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내한한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의 아쉬운 무대
(서울=연합뉴스) 나성인 객원기자 = 지난 13일 저녁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계 최정상의 4중주단인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 내한 공연이 있었다. 2015년 통영음악제 이후 9년 만의 한국 무대였다.
이날 공연에서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은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1번 '나의 생애에서', 쇼스타코비치의 현악 4중주 7번, 베토벤의 현악 4중주 8번 '라주모프스키' 등 고전, 낭만, 근대를 아우르는 4중주의 대표적 명작들을 선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날 공연은 악단이 지닌 본연의 수준을 드문드문 느낄 수는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아쉬움이 남는 무대가 되고 말았다. 1부 첫 곡으로 연주한 스메타나의 '나의 생애로부터'가 특히 아쉬웠는데, 해석의 차원이나 실수의 문제라기보다 음향 자체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연주였다.
특히 제1바이올리니스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듯 음감이 흔들렸다. 2악장에서 비올라가 도입하는 슬라브 폴카 주제는 구성지고 굴곡이 넘실거리는 훌륭한 음색이었지만, 정확한 화성적 일치에서 뿜어져 나오는 배음의 위력을 느낄 기회는 제한적이었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내면적이고 느린 3악장에서 솔로 악구를 뒷받침하는 코랄 풍의 내성부 화음이 미묘하게 불안했고, 이는 네 연주자 모두의 몰입을 방해했다. 연주자의 컨디션이 전체적으로 좋지 않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다행히 두 번째 곡인 쇼스타코비치 현악 4중주 7번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감을 찾았다. 스메타나가 부분부분 인상적인 표현에도 어딘가 겉도는 듯한 인상이었다면, 쇼스타코비치 곡에선 컨디션 난조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는 숙련성을 보여줬다.
장단조의 경계를 쉴 새 없이 넘나드는 이 짤막한 1악장 알레그레토는 세 개 음으로 이뤄진 두드림 모티브의 집요한 반복이 특징이다.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은 유희적이고 심지어 통속적이기도 한 이 악상을 세심하게 표현했다. 날카롭거나 신랄한 음조는 아니었지만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의 풍성한 울림 안에서도 쇼스타코비치 특유의 반어적인 쓴웃음과 내재 된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좁은 반음계의 모티브가 인상적인 2악장, 1, 2악장의 요소를 결합한 듯한 분절적이고 간결한 모티브의 미니어처인 3악장도 훌륭하게 재현했다. 상당히 밀도 있게 연주된 3악장 마지막 부분에는 1악장의 두드림 모티브가 다시 등장하는데 극적으로 탁월한 일체감을 선사했다.
2부에서는 베토벤의 중기 현악 4중주의 대표작인 8번 라주모프스키 한 곡만 연주됐다. 살롱에서 연주하던 실내악을 콘서트용으로 확장한 최초의 작품답게 대단히 극적이고 최상의 음향적 효율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구불거리며 오르내리는 1악장의 첫 주제와 높은 음역에서 노래하는 듯한 상냥한 둘째 주제는 치밀하게 조합되면서 발전된다. 예루살렘 현악4중주단은 이러한 전개 과정을 들려주긴 했지만 치열함, 밀도 면에서는 베토벤 중기 4중주가 낼 수 있는 극적 효과를 완전히 구현하지 못했다.
내면적이지만 1악장 못지않게 길게 확장되는 2악장에서는 그 침잠하는 분위기와 괘종시계를 연상시키는 음형 등을 훌륭하게 그려냈지만, 음향적인 안정성은 떨어져 다소 아쉬웠다.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익살스러운 러시아 주제가 등장하는데, 좌충우돌 끼어드는 거친 유희성이나 베토벤 특유의 우악스러운 생명력은 드문드문 모습을 드러냈다.
말 타는 듯한 러시아 주제로 유명한 4악장 또한 충분한 추동력을 갖추거나 에너지를 내지 못했고, 도리어 엄격하게 지켜져야 할 리듬이 무너지면서 조금씩 템포가 빨라지거나 악구의 끝이 뭉개지는 대목이 나타났다.
이처럼 실내악 연주, 4중주 연주는 어렵다. 예민한 악기, 예민한 사람이 최상의 컨디션이 아닐 때, 이 까다로운 작품들은 이상적 아름다움을 내어주지 않는다.
9년 만의 내한 공연이라는 기회에 그들의 최상의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점이 아쉬울 뿐이다.
h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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