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m 꽃에서 난 의문의 시체썩은 냄새···모두 ‘번식’을 위한 것이라고? [생색(生色)]

강영운 기자(penkang@mk.co.kr) 2024. 6. 16.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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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색-29] “저 꽃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난다.”

울창한 밀림 속 탐험가는 모골이 송연해졌습니다. 지름이 1m에 달하는 큰 꽃이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새빨간 붉은 꽃 가운데가 크게 뻥 뚫린 모습은 아름다우면서도 동시에 공포감을 자아내기에 충분합니다. ‘식인하는 괴물 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이 탐험가의 머릿속을 지배합니다.

호기심이 공포를 이겨냅니다. 가까이 가보니, 시체 썩는 듯한 냄새가 진동합니다. 메스꺼움에 구토하기도 여러 번. “세계를 관찰하겠다”는 탐험심이 없었다면 이 꽃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았을 테지요.

거대한 크기의 라플레시아는 악취로도 그 명성이 자자하다. [사진출처=SofianRafflesia]
1818년 영국 해군이자 박물학자인 조셉 아놀드가 인도네시아 섬을 탐험하다가 생긴 일화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발견을 즉각 인도네시아 벨쿨렌의 부지사이자 가장 친한 지인이었던 스탬포드 래플스에게 보고합니다.

“이 지구에서 가장 이상한 식물을 발견했습니다.” 자연과 역사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던 스탬포드 래플스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지요(당시 제국주의자들은 영토 지배와 함께 새로운 역사, 동물, 식물을 발견하는 일에도 상당한 호기심을 보였습니다).

“저 꽃 냄새...도대체 뭐야”스탬포드 래플스 경. 꽃의 존재를 재확인한 그의 이름을 따서 라플레시아로 명명됐다.
조셉 아놀드가 처음으로 보고하고, 래플스가 재확인한 이 꽃의 이름은 ‘라플레시아 아르놀디’. 두 사람의 이름에서 학명을 땄습니다. 현지어로는 ‘분가반카이’라고 불리는데, 시체꽃이라는 의미입니다. 꽃의 악취가 현지 사람들에게도 퍽 인상적이었던 것이지요.

만화 포켓몬스터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실 겁니다. 캐릭터 냄새꼬-라플레시아 바로 이 식물에서 영감을 따왔습니다.

대영제국을 들썩이게 한 이 꽃
식물의 발견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전역에 화제를 불렀습니다. 거대한 크기, 수려한 외관, 거기에 시체가 썩는 듯한 악취라니. 이색적인 것을 갈구하던 영국인들의 지적 호기심을 크게 자극했지요.

런던 브리티시 뮤지엄에서 전시된 이 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몰리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들 중 몇몇은 신사의 체면에 맞지 않게 구토를 하기도 했지만.

푸른 숲에서 붉은 자태를 뽐내는 라플레시아는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만하다. [사진출처=Steve Cornish(cornstaruk)]
라플레시아의 악취는 꽃의 세계에서는 이례적이기 그지없습니다. 일반적으로 꽃들은 향기를 뽐내면서 많은 곤충을 유혹합니다. 꽃가루를 멀리 날려 번식하기 위해서입니다. 처음에 라플레시아의 악취를 두고 학자들이 포식자로부터 ‘방어’를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 배경입니다. 향기로 곤충들을 불러 모으지는 못할망정, 시체 썩는 냄새라니.
악취도 모두 번식을 위한 것이었다
연구가 진행된 끝에 결론이 뒤바뀝니다. 그 역겨운 냄새 또한 ‘번식’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라플레시아꽃을 다시 한번 보시지요. 사람들이 모두 코를 막고 있는 이 꽃을 유독 사랑하는 존재들이 있었습니다. ‘파리’입니다. 썩어 문드러진 고기, 과일과 같은 온갖 부패한 것들을 사랑하는 놈들이지요.

“와 내가 좋아하는 냄새야.” 병파리의 일종인 칼리포라 힐리. [사진출처=JJ 해리슨]
라플레시아가 뿜어내는 악취에 이 녀석들은 헤어 나올 수 없습니다. 삼겹살에 구운 김치 냄새에 한국인들이 군침을 흘리듯이, 이 녀석들은 본능적으로 라플레시아에 몰려드는 것이지요.

