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 동물원의 모습은
인간이 만든 세상 속에 사는 야생동물은 쉽게 다치거나 죽는다. 인간이 일부러 뿌려둔 농약을 먹은 새들은 떼죽음을 당하고, 너구리와 삵은 올무나 덫에 걸려 다리를 잃는다. 고의는 아니지만 인간이 만든 구조물에 다치고 죽는 야생동물도 부지기수다. 무심코 걸어놓은 줄에 날개가 감긴 새는 피를 철철 흘리고, 물 마시러 콘크리트 농수로로 내려왔던 고라니는 빠져나가지 못해 고립돼 숨진다. 오랜 기간 굶주린 듯 고라니 사체는 앙상하다.
‘뜬장’에서 구출돼 동물원으로 간 사육곰
설령 제때 구조됐다고 한들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2023년 기준, 전국 17개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그해에 조류·포유류·양서류 등 2만408마리를 구조했다. 이 가운데 7321마리(35.9%)가 치료받은 뒤 방사됐다. 야생으로 돌아가기 어려운 7601마리(37.2%)는 안락사 처분을 포함해 폐사됐다. 안락사 처분을 한 동물들은 의료폐기물이다. 냉동창고에 한동안 보관된 사체는 소각시설에서 소각된다.
인간이 동물원에서 직접 보살피는 야생동물도 고통 없는 삶을 살진 못한다. 자연의 광활한 대지를 누비는 대신, 좁은 동물원에서 살아가는 야생동물들은 디스크 질환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쩌면 땅에 발이라도 디딜 수 있는 동물원 동물은 사정이 나을지 모른다. 1980년대부터 농가의 대다수 사육곰들은 바닥 한 번 밟지 못한 채 ‘뜬장’(땅에서 떠 있는 철창) 안에 갇혀 음식물 쓰레기와 개 사료를 먹고 한평생을 살아왔다.
왕민철 감독의 다큐멘터리영화 <생츄어리>는 인간에게 터전을 빼앗기고, 생명을 위협받는 동물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동시에 동물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물원 수의사, 야생동물구조센터 직원, 시민단체 활동가의 모습을 조용히 따른다. 영화의 극장 개봉(2024년 6월12일)을 앞둔 6월4일 왕민철 감독, 영화에 출연한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과 김봉균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만났다.
왕민철 감독은 전작 <동물, 원>(2019)에 이어 <생츄어리>에서도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뤘다. 차이가 있다면 <동물, 원>은 청주동물원 안으로 공간을 제한했지만, <생츄어리>는 청주동물원을 중심으로 그 안팎을 오가는 동물과 인물을 다루며 범위를 확장한다. 경기 여주에 있는 곰 농장의 뜬장에서 구출된 새끼곰 ‘킹’과 ‘콩’은 청주동물원 곰사로 삶의 터전을 옮긴다. 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해 치료했지만, 회복 뒤에도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한 고라니와 삵도 이곳으로 향한다.
“(전작에선) ‘청주동물원이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라는 어떤 희망을 보여줬다면, <생츄어리>는 ‘지금 이 시대의 동물원은 이렇게 전환돼야 한다’를 실질적으로 보여주잖아요. (<생츄어리>는) 기본적으로 ‘동물원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느냐’, 그런 이야기를 하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왕민철 감독이 말했다.
동물 안락사의 결정과 책임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생츄어리’(Sanctuary·생크추어리)는 학대, 부상, 인간의 길들임 등 때문에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동물들이 제 수명이 다할 때까지 돌봄을 받는 동물보호소를 뜻한다. 인간의 오락거리로 무분별하게 동물을 전시한 기존 동물원과는 차이가 있는 개념이다. 다른 나라엔 멸종위기종인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생크추어리들이 있지만, 국내엔 야생동물 생크추어리가 없다. 밭 그물에 걸려 치료한 뒤에도 날지 못하게 된 수리부엉이를 안락사시키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수의사는 “우리도 (야생동물) 생크추어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영화에서 김정호 청주동물원 진료사육팀장은 동물원을 ‘동물원과 토종 야생동물 생크추어리 사이 그 무언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최태규 곰 보금자리 프로젝트 대표는 청주동물원 안에 곰 생크추어리를 만들기 위해 계약직으로 입사하지만, 동물원을 생크추어리로 전환하는 속도에 대한 의견차 등 때문에 동물원을 그만둔다. 그는 강원도 화천의 임시 곰 보호시설에서 사육곰들을 돌보고, 생크추어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영화는 무엇이 인간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위하는 건지 질문을 던지면서 안락사를 깊이 있게 다룬다. 인간은 동물을 가장 많이 다치게 하는 존재다. 동시에 동물을 살리고 동물이 겪는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존재다. 예컨대 청주동물원의 반달곰 ‘반순이’는 디스크 질환으로 제대로 걷지 못한다. 수술하자니 곰의 디스크 수술은 선례가 없다. 성공하더라도 이미 자연수명을 넘긴 반순이는 후처치, 재활 과정에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만 한다.
