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대상 언론] 우리 지역 '노잼도시'라는 언론, 무엇을 놓쳤나
'노잼도시' 언급 지역언론 기사 분석
언론이 판단하는 '노잼도시', 재미 요소는 '청년 관심사'
'서울에 몰린 불균형 발전' 현실에 대한 논의는 부재해
[미디어오늘 윤유경 기자]
편집자주: 언론·미디어 연구 속 언론은 변화가 더딘 혁신의 대상이다. 업계 종사자들은 학계 진단이 현실과 동떨어졌다고 말한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노력은 그 차이를 확인하고 간극을 좁히는 데서 시작되어야 한다. 미디어오늘은 현업인들에게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는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언론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본다.
3줄 요약:
-지역언론의 '노잼 도시' 기사는 청년에게 '즐거움'을 주려는 논의로 귀결된다.
-행정 중심으로 활성화된 자연 개발·규제 완화 주장을 지역언론이 뒷받침한다.
-'재미'에서 벗어나 '서울중심주의'와 '살기 좋은 도시'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어쩌면 좋아!! 지인이 노잼의 도시 대전에 온다!” 2017년 이 제목의 이미지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노잼도시'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재미 없는 도시라는 뜻의 '노(No)잼(재미)도시' 표현은 예능 프로그램을 주축으로 기성 매체를 통해 확산됐다. 지자체들은 앞다퉈 '노잼도시' 극복 정책을 홍보 수단으로 사용했고, 언론도 적극적으로 '노잼도시'라는 말을 재생산했다.
언론이 특정 지역에 붙이는 '노잼도시'의 기준은 '재미', 특히 '청년의 즐거움'이다. 지역 불균형으로 모든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된 한국의 '서울중심주의' 현상에서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닌, '재미가 없어서' 청년들이 떠나므로 문화·관광 상품 등을 개발해야한다는 논의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난 4월 '사회과학연구' 제35권 제2호에 실린 논문 '지역언론의 노잼도시 담론 분석'(충남대 언론정보학과 최정·손병우)은 '재미'에만 집중하는 언론의 보도 행태를 지적했다. 연구진은 빅카인즈를 통해 지역일간지를 대상으로 '노잼도시'를 검색해, 2017년부터 2023년 7월까지 총 442건의 기사를 분석했다. 노잼 도시라는 키워드는 대전(207건), 광주(94건), 울산(72건), 청주(53건)에 집중됐다.
언론이 판단하는 재미의 요소는 '청년층 관심사'
'노잼도시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떠나고 있다'는 것은 언론의 주요 논점이다. 언론이 판단하는 재미의 요소도 곧 청년층 관심사다. “청년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도시를 '노잼도시'라고 평가한다면, 그들은 끊임없이 보다 재미있는 도시로의 이주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2019, 중도일보 칼럼), “청년들 사이에서 놀거리가 없고 재미가 없어 '노잼도시'로 불리는 울산”(2019, 울산매일) 등의 기사처럼, 언론은 소위 'MZ세대', '청년' 등 젊은 세대의 여가 욕구를 채워주기 위한 노력을 강조한다.
연구진은 지역언론이 청년을 “절대화”하는 경향은 인구 유출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경제활동의 주축이 될 청년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노잼도시' 담론과 만나 청년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한 정책 제안으로 이어진다는 진단이다. 여가문화 부족으로 청년들이 재미를 느끼지 못해 수도권으로 유출된다는 논리는 자연스럽게 청년 중심의 문화에 초점을 맞춘 도시환경 조성 요구로 이어진다.
이는 지자체나 언론이 제시하는 '노잼해소' 방안이 공연·전시·축제·관광이나 전망대(대전 보문산), 케이블카(광주 무등산) 등 개발 주장에 집중된 배경으로 꼽힌다. 연구진은 “언론은 청년들의 목소리보다 주로 정치인과 행정가를 통해 대신 발화되는 내용을 보도하는 경향이 크다”며 “노잼도시 담론은 점차 소비시설 유치와 개발, 규제 완화 정책 추진의 근거로 자리잡았다”고 했다.
