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나올 것"…'젊은 땅' 포항·영일만에 눈독 들이는 이유
윤석열 대통령이 3일 “포항 영일만 앞바다에서 막대한 양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물리탐사 결과가 나왔다”고 발표하면서 관심이 뜨겁다. 포항은 약 50년 전인 1976년에도 석유가 있다는 추측이 나와 주목받은 곳이다. 7년 전엔 포항 한 공사장에서 땅을 파다가 천연가스가 나오기도 했다.
포항이 석유, 천연가스로 지금까지 입에 오르내리는 이유는 '퇴적학 연구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13일 포항의 퇴적 지형을 40년 넘게 연구 중인 황인걸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명예연구원에 따르면 포항은 국내에서 가장 희귀하고 연구거리가 많은 퇴적 지형이다. 포항이 석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 "석유 있다 추측 과학적으론 일리 있어"
여러 석유 발생 이론 중 가장 유력한 것은 '생물발생설'이다. 유기성인설이라고도 불린다. 유기물의 사체가 오랜 세월에 걸쳐 퇴적될 때 열과 압력의 영향을 받으면서 만들어진다는 내용이다. 유기물이 열과 압력을 받으면 끈적끈적한 물질 '등유'가 된다. 등유가 자연 상태에서 탄소와 수소 원자로만 구성된 더 작고 가벼운 입자로 바뀌는데 이 물질이 액체가 되면 석유, 기체가 되면 천연가스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동시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생물발생설에 따르면 석유는 당연히 퇴적 지형에서 발견된다. 한국석유공사가 자사 홈페이지에 '석유생성과정'에 대해 설명한 내용에 따르면 '유전'이 생성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먼저 유기물을 함유한 퇴적암이 널리 발달해 큰 퇴적 분지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적절한 온도와 압력에 의해 화학변화가 진행돼야 한다. 또 지각의 변동에 의해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이루어야 한다.
포항은 이같은 조건에 대체로 부합해 오랫동안 석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됐다. 한반도는 대부분의 지역이 중생대, 고생대에 만들어진 매우 오래된 지질 구조를 갖고 있다. 지반이 거의 화강암이나 변성암이다. 포항은 다르다. 포항-경주 일대는 신생대 제3기에 형성된 퇴적층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젋은 땅이라 불리는 이유다. 약 1500만 년 전에는 깊은 바다 속에 있었다고 알려진다.
황 연구원은 "포항은 육지에서 퇴적된 퇴적층과 심해에서 퇴적된 퇴적층 모두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1700만 년 전부터 신생대 제3기에 포항 분지가 바다로 변하면서 빠른 속도로 침강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1500만 년 전 현재 포항 시내가 1500m 수심에 가라 앉아 있었다가 600만 년 전부터 육지로 일부 땅이 올라온 것으로 분석된다. 침강은 외부의 자연적인 힘으로 인해 땅덩어리가 주변보다 낮아지는 현상이다. 포항 땅에 유기물이 상대적으로 많은 이유다.
또 포항 지반은 석유가 만들어지기 위한 고온 환경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은 과거 지구 내부의 열을 이용해 전력을 만들어내는 지열발전이 시도된 곳이다. 포항시 북구 흥해읍 성곡리의 경우 지하 1.3㎞ 지점에서 50℃, 지하 2.3㎞ 지점에서 90℃ 정도의 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한반도에선 보통 지하 1㎞ 지점에선 30~35℃의 물이 나온다. 한반도에서 울릉도를 빼고 가장 지열이 높은 지역이 포항이다.
지열이 높은 이유는 포항 땅이 신생대 3기 퇴적층이기 때문이다. 젊은 땅이라 땅이 덜 식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층은 열전도도가 낮아 열보존 효과가 높다. 심부로부터 더 많은 열원이 공급될 수 있다.
황 연구원은 "한반도와 일본 땅이 붙어있다가 벌어지며 동해 바다가 생겨났다"면서 "특히 포항 일대는 땅이 벌어지는 속도가 100만년에 400~500km씩 벌어질 정도로 빨랐기 떄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땅이 벌어지는 속도가 빠르면 그 사이 지각이 넓고 얇게 퍼진다. 지각이 얇아 아래에 있는 뜨거운 맨틀과 지표면의 거리가 가까워지면서 지열이 높아지는 원리다.
마지막으로 포항은 석유 생성의 마지막 조건인 지각의 변동에 의해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갖고 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매장 분석을 담당한 비토르 아브레우 미국 액트지오 고문은 7일 정부 브리핑에서 "우리가 분석한 모든 유정이 석유와 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제반 요소를 갖췄다"고 말했다.
