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소송전'에 주가 5분의 1 토막…휴젤만 노났다 [한경우의 케이스스터디]

한경우 2024. 6. 16.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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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째 보톡스 소송 나섰던 메디톡스
국내 점유 1위 내주고 글로벌 빅마켓 진출도 지연
휴젤, 빅마켓 집중한 대웅제약 보다 앞서
美·中·EU 모두 진출…주가도 '쑥쑥'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기업들끼리의 보툴리눔톡신제제(일명 보톡스) 균주 분쟁이 이제는 마무리될 전망입니다. 경쟁사들의 균주 도용을 주장해온 메디톡스가 두 번째 표적으로 삼은 휴젤과의 소송전에서 패색이 짙어졌기 때문입니다. 2017년부터 7년째 소송전을 이어온 메디톡스가 받아든 결과는 참담합니다. 주가가 2018년의 고점 대비 80%가량 폭락했습니다.

 ‘국산 보톡스 원조’ 메디톡스, 이젠 증권가서 외면받아

1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14일 메디톡스는 13만1500원에 거래를 마쳤습니다. 2018년 7월9일의 고점(67만4954원)과 비교하면 6년여동안 80.52% 하락했습니다.

주가만 보면 곧 망할 회사 같지만, 그렇진 않습니다. 여전히 국내 보툴리눔톡신제제 시장을 휴젤·대웅제약 등과 과점하고 있습니다. 액상형 보툴리눔톡신제제는 세계 최초로, 약효가 듣지 않는 내성 발생 가능성을 줄인 제품은 국내 최초로 각각 개발했을 정도로 기술력도 있습니다.

국내 기업 중 보툴리눔톡신제제를 가장 먼저 개발한 회사도 메디톡스입니다. 한국에서는 선발주자인 셈이죠.

사진=메디톡스


현재는 선발주자의 광채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보툴리눔톡신제제 업체들의 지상과제인 글로벌 빅마켓 진출에서 경쟁사들에 한참 뒤졌습니다. 미국·중국·유럽 중 한 곳에도 진출하지 못했습니다. 대웅제약은 미국과 유럽에, 휴젤은 세 곳 모두에 각각 진출했는데 말이죠. 국내 시장 점유율도 휴젤에 밀려 2위로 내려앉았습니다.

초라해진 메디톡스의 위상은 증권가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 3개월동안 메디톡스에 대한 실적 추정치를 제시한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 한 곳 뿐입니다. 그나마도 메디톡스라는 기업을 분석한 보고서가 아니었습니다. 메디톡스와 휴젤과의 미 국제무역위원회(ITC) 소송전을 다룬 산업 보고서에 메디톡스의 실적 추정치를 넣어줬을 뿐입니다.

한국투자증권은 메디톡스의 올해 보툴리눔톡신제제 매출 추정치로 1332억원을 제시했습니다. 전년 대비 14.3% 증가한다는 추정치입니다. 위해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법무비의 불규칙한 집행으로 인한 이익 변동이 올해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메디톡스의 추락 배경에는 ‘균주 소송전’이 있습니다. 위 원구원의 말처럼 막대한 소송 비용 지출도 한몫 했지만, 전부는 아닙니다.

 美ITC 소송전, 예판 전부터 증시선 ‘휴젤 승리’에 베팅

우선 휴젤과의 미 ITC 소송부터 살펴보시죠. 이 소송은 메디톡스의 패색이 짙습니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나온 예비판결에서 재판부는 휴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휴젤의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되기에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린 겁니다. 미 ITC 소송에서 예비판결이 뒤집힌 사례는 매우 드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메디톡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액상형 보툴리눔톡신제제 이노톡스. /사진=메디톡스


소송이 처음 제기된 2022년 3월 당시 메디톡스 측 주장의 요지는 ‘휴젤의 제품은 메디톡스의 균주와 기술을 도용해 개발된 불법적 제품이니 미국으로 수입되기에 부적절하다’는 겁니다. 균주는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만드는 원료로 생각하면 쉽습니다. 균주를 통해 배양한 보툴리누스균이 보툴리눔톡신제제를 만들 독소를 뿜어냅니다.

예비판결이 나오기 전부터 이미 판세는 휴젤 쪽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예비판결이 나오기 직전인 지난 10일 종가 기준으로 메디톡스 주가는 작년 말 대비 40.37% 하락했지만, 휴젤은 42.57% 상승했습니다. 주식시장이 휴젤의 승리에 베팅하고 있었던 겁니다.

 대웅제약 상대론 이겼지만…“상처뿐인 영광”

휴젤을 상대로 처음 소송을 제기할 당시만 해도 메디톡스는 자신만만했습니다. 이미 대웅제약을 상대로 비슷한 소송을 제기해 승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ITC가 손을 들어준 예비판결을 바탕으로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인 에볼루스와 합의해 회사 지분과 판매 로열티를 받기로 한 바 있습니다. 또 비슷한 내용으로 제기한 대웅제약과의 민사소송 1심에서도 이겼고요.

소송 과정에서 메디톡스와 대웅제약 사이에서는 치열한 비방전이 벌어졌습니다. 두 회사와 관련한 폭로도 이어졌습니다.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각 측은 소송 상대방이 폭로와 연관 있는 것으로 의심했습니다.

대웅제약의 미국 판매용 보툴리눔톡신제제 주보. /사진=대웅제약


이 과정에서 더 큰 상처를 입은 건 메디톡스였습니다. 보툴리눔톡신 제제에 대한 시험성적서 조작, 원액 바꿔치기 등의 약사법 위반 의혹이 제기되면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주력제품 모두에 대한 품목허가 취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메디톡스는 식약처 처분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고, 집행정지가처분을 인용받아 해당 제품에 대한 판매를 이어오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다급하게 뉴럭스라는 신제품을 개발하는 등 수고를 해야 했죠. 업계에서는 메디톡스가 행정소송에서 패소해 주력제품을 판매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뉴럭스 개발에 나섰다는 추측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

 메디톡스·대웅제약 ‘진흙탕 싸움’에…휴젤은 ‘어부지리’

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이 벌인 치열한 소송전의 숨은 승자는 휴젤입니다. 우선 휴젤은 메디톡스가 차지하던 국내 보툴리눔톡신 시장 1위 자리를 빼앗았습니다.

글로벌 빅마켓 진출 부분에서는 대웅제약이 억울할 법합니다. 대웅제약은 보툴리눔톡신제제를 개발한 직후부터 국내 시장에서의 점유율 싸움보다는 글로벌 빅마켓 진출에 주력해왔습니다. 그 결과 국산 보툴리눔톡신제제 업체 중 가장 먼저 미국 시장에 진출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중국, 유럽 등 3대 빅마켓에 모두 진출한 첫 번째 한국 회사라는 타이틀은 휴젤에 내주게 됐습니다. 

휴젤의 보툴리눔톡신 제제 ‘보툴렉스(수출명 레티보)’. /사진=휴젤


주가로도 휴젤의 '어부지리'가 확인됩니다. 지난 14일 휴젤은 22만1000원으로 마감됐습니다. 올해 들어 47.92% 상승했습니다. 역사적 최고가인 2021년 7월16일의 26만7000원까지는 4만6000원(20.81%) 남은 상태입니다.

증권가의 목표주가 컨센서스(추정치 평균)는 28만7500원입니다. 미 ITC의 예비판결이 나온 뒤 한국투자증권은 목표주가를 기존 25만원에서 30만원으로, 다올투자증권은 27만원에서 35만원으로 각각 상향했습니다.

한경우 한경닷컴 기자 ca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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