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성치(自成雉)는 어디를 말할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6. 16.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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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공심돈·적대 역할 수행… 방어 ‘극대화’
화성 내 10개 존재… 각종 시설물 보호 ‘톡톡’
장대·각루 배치 통해 상호 방위 시스템 구축
정조의 출중한 지략·공간 확장 능력 엿보여

자연이 만든 ‘지형’… 최강의 창이자 방패 

동장대에서 돌출된 지형은 규모가 큰 자연 지형의 자성치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제공

치의 기능과 목적은 성에 접근하는 적을 좌우에 돌출된 ‘마주하는 치(對雉)’에서 적의 양 옆구리를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방어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성치(自成雉)란 무엇인가? ‘자연 지형 스스로(자) 이뤄진(성) 치(치)’를 말한다.

의궤에도 ‘대체로 성은 굽고 꺾인 데가 많아 모퉁이와 문이 있는 곳에 이르면 자성치의 형상을 이뤄 원성을 보호하게 마련’이라는 기록이 있다. 지금까지 사용하지 않던 용어다. 정의하면 ‘자성치는 지형이 꺾이는 곳이나 문의 좌우에서 지형 자체가 치의 기능을 하는 곳’이다. 앞으로 자성치란 용어를 사용하고 홍보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화성에 자성치는 어디 있을까? 자성치는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말하므로 인공적으로 만든 곡성은 제외했다. 위치 용어 중 ‘좌, 우’ 명칭은 성 밖에서 보는 좌우를 말한다. ‘북쪽’, ‘동쪽’ 등은 ‘북쪽 원성’, ‘동쪽 원성’의 줄인 말이다.

팔달산 정상의 성은 성 밖으로 돌출된 형상이고 주변보다 높아 자성치의 효과가 높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제공

첫째, 서북각루 전면이 자성치다. 좌측은 서옹성과 마주해 동쪽을, 우측은 서일치와 마주하며 남쪽을 공격한다. 둘째, 서장대 후면이 자성치다. 좌측은 서이치와 마주해 북쪽을, 우측은 서암문과 마주 보며 남쪽을 공격한다. 셋째, 서남암문 좌우가 자성치다. 모두 용도 치와 대치를 이뤄 용도를 방위한다. 넷째, 동남각루 전면이 자성치다. 좌측은 남공심돈과 마주해 남수문을 방어하고, 우측은 동삼치와 마주하며 북쪽을 공격한다.

다섯째, 동북공심돈 전면이 자성치다. 좌측은 동북노대와 마주해 남쪽을, 우측은 동장대 사이 돌출된 너른 자성치와 마주 보며 서쪽을 공격한다. 여섯째, 동북공심돈과 동장대 사이에 돌출한 반원형 너른 지형이다. 좌측은 동북공심돈과 마주해 동쪽을, 우측은 동장대와 마주하며 서쪽을 공격한다. 일곱째, 동장대 전면이 자성치다. 좌측은 동북공심돈 사이 돌출된 자성치와 마주해 동쪽 원성을, 우측은 동북포루와 마주 보며 서쪽 원성을 공격한다.

여덟째, 동북각루 좌우가 자성치다. 좌측은 동북포루와 마주해 북암문을, 우측은 북동포루와 마주하며 화홍문을 방어한다. 아홉째, 창룡문 좌우가 자성치다. 좌측은 동1포루와 마주해 남쪽 원성을, 우측은 동북노대와 마주하며 북쪽 원성을 공격한다. 좌우는 동시에 동옹성과 대치를 이뤄 창룡문을 방어한다. 열 번째, 화서문 서쪽이 자성치다. 한쪽은 서북각루와 마주해 서쪽 원성을 공격하고, 다른 한쪽은 서북공심돈과 마주하며 화서문을 방어한다.

이 10곳이 과연 치로서의 역할이 타당한지 검증해 보자. 자성치의 돌출 길이와 치성의 돌출 길이를 비교해 봤다. 곡성의 돌출 길이를 보면 적대 29척, 포루(대포) 29척, 동북노대 20척5촌, 포루(군졸) 평균 21척, 치 평균 20척으로 돌출 길이는 6.3m에서 9m까지이고 평균 7.5m다.

자연 지형 그대로 만들어진 치를 자성치라 한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제공

이런 가치를 지닌 자성치를 정조는 치 이상으로 활용했다. 첫째, 장대와 각루는 모두 자성치에 배치하도록 했다. 둘째, 자성치에 설치한 시설물은 여장에서 일정 간격을 두고 배치했다. 그 의도는 무엇일까? 성안 쪽으로 당겨 배치한 것은 시설물과 자성치 양쪽 모두 활용하기 위한 포석이다.

자성치를 앞에 두고 그 뒤에 시설물을 지은 것은 앞뒤로 2배의 전력을 운용하려는 의도다. 각건대 벽등에서는 방어 공간을 상하로 확장했다. 자성치에서는 방어 공간을 전후로 확장한 것이다. 좁은 터에서 공간을 위아래로 사용해 2배의 병력과 화력을 운용한 벽등과 마찬가지다.

장대와 각루만 배치한 것도 계획된 배치다. 장대는 사령부급 군사 지휘소이고 각루는 장대 다음의 사단급 지휘소다. 각루와 장대는 다른 시설물보다 막강한 병력과 화력을 배치하는 곳이다. 이런 병력과 화력으로 자성치를 엄호하고 자성치는 각루와 장대를 방어하는 상호 방위 시스템을 구축한 것이다. 이것이 여장에서 성안 쪽으로 자성치 공간을 두고 각루와 장대를 세운 이유다.

자성치에 올라 좌우를 바라보면 정조의 지모가 서려 있다. 자연이 만들어 준 자성치를 200% 활용한 정조의 지략과 공간 확장 능력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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