어떤 동물을 살리고, 어떤 동물을 죽일 것인가. 출연진들은 무엇이 더 윤리적인 일인지를 두고 고뇌한다. 김정호 팀장은 “야생동물은 (개·고양이 같은) 소동물보다 의학 수준이 훨씬 더 발달이 안 돼 있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사실 능력이 없는 수의사라 쉽게 결정해서 죽이는 거 아니야?’라는 고민을 매번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고통스러워하는 동물이 자연사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방치다. 이 딜레마 속에서 동물들을 돌보는 사람들은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왕민철 감독은 “외부자 입장에서 안락사를 결정하는 어떤 시스템이 국내에 사실 거의 없다. 그 시스템이 부재하니 안락사의 결정과 책임이 한 개인에게 자꾸 집중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하루 평균 7~8마리 구조하는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야생동물구조센터는 이런 순간을 더 빈번하게 마주한다.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는 1년에 야생동물 2500여 마리를 구조한다. 하루 평균 7~8마리를 구조하는 셈이다. 대부분은 물리적인 충격으로 다친 동물들이다.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해당 개체의 고통이 너무 심각하게 수반되는 상황에서 빠른 결정을 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그런 동물에게 안락사를 시킬 때 ‘얘가 차에 치여서 피칠갑된 상태로 펄펄 끓는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가느니, 우리가 약물을 주입해줄 수 있는 게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심정이 든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락사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긍정한다고 해서 이들이 정신적 타격을 안 받는 건 아니다. 내색하진 않지만 구조센터 직원들은 심적 괴로움을 느낀다.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이게 과연 우리가 어느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있는 기준인지, 우리가 좀더 노력하거나 발전해서 안락사 기준을 완화할 수는 없는지 그런 고민은 필요하기에 저희도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저희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닌데, 이런 기준을 통용할 수 있는 사례를 공유하는 등 계기를 만드는 노력이 아직 우리나라에선 부족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애완동물’이라는 표현 대신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쓰이고,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졌지만 야생동물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공백과 다름없다. 푸바오와 같은 판다, 사자, 호랑이, 코끼리, 기린, 돌고래 등 동물원에서 인기가 많은 특정 종을 제외한다면, 혹은 야생동물 탈출 소동이라도 벌어지지 않는 이상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럼에도 영화 속 인물들은 동물을 위해 분투한다.
김정호 팀장은 청주동물원을 “생크추어리가 만들어지는 데 도움이 되는 동물원”으로 만들기 위해 애쓴다. 그는 “청주동물원은 연간 관람객이 30만 명이다. 관람객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 전략적 활용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며 “생크추어리와 동물원의 중간 단계에서 생태·환경 교육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0에서 40, 50으로 높이면 그 총량은 훨씬 더 많아질 거다. 어쩔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더 나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우주를 되찾아주는 일”
김봉균 재활관리사는 최근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해마다 5∼6월은 야생동물이 번식하는 시기다. 어미를 잃어버리거나 다친 동물 구조 신고가 많이 들어온다. 6월3일 영화 시사회에서 그는 동물을 구조해 다시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생태계 건강성을 유지하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물 하나하나에게 그들의 우주를 되찾아주는 것”에 빗대기도 했다.
마침 2023년부터는 농수로 같은 인공구조물을 설치할 경우, 동물이 탈출할 수 있는 시설이나 이를 횡단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도록 의무화하는 야생생물 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사회의 관심과 작은 실천이 야생동물이 다치거나 인간에게 길들여져서 자연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일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왕민철 감독은 세 번째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밝힐 순 없지만,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룬 두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세 번째 작품 역시 같은 주제라고 한다. 감독은 “이 영화는 3부작으로 완성되는 영화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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