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은행원은 어떻게 100억원을 횡령했을까 [이슈플러스]
“은행원인데요. 제가 고객돈을 횡령해 자수하러 왔습니다.”
지난 10일 오전 평범한 인상의 30대 남성 A씨가 경남 김해서부경찰서를 제 발로 찾아왔다. 우리은행 김해지점 대리라고 밝힌 그가 횡령한 금액은 무려 100억원이었다.
과거 은행에서 거액을 횡령한 사람들은 대부분 대출규모가 큰 기업여신 담당의 40대 부지점장(부부장) 이상 직급이었다.
더구나 2년전 우리은행에서 국내 금융 역사상 최대인 712억원의 횡령사고가 터진 후 우리금융그룹 임종룡 회장이 전사적으로 내부통제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고삐를 조이던 상황에서 터진 사고여서 더욱 놀랍다는 반응이다.
전결권도 없는 30대 대리는 어떻게 100억원을 빼돌렸을까.
경찰 관계자는 “대출금을 갚고 다시 더 큰 액수를 받는 식으로 여러차례 대출을 일으켰고, 이용된 회사(수)도 계속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은행 자체 감독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다.
그는 본점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주로 10억이하 대출을 3개월 만기 단기여신으로 실행한 후 대출을 갚고 다시 대출하기를 반복했다.
한 은행 관계자는 “가계대출은 본점에서 대출 심사·승인 후 고객에게 직접 입금하는 시스템인 반면 기업대출은 5억∼10억원 이하의 경우 지점장 전결로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본점에서 지점을 대상으로 정기검사와 불시검사를 실시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출 모니터링은 3개월이상 만기 대출 실행 건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것을 노린 것이라는 추측도 제기된다.
또 신규 대출의 경우 과·차장급 책임자가 직접 실사를 가기도 하는 등 관리자들이 서류 확인 절차를 꼼꼼하게 챙기는 반면 기존 거래 고객이 대출을 연장하거나 추가대출를 하는 경우는 감사가 소홀하다는 점을 이용한 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 고위관계자는 세계일보에 “어디서든 대출서류를 위·변조해 횡령하는 직원은 있을 수 있지만, (횡령을) 몇 달간 계속했다는 것은 은행에서 내부통제가 작동하지 않았다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출이 실행되면 팀장과 지점장이 확인해야 하고, 본점 심사부에서도 봐야할 부분이 있는데, (과연) 제대로 했을까”라며 “(횡령한 직원은) 지점장 등이 (위변조한 서류를) 안 볼 것이라는, 누군가 잡아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위변조한 법인 계좌의 돈을 자신 명의 계좌로 옮겨 가상화폐와 해외선물에 투자했다. 경찰이 확보한 그의 가상화폐 계좌에는 40억만 남아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코인계좌에 남아 있는 40억은 환수 가능할 것”이라며 “계좌 사용정지 요청을 하고, 법원에 몰수·추징보전 절차도 밟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돈을 다른 용처로 썼는지, 어디에 흘러갔는지 등을 계좌를 더 봐야하는데 일반 시중은행 계좌가 아니어서 분석하는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횡령을 저지른 기간과 횡력금액, 손실났다고 한 돈의 은닉 및 공범 여부에 대해서도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하겠다는 방침이다.
A씨는 지난 13일 특경법상 사기 등 혐의로 구속된 상태에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A씨가 현재까지는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수미 선임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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