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성향 달라도 “고물가 가장 문제”… “유죄 평결로 선택 안 바꿔” [글로벌 포커스]

홍정수 기자 2024. 6. 15.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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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풀뿌리 민심’ 親민주-親공화-무당파 9명 인터뷰
기름값 상승-실질소득 감소에 불만
최근 상승률 둔화됐지만 “아직 멀어”
트럼프 유죄 평결에도 지지율 ‘초박빙’
“유죄 평결 전 이미 지지 후보 결정”후보 지지하는 이유도 첨예하게 갈려
“예측불허 막아야” vs “트럼프는 애국자”
무당파는 두 후보 모두에게 회의적
“이스라엘 지원한 바이든에게 실망”
《 전 세계 곳곳에서 대선과 총선이 치러지는 ‘2024 슈퍼선거의 해’의 최대 행사인 11월 5일(현지 시간). 미국 대선이 약 넉 달 반 앞으로 다가왔다. 조 바이든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종 여론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의 초접전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단순히 지지율만으로는 3억3000만 명의 미국인이 고령, 사법 리스크 등에 동시에 직면한 두 사람을 왜 지지하는지, 왜 지지하지 않는지 등을 명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다. 동아일보는 지지 정당, 성별, 나이, 인종, 직업, 거주지역이 다양한 미 일반 유권자 9명을 최근 약 한 달에 걸쳐 심층 인터뷰했다. 다양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집권 민주당 지지자 3명, 야당 공화당 지지자 3명, 두 후보 중 어느 쪽에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는 ‘더블 헤이터(double hater)’ 3명을 각각 접촉했다. 그간 한미 전문가들의 분석과 전망을 다룬 기사는 많았지만 미 ‘풀뿌리 유권자’를 집단 인터뷰한 접근은 이번 대선 과정에서 처음이다. 동아일보는 이 9명에게 △11월 대선에서 찍을 후보와 그 이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에 대한 의견 △미 경제 상황에 대한 평가 △정부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 등에 대한 공통 질문을 던졌다. 》

민주당 지지자로는 인도계 사업가 수닐 메타 씨(65),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백인 가정에 입양된 크리스 워디카 씨(38), 유대계 대학원생 아비브 코하브 씨(23)가 인터뷰에 응했다. 공화당 지지자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세 때마다 맨 앞줄을 차지하는 보수단체 ‘프런트로조스’의 공동 대표 샤론 앤더슨 씨(68·여), 보수 성향 정치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존 실크 씨(54), 공화당 지지 비영리단체 ‘더아메리카프로젝트’의 설립자 패트릭 번 씨(62)의 이야기를 들었다.

파키스탄계 무슬림이며 국립보건원(NIH) 연구원인 알리 리즈비 씨(24), 교육업계에서 일하는 백인과 파키스탄계 혼혈 에밀리 다로가 씨(29·여), 기술산업 종사자인 한국계 렌 리 씨(30대 후반·여) 등 지지 정당이 없는 유권자 3명은 “올 대선에서 두 후보 모두 찍지 않겠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정치 성향에 관계없이 미국의 고물가 상황에 강한 불만을 표시하며 “새 대통령이 속히 물가 안정에 나서주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의 유죄 평결, 불법 이민 규제, 바이든 대통령의 이스라엘 지원 등에 대해서는 첨예한 입장 차를 드러냈다. 특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었던 젊은 층, 비(非)백인 유권자가 “팔레스타인 민간인 사망자 급증에도 바이든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이스라엘만 지지한다”며 실망하는 기류가 뚜렷했다.

● “고물가로 못 살겠다” 한목소리

응답자들은 ‘현재 미 경제의 최대 문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한목소리로 인플레이션을 꼽았다. 특히 휘발유값 상승, 고물가에 따른 실질소득 감소 등에 큰 불만을 보였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연은) 총재가 3일 “미국인은 인플레이션보다 차라리 경기 침체를 선호할 정도로 인플레를 싫어한다”는 말이 현실에서도 확인됐다.

교직원 출신의 은퇴자 앤더슨 씨는 “바이든 대통령 집권 후 유가가 치솟으면서 식료품값, 대출 이자 등에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비판했다. 경제매체 포브스에 따르면 미국의 휘발유값은 트럼프 재임 시절 평균 1갤런당 2달러대였다. 바이든 취임 후인 2022년엔 4달러대로 치솟았고, 현재도 여전히 3달러대다.

