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화성 여행자는 신장 망가질 각오해야 한다고?
화성 임무와 유사한 ‘2년 반’ 강도 쥐에 쪼여
신장 치명적 이상…‘세뇨관’ 기능 저하
보호 기술 없으면 화성 진출 적신호
#.가까운 미래의 화성, 벌판에 쓰러져 있던 우주비행사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가 힘겹게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킨다. 입고 있는 우주복 안으로는 굵은 금속 막대기가 뚫고 들어와 복부에 상처를 낸 상태다.
그가 기지 안이 아닌 바깥에서, 그것도 다친 몸으로 ‘노숙’을 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간밤에 발생한 모래 폭풍을 피해 화성 밖으로 탈출하는 로켓을 타려던 순간, 몸이 강풍에 떠밀리면서 기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튕겨 나간 것이다. 이때 부상을 입고 정신까지 잃었다.
화성에 홀로 남은 마크는 기지로 돌아와 한 가지 생각에 집중한다. 생존이다. 지구 관제소와 통신할 방법을 찾고, 음식을 생산할 기술을 연구한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결국 지구로 돌아가는 구조선에 몸을 싣는다. 생명줄이던 실내 감자 농장이 파괴되는 예기치 못한 일과 맞닥뜨리면서도 꺼지지 않는 투지로 생존에 성공한다. ‘화성인’에서 ‘지구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국 영화 <마션> 얘기다.
영화 속에서 마크는 지구 시간으로 따졌을 때 화성에 도착한 지 687일 만에 구조된다. 화성과 지구를 오가는 시간까지 합치면 약 3년을 지구 밖에서 산 셈이다.
그런데 화성 탐사와 여행을 위해 정말 이렇게 지구 밖에서 오래 산다면 뜻밖의 문제에 맞닥뜨릴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식량이나 물 부족 같은 익히 알려진 일이 아니다. 화성에 간 우주비행사가 신장 투석을 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신장이 제 기능을 못해 의료 기기를 돌려 인위적으로 혈액을 정화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일이 왜 일어난다는 것일까.
몸속 세뇨관 기능 치명타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대(UCL) 소속 과학자들이 이끈 국제 공동 연구진은 지난주 과학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미래 우주탐사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가능성을 지목해 발표했다. 지구에서 화성을 향해 섣불리 탐사를 떠났다가는 신장이 영구적으로 손상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연구진에 따르면 화성 여행자의 신장을 공격하는 원흉은 바로 ‘은하 우주 방사선’이다. 은하 우주 방사선은 태양계 밖에서 날아드는 고강도 방사선이다. 까마득히 먼 우주의 수많은 별에서 시작돼 온 우주로 분수처럼 흩뿌려지듯 발산된다. 우주에 있는 이상 딱히 피할 곳이 없다.
다만 지구의 지상에서는 비교적 안전하다. 강력한 지구 자기장이 은하 우주 방사선을 막는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지구와 화성 근처의 우주 공간에서 나타나는 은하 우주 방사선량을 계산했다. 그리고 실험용 쥐에게 2년 6개월치의 은하 우주 방사선을 수개월간 쪼였다. 그러자 신장 핵심 부위인 ‘세뇨관’이 망가지는 현상이 관찰됐다. 세뇨관 일부가 수축하더니 지속적으로 기능이 저하됐다.
세뇨관은 몸속에서 칼슘과 염분 농도를 조절한다. 신장 내에서 노폐물을 모아 오줌으로 만드는 역할도 한다. 이런 세뇨관이 은하 우주 방사선의 공격 때문에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이 악화하면 신장은 결국 영구적으로 망가진다. 이번 실험은 쥐가 대상이었지만, 인간도 비슷할 것으로 연구진은 내다봤다.
화성 체류 걸림돌 가능성
연구진이 은하 우주 방사선량을 하필 2년 6개월치에 맞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일반적인 로켓 속도와 지구와 화성의 거리 등을 고려했다. 화성에 도착해 임무를 마친 뒤 지구와 화성 거리가 가장 짧아지기를 기다려 귀환하는 우주비행사는 최소 이 정도 기간을 은하 우주 방사선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화성의 자기장 강도가 지구의 800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점도 감안됐다. 화성 표면에서는 우주 공간과 거의 동일한 강도로 은하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다. 자기장이 강한 지구 표면과는 상황이 다르다.
인간이 우주에 진출한 것은 1960년대인데, 이런 중요한 연구가 이제야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금까지 지구 밖에서 은하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사람은 인류 전체를 통틀어 24명뿐이었다. 달에 간 우주비행사들이다.
그나마도 달은 지구와 가깝기 때문에 최장 체류 기간은 12일에 불과했다. 1970년대 초반 아폴로 계획이 끝나고, 지구 밖 천체로 가기 위한 유인 우주계획도 자취를 감추자 은하 우주 방사선의 장기적 인체 영향을 연구할 동기도 사라졌다.
그러다가 최근 인간의 화성 진출과 거주가 수십 년 안에 현실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런 연구가 재조명되기 시작한 것이다. 민간 우주기업 스페이스X를 이끄는 일론 머스크는 “2050년까지 100만명을 화성에 이주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한 상태다.
UCL 연구진은 “신체 보호 방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우주비행사가 화성에서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는 길에 신장 투석을 해야 할 가능성까지 있다”며 “인간을 지구 외 다른 행성으로 보내려면 우주 비행이 신장을 비롯한 다른 장기에 미치는 영향을 더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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