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치가 밀어붙인 '가덕도 신공항' 곳곳 암초
지난 12일 부산 남단 가덕도 대항항을 찾았다. 여름을 맞은 섬엔 짙푸른 녹음이 우거졌고 섬 밖으론 쪽빛 바다가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어구를 손질하는 어민과 물질하는 해녀가 있는 포구 풍경이 이곳이 사람이 살고 있는 생업의 현장임을 알려준다. 정부는 이곳을 포함해 주위 바다를 메우고 산을 깎아 약 200만 평 부지를 조성해 길이 3500m 활주로와 계류장 58면, 여객·화물 터미널 등을 갖춘 신공항을 건설할 계획이다. 총 사업비 13.5조 원 규모로 오는 2029년 12월 개항하는 게 목표다.
건설사 "들어가선 안 되는 사업"…10조 넘는 사업 외면
국토교통부는 신공항 부지 조성을 위해 설계와 시공을 일괄 발주하는 '턴키' 방식을 택했다. 사업비만 10.5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공사지만 지난 5일 마감한 입찰에 뛰어든 건설사는 단 한 곳도 없었다. 국토부는 같은 조건으로 24일까지 다시 입찰을 부친 상태인데, 역시 응찰하는 건설사가 없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대규모 국책사업에 건설사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건 이례적이다.
10조 원 넘는 큰 사업을 남 일 바라보듯 하는 이유로 건설사들은 우선 촉박한 '공기'를 든다. 처음 기본계획을 세울 당시 2035년 개항을 목표로 했던 것을 2030년 부산엑스포 유치 전략에 맞춰 지난해 5년 이상 공기를 앞당겼는데, 이런 계획이 무리하다는 거다. 한 10대 건설사 관계자는 "내부 검토 결과 '이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사업'이라는 결론이 나왔다"고 전했다. 정부 기본계획에서 제시한 특정 해상작업 장비들의 국내 재고 자체가 적은 데다 개조 시간도 필요한데, 동시 투입할 수 있는 현실적 규모를 따져보면 공기를 지키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불가능 아니란 국토부…전문가 "공기 연구부터"·주민들 "결사항전"
공기가 촉박한 측면은 국토교통부도 인정한다. 하지만 중앙건설기술심의위원회 전문가들의 검토까지 거친 기본계획이기에 "불가능한 건 아니다"는 입장이다. 한 국토부 관계자는 "일단 시장의 반응을 보고 있는 것"이라며 "'정책 목표'가 있기 때문에 건설사들이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줄 수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국토부는 일단 24일 마감하는 재입찰 결과를 보고 공기 변경 등을 논의할지 여부를 결정할 입장으로 전해진다.
전문가 사이에선 개항 시기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섬과 섬 사이를 메운 인천공항도 1단계 공사에 9년이 걸렸는데, 기상 요인이 큰 가덕도 외해 매립은 더 어렵다는 거다. 가덕도 일대 수심이 최대 30m에 이르고 연약지반 깊이도 50m에 달해 공사 난이도가 높다는 설명이다. 정충기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대한토목학회장)는 "파도치고 태풍 불면 공사 일수가 더 줄어들 텐데 어쩌면 우리나라가 해 온 공사 가운데 가장 어려운 공사가 될 수도 있다"며 "공기와 공사비를 결정하기 위한 연구부터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문화재 파괴 논란 불가피…"22대 국회가 재검토해야"
환경과 문화유산 파괴 논란도 불가피하다. 가덕도 바다엔 멸종위기 생명인 상괭이와 수달 등이 서식한다. 사업이 본격화할수록 이런 천혜 자연환경이 파괴되는 데 대한 환경단체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태평양전쟁 시기 패망을 앞둔 일제가 조선인을 동원해 설치한 방공용 인공동굴과 포진지 등 '네거티브 문화재'도 산재해 있는 곳이 가덕도다. 턱없이 부족한 경제성은 차치하더라도 이 모든 것을 없애며 공항을 짓는 게 과연 마땅한 일인지에 대해선 단 한 번도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처음부터 경제성 없는 사업을 정치적 목적에서 추진한 게 문제"였다며 "22대 국회에서 김해공항 확장 등 여러 방안을 놓고 다시 원점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부산시 제공, 연합뉴스)
노동규 기자 laborsta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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