로 특유 무늬 창작
회화, 조각 등 70여 점 선보여
경제학 전공했지만 화가로 전향
애플·랜드로버 등 브랜드 협업도
개인전 개막 하루 전날인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최아희 작가. 김호영 기자
“세계적인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고 싶다든가, 세계적인 브랜드와 함께 일하고 싶다든가 하는 막연하고 흔한 희망은 있지만 어느 것도 명확한 목표는 아니죠. 다만 한 가지 이루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한국의 장점과 일본의 장점을 모두 아는 재일교포로서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는 겁니다.”

한국에서 7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재일교포 3세 최아희 작가(41)는 일본에서 태어나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완전히 녹아들지 못했던 지난 날들이 자신에게 오히려 더 큰 목표를 갖게 했다고 말했다. 전시 개막 하루 전날인 지난 14일 서울 용산구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에서 만난 최 작가는 “내년이 한일 수교 60주년을 맞는 해인데, 예를 들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항공기 기체에 제 그림을 입혀 띄우고 싶다”며 “언젠가 실제로 이 계획이 실현된다면 말 그대로 양국을 이어 주는 다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계속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간간이 서툴지만 한국어로 말을 이어나가기도 했다.

오는 7월 21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는 크고 작은 회화, 회화조각(조각 표면에 회화를 입힌 것) 등 7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일러스트와 회화의 경계를 넘나들며 검은 점과 선, 원·삼각형 등 도형으로 경계와 구획을 만드는 최 작가 특유의 화면 무늬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 제목인 ‘365 Inspiration(영감)’은 도시의 거리를 거릴 때 마주친 간판, 사람들이 신고 다니는 신발, 슈퍼마켓에 갔을 때 본 싱싱한 야채 등 일상의 모든 것이 작가에게 영감이 된다는 뜻이다.

최 작가가 점·선·도형으로 그려낸 화면의 무늬는 일종의 패턴처럼 서로 비슷해 보이지만 모두 조금씩 다르다. 특정 사물이나 장면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어떤 것은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 본 장면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원근이 느껴지는 가로수길 같기도 하다. 다만 공통점은 이 무늬들이 화면에 경계와 구획을 만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곡선은 경직돼 있지 않고 자유분방하다. 최 작가가 애플, 랜드로버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할 수 있었던 것도 그림의 독창적인 무늬 덕분이다.

최 작가는 이런 무늬가 10여 년 전 처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우연히 화면에 ‘등장’했다고 했다. 그는 “추상적인 느낌에 집중해 그린 것들이다.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무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지는 아직 모른다”며 “잠재의식 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이를 밝히기 위해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연구하고 있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모든 작품의 제목은 ‘Untitled(무제)’다.

최아희 작가 ‘Untitled AH-440’(우드에 아크릴, 48.5×26×4㎝, 2024). 화이트스톤 갤러리
이번 신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다채로운 색채다. 지난 2017년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을 당시 작품들은 오로지 무늬만 나타나는 무채색의 흑백화였다. 반면 이번 개인전에서는 화면을 다채로운 색으로 채운 채색화들이 주를 이룬다. 최 작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위기를 함께 극복해나가자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아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색상을 포착해 작품화했다”며 “우리는 생활 속에서 다양한 색을 접하지만 대부분 이를 당연하게 여기며 간과한다. 관람객 분들이 지금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색들을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작가는 지난 2014년 미국 뉴욕의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국과 일본, 대만, 미국, 홍콩, 이탈리아 등 6개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세계 40개국 아트페어에 참여할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는 않았다. 대학에선 경제학을 전공했고, 취직 후 힘든 시기 술집에서 그림을 그리며 마음을 다독이던 게 지금에 이른 것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친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독려해 준 게 큰 힘이 됐다. 최 작가는 “미술 교육을 받은 작가들에 비해 기술적으로는 떨어질 수 있지만 오히려 아웃사이더이기 때문에 순수미술과 산업 디자인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라며 “앞으로 100년, 200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작품을 남기고 싶다”고 밝혔다.

한편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에서는 같은 기간 권순익 작가의 개인전 ‘나의 오늘(Today)’도 함께 열린다. 아크릴 물감에 모래 입자를 섞어 캔버스 위에 여러 색의 물감 층을 두텁게 쌓고, 그 위에 흑연으로 문질러 광택을 낸 회화를 비롯해 조각, 설치 작품을 선보인다. 한국 고유의 색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수백 개의 점으로 기하학적인 화면을 구성한 ‘점 시리즈’와 면과 면 사이 공간에 축적된 시간을 표현한 ‘틈 시리즈’ 등 대표적인 연작을 볼 수 있다. 이번 두 전시는 일본 갤러리인 화이트스톤 갤러리가 지난해 9월 서울 지점을 새롭게 오픈한 이후 처음 개최하는 한국인 작가 전시이기도 하다.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관계자는 “그동안은 주로 일본 작가를 국내에 소개해 왔는데, 앞으로는 한국 작가와의 협업을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순익 작가의 ‘積·硏(적·연)-틈’ 연작이 서울 용산구 화이트스톤 갤러리 서울 전시장에 걸려 있는 모습.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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