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드 ‘양반들’ 풍류 찾아 삼만리…“태평양 용왕님 만나고 왔다”

서정민 기자 2024. 6. 16.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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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힘스 프롬 더 드래곤 레이크’ 발매
밴드 ‘양반들’ 멤버들. 풍류회 제공

죽창 대신 기타를 들고 “자, 한번 엎어보자”(‘아래로부터의 혁명’)고 부르짖던 양반들이 이젠 풍류를 찾아 나섰다. ‘전범선과 양반들’에서 ‘양반들’로 재탄생한 밴드가 12일 정규 1집 ‘힘스 프롬 더 드래곤 레이크’를 발표했다.

1집 ‘사랑가’(2014), 2집 ‘혁명가’(2016), 3집 ‘방랑가’(2017)를 발표했던 ‘전범선과 양반들’에서 리더 전범선만 남고 나머지 멤버들이 모조리 바뀌었지만, 역설적으로 밴드 이름에선 ‘전범선’이 빠지고 ‘양반들’만 남았다.

“원래 고등학교 동문들끼리 결성한 밴드였어요. 저는 음악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지만, 친구들은 생각이 달랐죠. 그래서 그 친구들이 나가고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와 지금의 ‘양반들’이 됐어요.”

12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 합주실 ‘토굴’에서 만난 전범선(보컬)이 말했다. 옆에 누기(베이스), 이지훈(건반), 딸기(드럼), 윤성호(기타), 학(비주얼 아티스트) 등 다른 멤버들도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뉴질랜드 출신 동포로 지난해 정식 멤버로 합류한 학을 뺀 나머지 4명은 아현산업정보학교 실용음악과 출신들이다.

멤버들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새 출발을 선언한 건 아니다. 전범선은 “과거엔 저 혼자 곡을 만들고 밴드를 주도했다면, 지금은 모두 모여 즉흥연주를 한 뒤 이를 바탕으로 제가 멜로디와 가사를 붙이는 식으로 작업한다. 이제야 진짜 밴드가 됐다는 생각에서 ‘전범선’을 떼고 ‘양반들’로 이름을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밴드 ‘양반들’ 멤버들. 풍류회 제공

전범선이 군 복무를 마치고 밴드에 돌아온 2021년 가을, 이들은 풍류를 찾아 경남 산청으로 여행을 떠났다. 황토집에서 즉흥연주를 하며 “이젠 진짜 밴드가 됐구나” 했다. 당시 합주를 바탕으로 만든 미니앨범(EP)이 ‘바람과 흐름’(2022)이다. 이어 지난해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서 작업한 미니앨범 ‘에루화’,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작업한 미니앨범 ‘뉴 문’까지 ‘풍류 3부작’을 완성했다.

윤성호는 “합주 장소와 분위기에 따라 음악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범선은 “산청에선 고지대의 공기가, 해남에선 쨍한 햇볕이, 캘리포니아에선 사막의 건조한 대기가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곡을 쓰는 게 아니라 자연이 써주는 느낌”이라고 했다. 작업 장소에 따라 음악 장르가 바뀌기에 스스로 자신들의 음악을 ‘윈드앤플로’(풍류)로 정의한다.

이번 앨범은 지난해 타이 사무이섬에 머물며 만들었다. 태평양이 내려다 보이는 숙소에서 전범선은 말했다. “여기서 용이 나올 만하구나.” 당시 그는 동학 교조 수운 최제우의 한글 가사집 ‘용담유사’에 빠져 있었다. 2016년 발표한 앨범 ‘혁명가’의 타이틀곡 ‘아래로부터의 혁명’도 전봉준에게 바치는 노래였다.

영국에서 서양철학사를 공부한 전범선은 “서학을 전공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30대 들어 동학을 공부하니 흥미로웠다. ‘용담유사’는 최제우가 깨달음을 얻고 이를 춤과 노래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 풍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 이번 앨범의 주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앨범 제목 ‘힘스 프롬 더 드래곤 레이크’는 ‘용담유사’를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양반들 1집 ‘힘스 프롬 더 드래곤 레이크’ 표지. 풍류회 제공

풍류를 찾아 떠난 양반들이 태평양 깊은 곳 용궁에서 용왕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이야기가 앨범의 얼개다. “바다님은 다 받아주신다”는 가사를 반복하는 첫 곡 ‘바다님’에 이어,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의 타이틀곡 ‘렛 잇 플로’가 부유하듯 흐른다. 다음에 이어지는 다섯 곡은 앨범 안의 작은 앨범이라 할 만하다. ‘용담유사’에 수록된 가사 ‘몽중노서문답가’를 ‘디 올드’ ‘더 영’ ‘퀘스천스’ ‘앤서스’ ‘인 어 드림’으로 풀어냈다. 전범선은 “꿈속에서 젊은이와 늙은이가 문답을 나누는 이야기로, 다섯 곡이 하나의 주제로 이어진다”고 했다.

모두 11곡을 담은 앨범은 나른하고 몽환적이다. 여기에 레게 리듬이나 판소리의 아니리, 꽹과리 등 우리 소리 요소를 넣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범선은 “앨범을 통해 용을 만난 것이 마치 돌아가신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처럼 느껴져 많이 울었다. 이번 작업은 내게 씻김굿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누기는 “합주하면서 다른 멤버들도 각자의 이유로 울었다”고 덧붙였다.

양반들은 14일 해방촌 ‘더 스튜디오 에이치비시(HBC)’에서 새 앨범 쇼케이스를 연 데 이어, 오는 30일 강원 고성 천진해변 ‘글라스하우스’에서 공연한다. 올가을 대만 투어도 준비 중이다. 전범선은 “타이 등 태평양을 돌며 연주하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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