라플레시아가 파리를 유혹하는 이유는 역시 ‘번식’을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꽃가루를 잔뜩 묻혀 널리 널리 개체를 퍼뜨리는 전략이지요. 화사한 꽃들이 꿀과 향기로 벌을 이용하듯, 라플레시아는 악취로 파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파리도 제법 좋은 전달자라고.” 헬리코디케로스 무스시보루스도 라플레시아처럼 악취로 파리를 유혹해 꽃가루를 퍼뜨린다.
서로 다른 존재를 이용할 뿐, ‘수분매개자’의 도움을 받는다는 점에서 양자의 차이는 거의 없는 셈이지요. 헬리코디케로스와 같은 식물 역시 라플레시아처럼 악취를 이용해 번식하는 전략을 사용합니다.
태양도 없이 사는 기생식물 라플레시아
라플레시아가 학계의 주목을 받는 건 단지 냄새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의 생김새 또한 다른 식물과 확연히 다릅니다. 지름 1m에 달하고(기네스가 인정한 세계에서 가장 큰 꽃), 무게가 10kg까지 나가는 이 식물에는 줄기와 뿌리가 없습니다. 꽃만 덩그러니 땅 위에서 화려한 자태를 뽐냅니다.

이 식물은 온전히 제 힘으로 살아가는 대신, 다른 존재에 기생하면서 살아갑니다. 테트라스토이그마로 불리는 덩굴식물에 붙어 영양분을 흡수하지요. 이 녀석은 다른 식물들과 달리 광합성이 필요하지도 않지요.

“아유 내 집처럼 편하네 그랴” 기생식물 라플레시아. 일반적으로 지표면에서 기생하는 것과 달리 사진 속 라플레시아는 늘어진 뿌리에 매달려 자라고 있다. [사진출처=Maizal]
라플레시아가 처음부터 악취나고 기생하면서 살아갔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속한 대극과의 다른 식물들은 크기가 크지도, 악취를 풍기지도 않지요. 사촌지간임에도 너무나 다른 생존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셈입니다.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이 만든 라플레시아
그들이 이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건 인도네시아 열대우림의 치열한 경쟁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열대우림에서는 그만큼 독특한 생존방식이 필요하지요.

강렬한 향기를 뿜어내는 식물들이 워낙 많기에, 웬만한 향기로는 나비와 벌들을 유혹하기 쉽지 않습니다. 라플레시아가 악취로 파리를 유혹하는 생존 전략을 선택한 배경이지요.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열대우림은 생명 다양성으로 이름난 곳이다. [사진출처=Junaidi Hanafiah]
열대우림은 생명 다양성이 높은 지역이지만, 마냥 살기 좋은 지역은 아닙니다. 특히나 지표면에 붙어 사는 작은 식물들엔 더욱 그렇습니다. 울창한 수목이 대부분의 빛을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광합성이 있어야 하는 식물들엔 최악의 환경이지요. 라플레시아가 친척들과 달리 광합성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배경도 여기에 있습니다. 기생식물로 진화한 것 역시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지요.
생명 다양성을 증명하는 라플레시아
이 꽃은 우리 인간에게 많은 영감을 줬습니다. 인도네시아 원주민들은 라플레시아를 신성시하곤 했습니다.

인간이 죽은 뒤 윤회의 과정에서 라플레시아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꽃에서 시체 썩은 냄새가 나는 건 죽은 인간이 다시 물질적 존재가 되는 과정에 있다고 믿었지요. 동남아 문화권에서 이 꽃이 행운의 상징이 된 이유입니다.

말레이시아 10링깃.
말레이시아 사람드은 10링깃 지폐에 라플레시아를 새겨넣었습니다. 식물이 수백만년 동안 품어 온 아름다움을 그들은 꿰뚫고 있던 것이지요. ‘장대한 미와 순결’(라플레시아의 꽃말)은 그 ‘악취’ 속에서도 감춰지지 않은 셈입니다.
라플레시아의 한 종. [사진출처=JOEL VILLANUEVA]
<세줄요약>

ㅇ라플레시아는 지구상 가장 큰 꽃으로, 시체 썩는 냄새가 난다.

ㅇ썩은파리를 유혹해 자신의 꽃가루를 멀리 퍼뜨리기 위한 전략이다.

ㅇ우리 인간의 삶이 제각각이듯, 라플레시아도 본인만의 번식방법을 찾은 것이다.

<참고문헌>

ㅇ이나가키 히데히로, 싸우는 식물, 더숲,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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