2020년 이광형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는 충청투데이 인터뷰에서 “대덕특구가 실리콘밸리처럼 되지 않는 이유는 딱 하나다. 바로 문화적 결핍이다…대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수 있도록 노잼도시가 아닌 유잼도시의 기반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2022년 중도일보 독자칼럼은 “미국스탠포드대학교 같은 카이스트 인재들은 왜 대전을 떠나는가? 이유는 하나다. 대전이 재미없는 도시이기 때문이다…대전시가 문화예술 불모지라는 오명은 바로 '노잼'이라는 의미”라고 했다. 연구진은 “노잼도시를 벗어나면 청년들이 지역에 정착하거나 유입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는 경제적 변수를 배제한 논리적 비약”이라며 “청년의 정주와 관련한 핵심 요소는 재미보다는 일자리”라고 지적했다.
지역끼리 경쟁이 심화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한다. 수도권 집중화가 인구 유출과 지역 소멸의 근본적 문제임에도, 지역언론에선 오히려 비수도권 도시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는 분석이다. 가령 무등일보의 2022년 기사는 “'넘사벽'이라고 여겨진 수도권은 그렇다 치고서라도 부산, 대구, 대전 등에 속속 복합쇼핑몰이 생기며 시민들의 박탈감도 덩달아 증가했다”고 했다.
연구진은 “비수도권 거점도시들은 수도권 대응 전략으로 메가시티 구상 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부문에서도 경쟁은 역부족이라고 여기고 제외시키는 경향을 보인다”며 “정부의 공모사업, 인재 유출, 관광객 유치 등 서로 간에 뺏고 뺏기는 지역경쟁의 단면이 노잼도시 담론에서 드러나고 있다”고 했다.
중앙 언론도 '노잼도시' 키워드를 적극 사용하고 있다. JTBC <“파문 일으키려 작정”…'노잼 도시' 대전에도 퀴어축제?>, 경향신문 <'노잼도시 아닌 빵잼도시'…원도심 빵집 지도 만든 대전 동구>, 문화일보 <오페라하우스·케이팝사관학교…'노잼' 울산, '꿀잼도시'로 변신중>, 아주경제 <원주시, 노잼 도시 이미지 탈피…펀시티 조성 박차> 등 문화·관광 관련 다양성이 부족한 지역을 '노잼도시'로 칭한다.
'서울에 몰린 불균형 발전' 현실에 대한 논의는 부재해
연구진은 청년 인구 유출 방지와 '재미'에만 집중된 '노잼해소' 주장은 '서울중심주의'로 인한 경제적·산업적 불균형이라는 지역소멸 문제의 근본 원인을 가린다고 진단한다. “노잼도시 담론의 기저엔 지역 간 불균형 발전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 서울이 현대도시의 화려함을 갖출 때 생산 기능만 떠안았던 '지방'은 인구·산업구조의 변화 시기마다 쇠퇴와 소멸 쪽으로 밀려왔다”며 “하지만 지역언론의 노잼도시 담론에는 그 현상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정한 도시의 즐거움이 무엇이며 살기 좋은 도시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관한 논의는 부재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지역의 정책 설계자들과 집행자들은 표면의 기표인 '재미'에만 천착해 많은 예산을 투입해 자연과 삶의 공간을 상품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며 “그렇게 제시되는 사업에는 긍정성이 부여되고 반대하는 의견은 배제된다”고 했다.
아울러 연구진은 '노잼도시'를 탈피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니라 지역주민이 살기 좋은 곳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들은 “노잼도시에 대한 피상적 접근은 오히려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 방향을 호도할 가능성을 높인다”며 “지자체가 내놓는 노잼도시 극복 정책들이 정말로 지역주민의 필요에 부합하는지 반성적 성찰과 논의로 이어져야 노잼도시 담론이 본질적으로 담고 있는 'No'의 정신을 살려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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