공화당 지지층에선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코로나19 때 경기 부양을 위해 달러를 너무 많이 찍어냈다며 정부 부채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번 씨는 “최근의 물가 상승률 둔화는 미국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이용해 미국의 고물가를 다른 나라에 전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실제로는 물가가 낮아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실크 씨 또한 “정부 지출이 통제 불능 상태”라고 우려했다.

민주당 지지자들도 고물가를 우려했다. 대학원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워디카 씨는 “식비, 주거비 등이 여전히 코로나19 이전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했다.

무당파 청년 유권자는 고물가에 따른 불평등 심화에 불만을 표했다. 리 씨는 “물가 상승으로 중산층이 무너져 빈부 격차가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다로가 씨는 최근 몇 년간 ‘투 잡(two job)’을 뛸 정도로 생활이 빡빡했다고 했다. 그는 “교사 연봉 4만 달러(약 5500만 원)는 최저생계비 수준이어서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새 대통령의 최우선 과제도 물었다. 해결해야 할 필요가 있는 이슈에서 마음에 드는 해법을 내놓는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는 ‘안보’, 특히 국경 강화가 급선무라고 주장했다. 8년간 군에서 복무한 실크 씨는 “전 세계에 대한 미국의 신뢰를 다시 세우려면 국경 보안을 비롯해 안보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앤더슨 씨도 “불법 이민을 방치하는 것은 정당한 노력으로 미국에 온 이민자에게 불공정하며 모욕적”이라고 했다.

민주당 지지층은 양극화 해소, 기후변화 대응 등 진보 의제를 우선했다. 메타 씨는 “코로나19 대응과 회복 과정에서 탐욕스러운 기업들이 마구 가격을 올리며 큰 이득을 얻었다”라며 부의 재분배 문제를 짚었다. 트랜스젠더 남성인 코하브 씨는 “성소수자 권리 등 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무당파인 리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등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복지, 교육, 생태, 의료정책 등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 트럼프 유죄 평결에 “역겹다” vs “공정”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성추문 입막음’ 형사재판에서 유죄 평결을 받았다. 이후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여전히 초박빙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유죄 평결 자체가 대선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9명의 응답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결이 대선 때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답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동정하고 두둔하며 미 사법제도에 대한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번 씨는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통치하에서나 있을 법한 판결”이라며 “현직 대통령과 맞붙은 대선 후보에게 유죄를 부여하는 행위가 역겹다. ‘바나나 공화국’(제3세계를 비하하는 말)에서나 일어날 일”이라고 했다. 이어 “평결을 지지하는 좌파 지식인들도 혐오한다”며 “트럼프 집권 전 발생한 개인적인 일이 이번 대선이나 대통령직 수행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앤더슨 씨도 “배심원단이 민주당에 치우쳤고 절차도 정당하지 않았다”라며 “항소심에서 판결이 뒤집힐 것”이라고 확신했다. 실크 씨 역시 “법이 아닌 정치에 의한 유죄 평결”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나 무당층은 평결을 신뢰하고 존중한다는 뜻을 밝혔다. 메타 씨는 “재판은 공정했다. 전직 대통령이라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맞섰다. 워디카 씨는 “검찰의 주장과 근거는 탄탄했던 반면 트럼프 변호인단은 횡설수설했다”고 평가했다.

무당층 유권자인 다로가 씨는 유죄 평결은 반기지만 이와 별개로 바이든 대통령이 ‘내로남불’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근 국제형사재판소(ICC)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야흐야 신와르 하마스 군사지도자에게 동시에 체포영장을 청구하자 바이든 대통령이 “터무니없다”며 강하게 반발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가 국제법에 반기를 드는데, 미국인들이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유죄 평결을 진지하게 받아들일지 의문”이라고 했다.

