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은 행복했을까… “시대착오적” 비판 직면한 지자체의 저출생 대책 [오상도의 경기유랑]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기반…지자체 미팅 행사
경쟁률 6대 1…성남 ‘솔로몬의 선택’ 절반의 성공
판교 정보기술(IT)기업 직원 등 대세…SNS 화제
세종·김해·광양 등 男女 만남 주선하는 지자체들
#2. 미국 시카고대 교수(역사학) 페기 오도널 헤핑턴의 책 ‘엄마 아닌 여자들’에는 인구 감소의 책임을 오롯이 청년에게 떠넘기는 기성세대의 얄팍한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들은 “책임감 없는 요즘 젊은 애들이 출산을 포기했다”며 저출생을 사회 문제가 아닌 생물학적 문제로 치부한다. 핵가족화와 노동환경, 공동체의 붕괴, 교육문제 그리고 정부의 무능은 덮이고 만다. 요즘 저출생 극복을 내세운 지방자치단체의 움직임도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를 낳지 않거나 못하는 저마다의 사정은 이미 고려 대상이 아닌 듯 보인다.
지난해 7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위례대로의 한 호텔 입구. 이곳 입간판에 담긴 문구는 방문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해 애쓰시는 언론인을 위해 내부 스케치 및 (커플 성사) 결과 자료는 익일 오전 9시까지 제공하겠습니다.”
청춘남녀의 짝짓기 현장을 엿보려는 지역 언론의 취재요구가 쇄도하자 이를 에둘러 거절한 표현이다. 참여자 동의와 개인정보 노출 등을 우려해 현장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당시 첫 미팅 행사를 기점으로 성남시는 매회 행사가 마무리될 때마다 보도자료를 통해 ‘커플 매칭 건수’를 알리고 있다.
단체미팅을 주선하는 이 행사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솔로몬(SOLO-MON)의 선택’이다. 독신을 뜻하는 ‘솔로’를 강조했다.
39세 이하의 성남에서 일하거나 거주하는 미혼남녀가 대상이다. 참가를 위한 경쟁률은 평균 6대 1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판교지역 정보기술(IT)기업 등에서 시의 집중적인 홍보가 이뤄졌고, 인터넷 카페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 몰이를 하며 참가자들이 몰렸다.
다른 지자체의 비슷한 행사가 ‘시대착오적’, ‘세금 낭비’라는 비판에 직면해 취소됐지만 성남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며 자리를 잡았다.
행사 참가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행사는 호감도 높은 남녀가 되는 법을 알려주는 연애 코치와 첫인상 칭찬하기 등 레크리에이션, 일대일 로테이션 대화, 커플게임, 뷔페식 만찬, 와인 스탠딩 파티 등으로 꾸려진다. 추첨을 통해 선정된 매회 100여명 혹은 60여명의 남녀가 오후 3시부터 8시까지 5시간을 온전히 할애한다.
맨 처음 남녀 5명씩 10명이 1개 조로 구성돼 서로를 알아가며 최종 커플을 택하는 식이다. 행사장 밖에는 아케이드 오락기가 마련돼 잠시 긴장을 풀고 오도록 배려한다. 행사가 마무리된 이후 직접 번호를 노출하지 않고 호감도에 따라 각자 연락처를 문자메시지로 알려준다.
행사에 참여한 한 청년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된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나타냈고, 행사장에는 ‘라면 먹을래요’라는 다소 선정적 문구의 현수막까지 등장했다. 이른바 ‘썸’을 타는 MZ세대 남녀가 늦은 밤 자신을 바래다준 이성을 집으로 초대할 때 쓴다는 표현이 “라면 먹고 갈래요?”이다.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시청을 방문해 직접 담당자에게 서류를 제출했으나 추첨에서 떨어졌다며 시샘의 글을 남겼다. 그는 ‘<웹 발신> 아쉽게도 귀하께서는 성남시가∼’로 시작하는 탈락 통보 문자를 공개하며 “아는 사람 직장에서도 이 행사를 신청한 사람이 많다…죄다 남편, 부인은 없는데 남친, 여친은 있는 사람들이 신청했다고 한다”며 ‘뼈 아픈’ 주장을 했다.
‘블라인드’의 토픽란에는 이 행사에 대한 찬반이 엇갈리기도 했다. “성남에 살았으면 신청했는데 아쉽다”는 의견부터 “거긴 학생들이 많다”는 답글이 오갔다.
성남시는 지난해 첫 행사에서 39쌍의 커플을 매칭했다고 알렸다. 이후 올해 첫 행사에선 21쌍이 맺어진 것으로 파악됐다.
첫 결혼 소식도 들렸다. 지난해 11월 5차 행사에 참여했던 군무원 최모(36)씨와 의료인 황모(34)씨가 다음 달 7일 결혼한다고 최근 성남시가 밝혔다.
지난해 7월 1차 행사 이후 지금까지 모두 6차례(지난해 5차례, 올해 1차례)에 걸쳐 행사에 참여한 청춘남녀는 560명(280쌍)이다. 이 중 240명(120쌍)이 커플로 맺어졌는데 어느 정도 관계가 지속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를 수치로 요약하면 참가자 중 커플 성사율은 42.8%이지만, 성혼율은 아직 0.36%에 그친다.