석유·가스의 존재를 암시하는 모든 제반 요소는 저류층인 모래, 덮개암인 진흙, 기반암, 트랩 등 4가지로 석유가 고이기 쉬운 지층 구조를 가리킨다. 석유와 가스는 지형을 따라 이동하는데 모래로 이뤄진 저류층을 만나면 쌓인다. 이때 진흙·암염 등이 덮개암 역할을 하면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석유·가스를 가두는 구조인 트랩을 형성한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초빙교수는 "이 제반 요소가 석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예측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했다.
물론 석유 생성 조건에 부합한다고 해서 석유가 항상 나는 것은 아니다. 변수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빈 공간을 의미하는 공극률과 통과 척도를 뜻하는 투수율이 높을수록 많은 양의 석유를 저장할 수 있다. 공극률과 투수율이 낮으면 경제성이 낮을 수 있다. 또 근원암에서 아무리 많은 석유가 만들어져 저류암으로 이동해도 뚜껑 역할을 하는 덮개암이 부실하다면 물보다 가벼운 석유 특성상 모여 쌓이기 어렵다.
● '화석 박물관' 포항
포항 지역은 학계에서 퇴적 지형 연구를 위한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1983년부터 포항에 관심을 가진 황 연구원은 포항 시내에서도 발견된 무수한 양의 화석을 보며 매력을 느꼈다고 전했다.
퇴적학 전공인 그는 "시내를 걷다 보면 미생물, 곤충, 식물 등 화석이 발견될 정도"라면서 "포항은 화석 박물관 같다"고 포항을 치켜세웠다.
지난해 2월 포항 남구 구룡포읍 블루밸리산단 내 소하천에서 길이가 10.2m인 대형 나무화석이 발견됐다. 나무화석은 올 3월 대전의 문화재청 관련 기관으로 이송됐다. 이 화석은 지난해 1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포항 금광리 신생대 나무화석'이 발견된 곳과 가까운 데서 발견됐고 길이가 5m 넘어 학계 관심을 끌고 있다.
포항 금광리 신생대 나무화석이 발견된 '포항 금광동층 신생대 화석산지'는 메타세쿼이아, 너도밤나무, 참나무, 자작나무 등과 각종 미기록 종을 포함해 식물화석이 60여 종 넘게 나온 곳이다. 우리나라 내륙에서 주로 발견되지 않는 식물화석도 발견돼 한반도 신생대 전기의 지형과 기후환경, 식생 변화 등을 예측할 수 있는 중요자료로 평가된다.
포항은 지질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국내 타지역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벤토나이트, 산성백토, 불석, 규조토 등 광물자원이 발견된다. 규조토는 단세포 생물인 규조가 죽은 후 그 유해가 쌓여서 형성된 암석이나 퇴적물을 말한다. 규조는 호수나 바다에 서식하는 미세한 생물이다. 황 연구원에 따르면 1200만 년 전 포항 전체에 규조가 분포했다.
벤토나이트는 지각변동으로 2200만 년 전 일본과 한국이 갈라질 때 마그마가 올라오면서 물속에서 터지며 생겨났다. 벤토나이트는 이때 발생한 화산재 퇴적층의 하나로 몬모릴나이트라는 광물로 구성된 점토덩어리다. 포항 장기면에 벤토나이트 광산이 자리한다. 포항 지역에서 채굴되는 벤토나이트는 불순물이 거의 포함되지 않은 95% 이상 고순도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포항의 '선상지 삼각주'는 한반도 퇴적 지형 연구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곳이다. 황 연구원은 1990년대에 세계 지질학계에 선상지 삼각주 개념이 생길 때 처음 포항에서 선상지 삼각주를 처음 찾아내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선상지 삼각주는 급사면을 따라 이동한 퇴적물이 바로 호수 또는 해양환경과 바로 만나는 지점에 형성된 부채꼴 모양의 퇴적체다. 이 공로로 그는 2003년 세계적 권위의 인명사전인 `세계 과학 공학 인명사전'2003-2004년 제7판에 등재됐다.
또 포항은 동해 형성 과정에 대한 의미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 황 연구원은 "동해가 벌어지며 확장이 됐다가 현재 지금 닫히는 시기로 접어들고 있다"면서 "포항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동해 광구를 탐사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연구원은 석유 탐사의 관점으로만 아닌 연구의 관점에서 포항이 앞으로 더욱 조사되길 바란다고 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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