● “극단 피하려 바이든” vs “美 위해 트럼프”

그렇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는 왜 두 사람을 찍기로 한 것일까. 민주당 지지자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의 극단주의 행보를 우려해 이번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찍겠다”라고 했다. 최근 유럽의회 선거에서 각국 극우 정당이 약진하고 곳곳에서 극우 성향 지도자가 등장하는 상황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까지 재집권하는 상황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인도계인 메타 씨는 “바이든의 정책은 불평등 완화에 초점을 맞추기에 모두에게 혜택을 준다”고 했다. 그는 “공화당은 ‘컬트(숭배) 집단’에 가깝다. 트럼프의 공약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그의 일부 추종자뿐”이라고 했다. 한국계인 워디카 씨는 “소수인종, 성소수자, 장애인 권리, 노동권 등에 대한 민주당의 지원 정책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 시 이런 정책을 대부분 철회하겠다고 밝힌 것을 우려한다”고 했다.

유대계인 코하브 씨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성을 우려한다”며 그가 세계 최고 권력자가 되면 전 세계의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이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것이 오히려 이스라엘에 대한 여론을 악화시키는 역효과를 낳을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그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절대적인 신뢰를 보냈다. 앤더슨 씨는 “어떤 나라의 지도자나 자국을 1순위로 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이 아니라 남의 나라를 중요하게 대한다”라고 했다. 이어 “트럼프야말로 인종, 성별, 경제적 지위에 상관없이 모두를 위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마가)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라며 “트럼프는 아쉬울 것 없는 억만장자인데도 미국의 미래를 위해 싸운다”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수호자, 바이든은 파괴자”라며 “바이든이 유세를 하면 수십 명이 올까 말까 하지만 트럼프는 거대한 군중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라고 주장했다.

백인 남성인 실크 씨는 트럼프 지지에 인종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때 가난한 동네에서 흑인 친구들과 자랐다. 군에서도 다양한 인종과 함께 생활했다”며 ‘인종적 배경’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소신’에 따라 트럼프를 찍겠다고 했다. 번 씨 또한 “트럼프 전 대통령 개인의 팬은 아니지만, 미국 우선주의가 중요하다고 믿는다”라고 했다.

● 무당층 “이스라엘 지원에 바이든 안 찍어”

두 후보의 지지율이 초박빙 상황이라 무당층 유권자의 표심에 많은 관심이 쏠린다. 올 대선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 중 누구도 찍지 않겠다고 밝힌 세 명의 유권자는 특히 바이든 대통령의 대(對)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실망이 크다고 했다.

백인-파키스탄계 혼혈 다로가 씨는 “바이든 행정부의 이스라엘 지원에 항의하는 뜻으로 투표지에 ‘가자(GAZA)’라고 적겠다”고 했다. 그는 “사표(死票)가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을 키운다는 것을 알지만 이를 막기 위해 바이든 대통령을 다시 찍는 것은 내 신념에 반하는 행위”라고 했다.

파키스탄계 무슬림인 리즈비 씨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반(反)무슬림이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도 무슬림을 배신했다. 바이든의 손에도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자의) 피가 묻었다”고 했다. 그는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긴다면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이 이스라엘 지원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라고 했다.

한국계인 리 씨는 2020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도 바이든 대통령이 아니라 대표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지지했다. 그는 “한국도 열강에 침탈당한 역사가 있다. 역사적으로 억압받은 팔레스타인의 처지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리 씨는 올 3월 아시아계 비율이 높은 하와이주에서 열린 민주당 코커스(당원대회)에서 바이든 대통령을 찍지 않고 기권한 유권자가 29%에 달했다며 “비백인 유권자가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 美 전역 트럼프 vs 경합주 바이든 우위

최근 여론조사에서 미 50개 주 전체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두 후보가 치열하게 맞붙은 경합주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근소한 우위를 보인다.

CBS방송과 유고브가 6∼8일 미 전체 유권자 206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0%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해 바이든 대통령(49%)을 1%포인트 앞섰다. 반면 펜실베이니아, 미시간, 위스콘신, 조지아, 애리조나, 네바다, 노스캐롤라이나주 등 7개 경합주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율이 50%로 트럼프 전 대통령(49%)보다 1%포인트 높았다.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대 조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47%, 바이든 대통령이 46%였다. 로이터통신과 입소스 조사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41%, 트럼프 전 대통령이 39%로 나타났다. 두 후보는 일찌감치 후보로 확정된 뒤 3개월 가까이 본선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렇게나 팽팽하다. 미 풀뿌리 민심의 선택을 가를 ‘진짜 변수’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김윤진 기자 ky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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