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민주당의 입법독주 데자뷔
"집주인이 연장 안 해준대. 어떡하지?"
2021년 8월 새벽 1시. 머리 맡에 둔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죽마고우 S였다. 그는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집주인이 더 이상 전세를 연장하지 않고, 자기가 들어와서 살겠다는 내용이다. 1년 반 전 계약 때만 해도 '오래 살아달라'던 집주인은 "사정이 바뀌지 않았느냐"며 연장 요구를 일거에 잘랐다. 주변에 전세는 이미 씨가 말랐다. 부동산 폭등으로 그가 가진 전세금으로는 당시 살던 지역의 집을 살 수도 없었다. 촛불 정부의 지지자였던 S는 "XX, X같은 정부와 민주당이 부동산 폭등시켜서 '벼락거지' 만들더니, '임대차 3법'이라는 폭탄까지 얹었다"며 "난 진짜 성실하게 산 죄밖에 없는데, 왜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나, 내가 왜"라고 절규했다. 결국 그 친구는 1년 뒤 경기도 어느 지역에 집을 샀다. 지금은 와이프와 함께 2시간 가까이 시간을 들여 서울까지 출근하고, 아이들은 사는 지역이 마음에 안든다고 투덜거린단다. 이젠 다른 게 문제다. S는 만날 때마다 "집값이 하도 요동쳐서 미치겠다. 가뜩이나 상투 잡는 바람에 빚도 꽤 졌는데…"라고 말한다.
이런 모든 사실은 임대차 3법이 통과되던 2020년 7월 31일 정확하게 예측됐다. 임대차 3법의 골자는 세입자가 계약생신청구권을 사용할 경우 2년 더 살 수 있게 보장해주고, 임대료는 계약 5%내에서 올릴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다만 신규 계약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했고 집주인이 실거주를 목적으로 입주할 경우, 계약갱신을 거절 할 수 있는 등 법률에 허점이 많았다.
당시 윤희숙 미래통합당 의원은 '저는 임차인입니다'로 시작되는 국회 5분 연설에서 "오늘 표결된 법안을 보며 더 이상 전세는 없겠구나. 그게 고민이다. (인상률을) 5%로 묶었으니 괜찮을 것이다? 제가 임대인이라도 세 놓지 않고 아들, 딸한테 들어와 살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당시 법안을 밀어붙인 여권 인사, 민주당 인사들은 일말의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입법독주'라는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은 21대 국회 남은 임기기간 임대차 3법뿐만 아니라 양곡관리법, 방송3법, 각종 특검법을 단독으로 통과시켰다가 윤석열 대통령의 재의요구(거부권)에 직면했다.
의석수가 171석이 된 22대 국회에선 더 기세등등하다. 초반부터 '닥치고 6월 입법'을 고수하고 있다. 강행 근거는 민심이 윤석열 정부를 심판했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다른 상임위에서 올라온 법안들에 대한 '게이트 키퍼' 역할을 하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까지 장악하고 연일 독주 행진을 한다. 위원장은 강성 친명(친이재명)인 정청래 의원이다. 의석수가 108석인 국민의힘은 무기력하다.
거침이 없다. 각종 특검법의 대향연이다. 우선 윤 대통령이 재의요구(거부권)로 폐기된 법안 통과를 다시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 등 야권은 14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단독으로 열어 2개 법안심사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법'(채상병 특검법)을 제1법안소위에 회부했다. 아울러 오는 21일에는 '채상병특검법' 입법 청문회를 연다. 앞서 13일 국회 정책의원총회에선 당론으로 채택한 22개 법안에 '김건희 특검법'과 '방송 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을 포함했다.
이재명 대표 방탄을 위해 입법권도 남용하고 있다. 이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 대북 송금 사건'과 관련한 특검법이 대표적이다. 법안은 이 사건을 수사 하는 검찰이 대북 송금 사건을 조작했다며 이 사건 수사 검사들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정도면 입법의 사유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치 21대 국회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입법독주는 물론 민생과 괴리되는 현실도 여전하다. 오히려 대규모 재정지출을 수반하는 포퓰리즘 법안이 판을 친다. 민생 회복 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 조치법(전 국민 25만~35만원 지급)과 전세사기 특별법 등이다. 민생회복지원 특별법을 두고는 민주당이 기대하는 내수 진작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전세사기특별법의 '선(先) 구제, 후(後) 회수' 방안은 다른 피해구제 방안과 형평성이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와도 '요지부동'이다.
반대 의견은 어느덧 적폐가 되는 분위기다. '내 세금을 도대체 언제까지 무분별하게 사용할 것이냐'고 문제제기하는 유권자들과도 괴리가 생긴다. 이젠 자신들을 향해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에 막말까지 일삼는다. 이 대표는 자신과 연루된 대북송금 사건을 취재하는 검찰 출입 기자들을 향해 '애완견'으로 비하하고, 나아가 양문석 의원은 "애완견에 대한 지독한 모독"이라며 "기레기"라고 원색 비난했다. '사법리스크'에 연일 휩싸이는 당대표와 '막말'과 재산축소신고 의혹을 받는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다.
또 다른 데자뷔가 생길 수가 있다. 오는 2026년엔 지방선거, 2027년엔 대통령 선거가 있다. 민주당이 이대로 가다간 본인들이 패한 2022년 대선과 지선 데자뷔와 맞닥뜨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길 바란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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