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치가 밀어붙인 '가덕도 신공항' 곳곳 암초

노동규 기자 2024. 6. 1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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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외면에 주민 반발까지…환경·문화재 파괴 논란 불 보듯


지난 12일 부산 남단 가덕도 대항항을 찾았다. 여름을 맞은 섬엔 짙푸른 녹음이 우거졌고 섬 밖으론 쪽빛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어구를 손질하는 어민과 물질하는 해녀가 있는 포구 풍경이 이곳이 사람이 살고 있는 생업의 현장임을 알려준다. 정부는 이곳을 포함해 주위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약 200만 평 부지를 조성해 길이 3500m 활주로와 계류장 58면, 여객·화물 터미널 등을 갖춘 신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 13.5조 원 규모로 오는 2029년 12월 개항하는 게 목표다.

참여정부 때 첫 운을 띄운 뒤 약 20년 간 '신공항 후보지'로 거론될 때마다 시달려온 주민들은 신공항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면서도 '불확실성'에 지친 기색이다. 작은 슈퍼를 운영하는 김명자 씨는 "20년을 질질 끌고 왔다가 지금 와서 또 이러니까 솔직히 갈피를 못 잡겠다"고 말했다. 최근 정부가 공고한 부지조성 공사 입찰에 단 한군데 건설사도 뛰어들지 않은 것을 두고 한 얘기다.

건설사 "들어가선 안 되는 사업"…10조 넘는 사업 외면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부지 조성을 위해 설계와 시공을 일괄 발주하는 '턴키' 방식을 택했다. 사업비만 10.5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지만 지난 5일 마감한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국토부는 같은 조건으로 24일까지 다시 입찰을 부친 상태인데, 역시 응찰하는 건설사가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대규모 국책사업에 건설사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이례적이다.

10조 원 넘는 큰 사업을 남 일 바라보듯 하는 이유로 건설사들은 우선 촉박한 '공기'를 든다. 처음 기본계획을 세울 당시 2035년 개항을 목표로 했던 것을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전략에 맞춰 지난해 5년 이상 공기를 앞당겼는데, 이런 계획이 무리하다는 거다. 한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이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특정 해상작업 장비들의 국내 재고 자체가 적은 데다 개조 시간도 필요한데, 동시 투입할 수 있는 현실적 규모를 따져보면 공기를 지키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조달청 내규에 따라 10대 건설사들은 최대 2곳까지만 협업 응찰하도록 한 제약도 시공능력을 갖춘 대형사 참여를 주저하게 한다. 낙관적으로 두 회사가 5조 원씩 도급비를 다 챙겨간다고 쳤을 때, 한 해 1조 원 꼴인데 이는 웬만한 국내 5대 건설사의 1년 치 토목 매출과 맞먹는 규모다. 다른 사업을 모두 포기하고 '가덕도에만 올인'해야 겨우 실현 가능한 사업이란 얘기다. 그렇게 덤벼들었다가 만에 하나 공기를 못 맞췄을 때 물어야 할 지체배상금 등을 고려하면 위험부담이 더 큰 셈이다. 또 다른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크게 먹으려다가 크게 체할 수 있다"며 무응찰 배경을 밝혔다. 건설업계에선 현재 조건에서 10대사 가운데 두 회사 정도만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불가능 아니란 국토부…전문가 "공기 연구부터"·주민들 "결사항전"

가덕도신공항 홍보 영상 갈무리

공기가 촉박한 측면은 국토교통부도 인정한다. 하지만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 전문가들의 검토까지 거친 기본계획이기에 "불가능한 건 아니다"는 입장이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일단 시장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토부는 일단 24일 마감하는 재입찰 결과를 보고 공기 변경 등을 논의할지 여부를 결정할 입장으로 전해진다.

전문가 사이에선 개항 시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섬과 섬 사이를 메운 인천공항도 1단계 공사에 9년이 걸렸는데, 기상 요인이 큰 가덕도 외해 매립은 더 어렵다는 거다. 가덕도 일대 수심이 최대 30m에 이르고 연약지반 깊이도 50m에 달해 공사 난이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정충기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대한토목학회장)는 "파도치고 태풍 불면 공사 일수가 더 줄어들 텐데 어쩌면 우리나라가 해 온 공사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공사가 될 수도 있다"며 "공기와 공사비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올해 안에 공사에 뛰어드는 업체가 나온다 해도 걸림돌은 남아 있다. 계절 따라 대구와 숭어 등을 잡으며 대 이어 살아온 가덕도 주민들이 거세게 반발하는 탓이다. 지금 가덕도 마을 곳곳엔 정부와 정치권을 규탄하는 현수막이 곳곳에 나부낀다. 김영성 가덕도 대항어촌계장은 "보상 대책, 이주 대책, 생계 대책도 제대로 못 내놓으면서 무슨 공항을 짓느냐"며 "한 치의 땅도 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가덕도 주민 가운덴 보상을 위한 감정평가 절차에 협조하지 말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환경·문화재 파괴 논란 불가피…"22대 국회가 재검토해야"


환경과 문화유산 파괴 논란도 불가피하다. 가덕도 바다엔 멸종위기 생명인 상괭이와 수달 등이 서식한다. 사업이 본격화할수록 이런 천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데 대한 환경단체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태평양전쟁 시기 패망을 앞둔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설치한 방공용 인공동굴과 포진지 등 '네거티브 문화재'도 산재해 있는 곳이 가덕도다. 턱없이 부족한 경제성은 차치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없애며 공항을 짓는 게 과연 마땅한 일인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처음부터 경제성 없는 사업을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한 게 문제"였다며 "22대 국회에서 김해공항 확장 등 여러 방안을 놓고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부산시 제공, 연합뉴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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