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받아도 유급 안 한다"···구제책에도 꿈쩍 않는 의대생

성채윤 기자 2024. 6. 1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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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급 막는 '가이드라인'에
"의대 교육 부실 불가피" 우려
의대생에만 지나친 특혜 비판도
[서울경제]
의대 증원에 반발하는 의대생들의 집단 휴학이 이어지고 있는 3일 대구 한 의과대학 강의실에 의사 가운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F학점을 받은 의과대학생도 유급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는 특단의 구제책을 내놨으나 의대생들의 복귀 조짐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있다. 의대 정원 증원 정책에 반발해 수업을 거부하는 의대생을 학교로 복귀시키겠다는 정부의 정책이 오히려 의대 교육을 더 부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수업을 거부하고 정부의 대화 요구에도 응하지 않는 의대생들에게만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16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난 14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주재로 의대 교육 정상화 관련 브리핑을 열고 의대생들이 원활하게 교육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대학과 협의해 ‘비상 학사 운영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가이드라인에는 1학기에 의대생들이 이수하지 못한 과목을 2학기에 추가 개설하는 방안, 학기 말에 유급 여부를 확정하지 않고 학년도 말까지 수업 결손을 보충하면 그 과정을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안 등이 담겨있다.

교육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한두 과목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해 F를 받은 의대생에게 재이수 또는 보완의 기회를 부여하거나 추가 학기인 3학기를 개설해 수업 기간을 확보하고, 학년 간 교육과정을 일부 개편하는 방안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대부분 의대 학칙상 한 과목이라도 F 학점을 받으면 유급 처리되는데 이 기준을 대폭 완화해 의대생들이 복귀하기만 한다면 원래대로 진급을 시키겠다는 의미다.

이 부총리는 당시 브리핑에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유급되지 않고 수업에 복귀해 그간의 학습 공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최선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번 대책으로 의대생이 돌아올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이 부총리는 “대학별로 (의대생 복귀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교육부도 최대한 힘을 보태겠다”며 “가이드라인을 조속히 만들어 의대생들이 빨리 복귀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당근’ 전략에도 의대생들은 현재까진 요지부동이다. 의대를 운영하는 한 수도권 대학 관계자는 “대학에서 어떻게 조치하는지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고, 전공의들이 의대생들과 같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전공의부터 돌아와야 학생들도 돌아올 것 같다”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의대생들의 복귀를 위해 마련한 고육책이지만, 이로 인한 의대 교육 부실화에 대한 우려는 잠재우기 어려워 보인다. 의대생들이 의대 증원 반대 이유로 꼽은 ‘교육 부실 우려’가 정원을 본격적으로 늘리기도 전에 현실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의대에 다른 학과에 없는 유급 제도를 둔 것은 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취득한 학생만 다음 학년으로 진급할 수 있도록 해 의대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해서다. 학년별로 커리큘럼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이전 학년의 수업 내용을 충분히 배우지 않으면 다음 학년 수업을 제대로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의대생 복귀 수단으로 유급을 없애면 올해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의대생들도 진급하게 돼 올해뿐 아니라 추후 의대 재학 기간 내내 교육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의대들은 또 한국의학교육평가원(의평원)으로부터 의대 교육과정과 교육환경에 대한 평가 인증을 2년이나 4년, 6년 주기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같이 진급이 부실하게 이뤄지면 의평원으로부터 인증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의과대학 정상화를 위한 총장협의회'를 구성한 의과대학 보유 총장들이 지난 7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과 면담을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이에 더해 교육부가 정부 정책에 반발해 학교를 떠난 의대생들에게 지나치게 저자세로 나온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대생들은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에 반대하며 지난 2월 중순부터 집단으로 휴학계를 내고 수업을 거부해왔다. 지난달 16일 서울고등법원이 의대 증원 및 배정과 관련한 의료계의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각하했고 정부는 2025학년도 대입 모집요강을 발표함에 따라 더는 증원을 막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들은 여전히 ‘증원 원점 재검토’만을 외치고 있다. 교육부가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 학생협회(의대협)에 두 차례 공식적으로 대화를 요청했으나 불응했고, 개별 대학교 학생회를 통한 만남 요청에도 답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등 소통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교육계 일부에서는 '의대생 복귀 호소' 일변도 정책이 4개월째 무용지물인 상황에서 교육부의 전략적인 판단이 아쉽다는 목소리도 있다. 교육부가 의대생들을 유급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를 강조하자 오히려 유급에 대한 우려가 사라져, 복귀를 고민하던 의대생들마저도 더는 강의실로 돌아올 유인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심민철 교육부 인재정책기획관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인증평가 주관기관인 의평원과 교육의 질이 떨어지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인증받을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논의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의대생 특혜 논란에 대해서는 “타과생들의 형평성 제기 부분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의대생 수업과 관련해 비상한 상황은 비상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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