지난해를 기준으로 참가자 1인당 소요예산은 42만3900원이었다.
지난해 이 행사에 460명이 참여해 198명(99쌍)의 커플이 맺어졌는데, 5차례 행사에 든 예산은 모두 1억9500만원이었다. 주소는 성남시와 비성남시(성남 소재 직장)가 6대4, 혹은 7대3 정도다.
담당 행정팀이 성남시 여성가족과에서 저출생 관련 대책을 주관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행사가 향후 가져올 실제 출산율이 투입예산 대비 성과로 드러날 전망이다.
올해 1월 서울시의회의 한 의원은 미술관에서 미혼남녀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열기 위해 조례 일부개정안을 발의했다. “미술관에서 함께 전시를 관람하고 차를 마시면서 자연스럽게 서로 알아가는 기회를 주자”는 의도였다.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6월 ‘서울팅’이라 불리는 미혼남녀의 어울림 행사를 기획했다가 거센 여론의 비판에 직면한 뒤 곧바로 철회했다. 이 행사는 요리, 고궁 탐방 등 자연스러운 만남의 기회를 주고 이를 통해 결혼 문화 장려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청년들이 만남의 기회가 없어 연애나 결혼을 안 하는 건 아니다”, “민간 영역이 아닌 공공 부문에서 만남을 주선하는 건 세금 낭비”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세종시도 지난달 ‘세종시 미혼남녀 인연 만들기’ 행사를 4년 만에 재개했는데 ‘보여주기 사업’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일각에선 지자체가 결혼정보업체로 전락했다는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충북 청주시의 경우 지난해 7월 미혼남녀 30명을 대상으로 한 ‘청주 썸데이’ 행사가 “공공기관이 미팅 주선 기관이냐”는 평가를 받았다. 대전 서구는 2021년 관내 공공기관 미혼남녀를 대상으로 ‘내 짝 찾기’ 만남 주선 사업을 추진했다가 “특정 계층의 특권화를 조장한다”는 질타를 받은 뒤 없던 일로 했다. 같은 해 광주광역시도 비슷한 행사를 마련했다가 출산 가능연령으로 한정했다는 이유로 시의회와 시민들의 반대로 사업을 보류했다.
반면 경북도는 다음 달 ‘청춘시 연애읍 솔로마을’ 행사를 4박5일간 진행할 예정이다. 남녀 24명을 대상으로 만남을 주선한 뒤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지면 5박6일 크루즈 여행을 제공하기로 했다.
2016년 전국 첫 결혼장려팀을 꾸린 대구 달서구의 경우 성혼 커플을 배출하며 ‘고고 미팅’을 이어오고 있다.
경남 김해시는 남녀 20명이 1박2일간 참여하는 ‘나는 김해 솔로’를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3차례 진행했고, 하동군은 인공지능(AI) 무료 중매사이트 ‘맞썸다방’을 운영하고 있다. 하동군의 경우 행정안전부의 인구 감소 지역 지정되면서 확보한 1억7000만원의 예산을 중매사이트 개발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7년부터 ‘광양 솔로엔딩’을 시작한 전남 광양시와 2020년부터 ‘솔로엔딩 컨설팅 사업’을 벌이는 장흥군 역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과 전남, 경남 등 일부 지자체는 매매혼 조장 논란을 불러온 국제결혼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이런 지자체발(發) 맞선행사는 해외라고 예외는 아니다. 일본 도쿄도 역시 최근 미혼남녀 커플 매칭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나섰다. 서약서와 서명을 받고 실명·학력·연봉·사진 등을 검증 받은 뒤에야 참여할 수 있다.
성남시의 솔로몬의 선택을 두고 지역사회에선 아직 성패를 가늠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얘기가 나온다. 행사 초기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시대착오적 행사’, ‘시선 끌기용 이벤트’,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았으나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덕분이다.
시는 지난해 비판적 시선을 고려해 만족도 조사를 병행하는 등 침착하게 상황을 살펴보고 있다.
수많은 부인과 첩을 두고 자녀를 생산했던 솔로몬은 과연 행복했을까. 역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순탄한 말년을 보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의 시민 박모(43)씨는 “청년들이 이성을 만날 기회가 없어 결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저마다의 사정과 고민, 어려움 탓에 결혼과 출산을 회피한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만 25~49세 남녀 2000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결혼·출산·양육 인식조사’에선 여성의 경우, 일생생활의 역할 변화에 따른 불안감 때문에 결혼을 회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자녀를 원하는 비율도 절반을 겨우 넘겼다. 설문에 답한 미혼남녀들은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에는 동의하면서도 90.8%가 저출생 정책은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다.
지자체들이 앞다퉈 추진하는 만남 행사는 사실 정부의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에 근거를 둔다. ‘지자체는 지역사회, 경제 실정에 부합하는 저출산고령사회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무엇이라도 해보는 게 낫다는 말도 있다. 다양한 시행착오를 거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실효성을 찾기 위한 노력은 오롯이 성남시와 다른 지자체의 몫이다.
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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