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장 떼고 한판 붙자”…선전포고하더니 1등 차지한 ‘이것’ 새 역사 썼다는데 [전형민의 와인프릭]
“제 일이 상식이라는 고정관념과의 싸움이라서요.”
지난해 드라마 시청률 순위 5위(16%)를 기록한 ‘대행사’의 한 장면입니다. 드라마 ‘대행사’는 지방대 출신 흙수저인 주인공 고아인(이보영 扮)이 극중 업계 1위의 광고대행사(VC기획)에서 오로지 실력 하나로 대표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뤘습니다.
이보영 조성하 등 배우들의 열연과 흙수저 성장물이라는 콘셉트로도 인기를 끌었지만, 주요 장면마다 말장난 같으면서도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공감할만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적절하게 배치돼 화제가 됐습니다.
특히 팬들은 엔딩크레딧을 백미로 꼽습니다. 주인공은 결국 그토록 바라던 대표 자리에 오르지만, 홀연히 퇴사해 작은 독립 대행사를 차립니다. 상식 밖의 행보에 동고동락한 직장 동료가 ‘사람들은 고아인이 대표로 승진하면 만족할 거라고 생각했을텐데요?’라며 의아해하자, 주인공이 되레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되묻죠.
“사람들의 생각이라…내 한계를 왜 남들이 결정하지?”
어느 산업이나 후발주자에게 고정관념과의 싸움은 필연적입니다. 고정관념을 뛰어넘지 못하면 결국 아류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그 벽이 너무 공고해 수십번 도전해도 넘기 힘들다는 점이죠. 하지만 뛰어넘기만 한다면, 그 분야의 새 시대를 여는 선구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류와 비슷한 역사를 가진 와인 업계에서도 수십년에서 수백년 간 이어진 수많은 고정관념이 존재합니다. 예컨대 ‘신대륙의 와인들은 복합미가 떨어지지만, 가격이 저렴해 만족도(가성비)가 좋다’ 등이죠.
오늘 와인프릭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온몸을 부딪쳐서 저항한 칠레 와이너리 비녜도스 파밀리아 채드윅(Viñedos Familia Chadwick)의 에두아르도 채드윅(Eduardo Chadwick) 회장과 그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그는 지난달 베를린 테이스팅(Berlin tasting) 20주년을 기념해 한국을 찾았습니다.
베를린 테이스팅은 파리의 심판에 감명을 받은 비녜도 파밀리아 채드윅(Vinedos Familia Chadwick)의 채드윅 회장이 2004년 기획한 또 다른 블라인드 테이스팅 이벤트입니다.
당시 독일 베를린에서 36명의 와인 평론가, 바이어 등을 대상으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열었는데, 채드윅 회장이 만든 비녜도 채드윅(Vinedo Chadwick) 2000 빈티지가 샤또 마고, 샤또 라피트로칠드, 샤또 패트뤼스 등 프랑스의 유명 와인들을 제치고 당당히 1등을 차지했습니다.
쉽게 말해 계급장을 떼고 한판 붙었더니, 하극상이 벌어진 셈이죠. 이 사건은 파리의 심판과 함께 현대 와인 역사에 획을 긋는 놀라운 사건으로 회자됩니다.
그럼에도 채드윅 회장은 런던, 뉴욕, 도쿄, 홍콩, 서울 등 전세계의 주요 대도시에서 계속 블라인드 테이스팅 행사를 이어갑니다. 실제로 서울에서는 지난 2008년과 2013년 두 차례 행사가 열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굳이 계속 여러 도시에서 심판을 이어간 것에 대해 그는 “그것은 고정관념과의 싸움이었다.(That was a fight against stereotypes.)”고 말합니다. 베를린 테이스팅이라는 상징적인 이벤트를 겪고 난 후에도 고정관념은 여전했기에, 그것을 타파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세계를 돌며 증명해보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입니다.
베를린 테이스팅은 칠레 와인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그는 “베를린 테이스팅인 비단 비녜도 채드윅 뿐만 아니라 칠레 와인이 세계 무대에서 주목을 받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스스로 평가했습니다.
왜 하필 아버지가 평생 사랑한 그 땅이어야 했을까요? 그 땅은 바로 칠레의 핵심 와인 산지인 마이포(Maipo) 밸리의 보조 지역(Sub region)인 푸엔테 알토(Puente alto) 입니다. 동쪽으로는 안데스 산맥, 서쪽으로는 태평양과 가까운 덕분에 그 영향을 받아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죠.
큰 일교차는 포도가 산미를 유지하면서 서서히 성숙되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긴 성숙 기간은 좋은 포도를 얻기 위한 필요조건이 됩니다. 알마비바(Almaviva), 돈 멜초(Don Melchor) 등 칠레의 유명 와이너리들이 다수 이 지역에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수천년에 걸쳐 토양과 자갈에 축적된 높은 수준의 탄산칼슘은 포도에 신선함과 균형감, 미네랄을 부여하고, 복합미를 더해 줍니다.
아쉽게도 채드윅 회장의 아버지는 포도나무를 심고 1년여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채드윅 회장은 1999년 이 땅에서 자란 포도로 첫 와인을 만들면서 아버지를 기리는 의미로 비녜도 채드윅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포도 재배 면적이 불과 축구장 15개 크기인 15헥타르(㏊)에 불과해 한 해에 1만병만 생산하죠. 보르도의 5대 샤또들이 대략 12만~20만병 정도를 생산하는 것에 비하면 한참 적은 양입니다.
이제 남들의 시선은 어느 정도 바뀌었습니다. 많은 와인 애호가들이 칠레 와인을 마냥 단순한 가성비의 저가 와인으로 바라보지 않으니까요.
베를린 테이스팅을 통해 칠레 와인의 가치를 증명하기 시작한지 어느 새 20년, 채드윅 회장의 다음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는 “안목 있는 와인 애호가들에게 이 성과를 효과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선구자로서 칠레 와인의 탁월한 품질과 다양성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인식을 촉진하는 것이 목표라는 설명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칠레 와인에 대한 시선이 자신의 성에 차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어 “칠레 와인의 우수성을 한번 더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몇 번이고 다시 시음회를 열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대단한 자신감 입니다.
살다보면 인생이 평범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좌절하기도 하고, 남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거나 과소평가되기도 하죠.
그럴때 비녜도 채드윅의 베를린 테이스팅을 떠올려보는 것은 어떨까요? 주어진 세상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끊임없이 실력으로 도전한 역사 속에서 어쩌면 다시 일어나 뛸 힘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노를 저어라”(대행사 마지막화 제목·윈스턴 처칠)
**인터뷰에 응해준 채드윅 회장과 비녜도 채드윅의 코리아 앰버서더이자 2010 익스클루시브 에이전트인 에노테카 코리아, 베를린테이스팅 20주년 행사를 기획한 와인 종합 콘텐츠 와인인에 감사를 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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