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소병 아들 엄마 "'못 고치는 병'이라 뒷전... 사지로 몰리고 있다"
"투약 검사 전공의 파업에 네 달째 연기돼"
"당장 생명 지장 없어 의료 현장에서 소외"
"정부, 환자 피해 최소화할 방안 마련해야"
"여전히 환자 생각하는 의사 있다고 믿어"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 유전자 변이로 혈관과 림프관이 기형적으로 증식해 과성장하는 질환이다. 10만 명당 1명꼴로 발병한다. 서이슬(40)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는 이 질환으로 10여 년 투병 중인 초등학생 아들이 있다. 지난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해 시작된 전공의 파업 이후 아들에게 필요한 투약 검사는 기약 없이 미뤄졌다.
대한의사협회(의협)의 18일 집단휴진 예고에 서 대표는 희소질환 환자를 대표해 지난 13일 국회 앞에 섰다. 그는 "전공의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내 아이는 영영 검사를 못하게 되나"라며 "전면 휴진을 당장 철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본보는 서 대표를 따로 만나 의료 공백에 따른 희소질환 환자들의 피해 상황을 들었다. 다음은 서 대표와의 일문일답.
-전공의 파업 이후 지난 4개월 어떻게 지냈나.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다리가 왼쪽에 비해 두 배 이상 크다. 척추측만증, 다리 출혈, 급성감염(봉와직염) 등의 치료를 수시로 받아야 한다. 증세 호전을 위해서는 임상시험 중인 약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투약을 위한 유전자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국내에선 서울아산병원 소속 교수 2명만이 하고 있다. 담당 전공의 파업 여파로 4월에 잡혔던 검사일이 5월로, 다시 8월로 계속 연기되고 있다."
-투약 검사를 받지 못하면.
"당장 생명이 위독해지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희소질환 환자들이 더 소외되고 있다. 우리보다 치료가 더 급한 사람들이 많으니 만성적인 증상은 피해도 아니라고 여긴다. '어차피 못 고치는 병'이니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희소질환 환자들은 제때 검사나 처치를 받지 못해서 치료 효과가 떨어지면 장기적으로 어떤 치명적인 위험이 초래될지 모른다."
-구체적인 피해 사례는.
"주기적으로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통해 병변 변화를 추적해야 하는 환자가 있는데 자신의 몸 상태를 알 수 없는 게 대표적이다. '악성종양으로 발전 가능성이 있다'는 소견을 듣고도 추가 검사를 받지 못해 불안에 떠는 환자도 있다. 내 아들도 유전자검사뿐만 아니라 다리 길이 차이를 조절하기 위해 정형외과에서 성장판 시술을 받아야 하는데 치료 타이밍을 놓칠 수 있어 걱정스럽다. 모두 전공의들의 업무다."
-의료계는 정부의 의대 증원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가 이미 의대 증원 방침을 확정했기 때문에 전면 철회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환자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의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투약 유전자검사를 하고 있는 의사가 국내에서 단 2명뿐이다. 의사가 부족하니 환자들도 진료를 받기 어렵지만, 의사들도 업무가 과중된다. 멀리 보면 의사 수가 늘어나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당장의 치료가 시급한 환자들은 정부가 의대 정원 2,000명을 고집해 극단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정부가 의사를 대신해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정부가 의사 수를 선 긋듯 정해놓고 밀어붙이는 방식에 대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정부 방침대로 의대 증원을 해도 과연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사가 늘어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지금 정부가 해야 하는 대응은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의료 공백 장기화에 대비해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실 등 생명과 직결된 필수의료는 정상 작동할 수 있도록 관련 입법과 진료지원 인력 합법화를 추진해야 한다. 전면 휴진 등 의료인 집단행동 재발 방지책도 내놔야 한다."
-의료계 집단 휴진 강행 시 대응은.
"주변에서는 '어디 가서 점거 농성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들이 나온다. 하지만 고소·고발 등 법적조치는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다. 여전히 환자만을 생각하는 의사들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 그들이 18일 휴진에 동참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희소질환 특성상 장기간 진료와 투약이 필요하다. 아들을 생각하면 해외 원정 치료라도 받고 싶지만, 당장 생업을 접고 이민을 갈 수 있는 가정이 몇이나 되겠나. 환자들이 사지로 몰리고 있다. 더 이상 기다릴 시간이 없다."
장재진 기자 blan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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