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앞바다에 석유는 모르겠고 이것은 확실히 대박”...캠핑족 사로잡은 홍게 [푸디人]
경북 포항 앞바다가 훤히 보이는 ‘썬빌리지 오토캠핑장’을 예약할 때만 해도 동해가 이렇게 뜨거운 관심을 받을지 몰랐다. 포항 영일만 인근에 석유와 가스가 최대 140억 배럴이나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있다니…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앞으로 두고보면 될 것이고 지금 당장은 그 석유보다 더 값진 홍게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무엇보다 캠핑장서 차로 운전해 약 15분 가량 소요되는 구룡포 시장의 재미를 빼놓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구룡포 시장은 후동천이 내항으로 흘러나가는 사거리에서 부두 입구인 수협교차로까지 항구 도로와 구룡포 초등학교 앞 안길도로를 잇는 커다란 직사각형 블록 형태이다. 그 가운데에 아케이드 지붕을 올린 시장통이 십자로 뻗어 있다.
구룡포는 조선 시대까지 대체로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그러나 1883년 조선과 일본이 체결한 조일통상장정 이후 일본인의 조선 출어가 본격화되면서 일본인이 대거 정착하기 시작했다. 1906년에는 가가와현의 어업단 80여 척이 고등어 떼를 따라와 구룡포에 눌러앉았고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일본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자연스레 일본인 가옥거리도 생기면서 지금도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가 보존되어 있다. 이곳은 2019년 방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촬영지로도 유명해 관광객들이 꽤 몰리는 곳이 되었다. 특히 동백이 집인 까멜리아와 공원 등이 인기 명소로 자리 잡았다.
이밖에 50년 넘게 바닷바람에 국수 가락을 말리며 재래식으로 만드는 국수공장 해풍국수, 구룡포의 향토음식인 모리국수, 70년 전통의 찐빵과 단팥죽 맛집인 철규분식도 입을 즐겁게 한다.
역사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시장에 들어서면 항구에 인접한 시장답게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듯한 해산물이 먼저 반긴다. 활어와 대게, 과메기가 주인공이다. 그러나 눈길은 이미 홍게에 가 있다.
일단 대게의 ‘대’는 ‘큰 대(大)’가 아니라 ‘대나무의 대’를 의미한다. 대게의 다리들이 대나무와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홍게는 이름 그대로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홍게’라 불린다.
또한 제철 시기도 조금 다르다. 대게의 제철 시기는 11월부터 5월로 알려져 있으나 홍게는 7~8월 금어기를 제외하면 거의 연중 즐길 수 있다는 점이 매력이다. 그래도 1월에서 6월 사이에 먹는게 낫다는 게 현지인들의 얘기다.
대게와 홍게는 일반인이 보기에는 불그스름한 색상과 생김새가 비슷해 쉽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특히 삶았을 경우에는 둘 다 색깔이 붉은색을 띠기 때문에 반드시 삶기 전에 생물을 직접 보고 구매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대게와 홍게를 구분할 때는 배 부분의 색을 살펴본다. 대게는 대체로 배 부분이 흰색을 띠고 등껍질은 붉다. 반면, 홍게는 등과 배 모두 붉은색이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잡종 게가 많아지면서 색으로는 구분이 쉽지 않다.
그나마 등껍질의 측면에 있는 줄의 개수로 좀 더 구분이 가능한데 홍게는 1개의 줄이 있고 대게는 2개의 줄이 있다.
홍게도 A급이 있고 실한 아이들이 많다. 홍게가 맛없다는 편견은 구룡포에서는 일단 접어둬야 한다. 대게 못지않은 맛에 가격도 싸니 그만하면 금상첨화 아닌가!
참고로 홍게도 종류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연안과 가까운 수심이 얕은 곳에서 잡히는 연안홍게는 일명 ‘연지홍게’라고도 불리는데 장맛이 대게와 흡사하고 단맛이 난다. 크기가 상대적으로 작고 많이 잡혀 가성비가 좋아 칼국수나 라면에 육수용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비교적 깊은 수심에서 잡히는 홍게는 목질이 단단한 박달나무처럼 속이 꽉 차 있다고 해서 이름이 박달홍게이다. 크기가 크고 살이 튼실해 연안홍게보다는 가격이 비싸다.
식당 내부는 전반적으로 깨끗했는데, 테이블마다 조개와 홍게 껍데기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무슨 칼국수를 팔길래 저렇게 해산물을 많이 넣어주나 싶었다.
가게명과 같은 홍게칼국수와 해물파전을 주문했다. 이런 메뉴에 막걸리를 마시지 않는다면 한국인이 아닐 터!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일까, 한마디로 의외의 맛집이었다. 아주 게걸스럽게 홍게를 뜯었고 손이 아플 정도로 조개를 껍질에서 발라냈다. 게다가 면이 자가제면이라니… 1인분에 1만4000원이라는 가격이 시골이라고 하지만 전혀 비싸게 느껴지지 않았다. 해물파전에도 해물이 실하게 들어가 있었고 막걸리를 끊임없이 비우게 했다.
응당 물회라면 얼음 동동 뜬 시원한 육수에 광어·도다리·한치 등 각종 회와 채소를 넣고 초장 듬뿍 뿌려서 새콤달콤하게 먹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포항식 물회는 뻑뻑하다. 육수 대신 얼음과 물을 조금 넣고 초장 대신 고추장으로 양념을 맞추니 그럴 수 밖에… 취향에 따라 설탕, 초고추장, 식초를 둘러준다고 하는데 물 없는 물회인 포항스타일은 조금 익숙지 않았다. 나 같은 관광객을 위해 포항식 물회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물회도 팔고 있었는데 여럿이 갔다면 하나씩 시켜 맛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하다.
그리고 물회를 시켰는데 생선의 살을 발라내고 낸 나머지인 ‘서더리’로 매운탕을 끓여줬다. 더운 여름에 시원함을 느끼고자 물회를 시켰는데 뜨거운 매운탕이라니… 이것도 약간 문화충격이었는데 맛은 기대 이상이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사장님이 “물회 먹을꺼지요?”라고 물으면서 매운탕 냄비에 불을 댕긴 게 바로 이 때문이었다.
여름 휴가철만 되면 관광지서 ‘바가지를 썼다’는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다행히 이번 여행에서는 여행 기분을 망치는 그런 일은 없었던 거 같다. 올해는 소래포구의 바가지 요금 같은 불상사가 반복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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