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단 살포’의 역사 [S 스토리]
南, 공습예고 심리전
北에 ‘종이폭탄’ 투하
北, 체제 선전용 활용
경제력 격차에 무의미
‘오물 풍선’ 살포 선회
냉전 종식 후 비방 중단 합의
南측선 민간단체 주도 살포
北측 맹비난 속 금지법 제정
헌재 위헌 결정에 효력 잃어
제2차 세계대전 등 때도 사용
日, 풍선폭탄 날려 美 공포감
2023년 中 추정 ‘정찰풍선’ 등장
세계 곳곳서 ‘심리전’에 활용
작은 종이에 담긴 짧은 글과 그림….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은 종잇조각이지만, 수많은 국가와 군대가 총이나 폭탄 못지않게 두려워했다. 이 종잇조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종이폭탄’ 삐라(전단)여서다.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국민과 군인, 정부의 단결이 필수다. 국민과 군인의 사기를 꺾고, 정부와의 관계를 이간하는 심리전을 시도해 성공하면 적국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 이를 위해 가장 많이 쓰인 것 중 하나가 풍선과 전단이다. 세계 곳곳에서 심리전에 사용이 됐고,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풍선은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로 부력을 얻음으로써 공중에 떠오르는 물건이다. 오래전부터 쓰였으나 전쟁에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부터다. 적진을 살피는 관측용과 더불어 적 항공기 접근을 저지하는 대공방어용 풍선이 대량으로 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풍선을 심리전과 더불어 인적·물적 피해를 입히는 무기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됐다. 전쟁 말기 미군의 강력한 압박으로 수세에 몰렸던 일본은 미국 본토를 공격해 미국 정부와 미국인에게 심리적·실질적 충격을 입히려고 했다. 일본이 언제든 미 본토를 타격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인식시켜 미국 정부에 대한 미국인들의 신뢰를 약화하려고 했다.
이를 위해 일본이 준비한 것이 풍선폭탄이었다. 동쪽으로 흐르는 제트기류를 이용하면 3일 만에 8000㎞를 날아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서 폭탄을 매단 풍선을 미 본토로 띄우는 형태였다. 구조가 단순하고 저렴해서 학생들이 학교나 체육관에서 제작이 가능할 정도였다. 일본은 이렇게 만든 풍선폭탄 9300여개를 1944년 11월부터 1945년 4월까지 미국으로 보냈다. 이 가운데 300여개가 북미 상공에 도달했다. 풍선폭탄은 하와이, 알래스카,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부와 텍사스 등 중부에서 목격됐고, 캐나다와 멕시코에서도 등장했다.
2차 대전에서 미국이 직면했던 풍선의 악몽은 약 80년 만에 부활했다. 지난해 초 중국이 띄운 것으로 추정되는 풍선들이 북미 상공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북미 상공을 비행하는 풍선은 미국인들에게 큰 충격을 줬고, 미국은 F-22 스텔스까지 동원해 풍선을 파괴하는 ‘퍼포먼스’로 맞섰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외신에 따르면, 격추한 풍선을 수거해 정밀 분석한 미국 정부는 잔해에서 실제 정찰에 쓰일 수 있는 미국산 사진·동영상 수집 장비가 탑재된 것을 확인했다. 미국에 충격을 주면서 정보도 수집하는 다목적 풍선이었던 셈이다.
풍선은 심리전에서도 널리 사용됐다. 풍선에 전단 등의 선전물을 매달아 하늘로 띄우는 형태다.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고 적군에게 쉽게 포착되며 목표 장소를 정밀하게 지정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제작비가 매우 저렴하고 대량으로 운용 가능하며 속도도 빠르다는 장점이 크다. 한반도에서 전단 등의 살포 방식으로 풍선이 쓰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에서 전단은 ‘삐라’로도 불린다. 전단, 벽보 등을 뜻하는 영어 단어 ‘빌(bill)’을 일본에서 ‘비루’라 불렀고, 한국에서 이를 ‘삐라’라고 발음하면서 선전용 전단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단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냉전과 체제경쟁의 양상이 그대로 담겨 있다. 노골적인 체제 선전과 사회 비난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반공이 강조되던 냉전 시절 한국에서 전단이 골칫거리였던 이유다. 북한은 수시로 체제 선전용 전단을 곳곳에 뿌리며 대남 심리전을 벌였다. 정부가 ‘북한 불온선전물 수거 처리 규칙’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연필, 노트 등의 상품을 주고 전단을 거둬들여야 할 정도였다. 관공서에는 대남 전단 수거 공고가 나붙기도 했다. 해당 규칙은 남북 경제력 격차가 벌어지면서 대남 전단의 숫자가 감소함에 따라 2007년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되어 폐지됐다.
한반도에서 전단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6·25전쟁서부터다. 유엔군이 뿌린 전단은 660여종 25억장이었으며, 공산군 측 전단은 370여종, 3억장으로 알려졌다. 양측 모두 전단 살포를 통해 전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주장하면서 상대방의 이탈과 분열을 추구했다.
유엔군은 공습과정에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고 적의 심리적 부담을 높이고자 공습예고 전단을 뿌렸다.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도쿄 대공습 직전 민간인 대피를 촉구하는 전단 1000만장을 살포, 일본에 상당한 혼란에 빠뜨렸던 전례를 활용한 것이다. 공포를 극대화하고 대피의 시급함을 강조하고자 직설적 표현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안전보장증명서(Safety Conduct Pass)라는 귀순유도 전단도 대량 살포됐다. 중공군이 읽을 수 있도록 중국어 전단도 뿌려졌다. 전투기를 확보하고자 살포된 전단도 있었다. 유엔군은 공산군 조종사가 미그-15기를 몰고 귀순하면 10만달러를 주겠다는 전단을 제작, 미그-15기가 출몰하는 지역에 뿌렸다.
공산군은 크리스마스가 있는 12월을 노려 전단을 살포하기도 했다. 미국 본토에 있는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를 즐기지만, 유엔군은 힘들게 싸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국군 장병들과 주민들에게 저항을 촉구하는 전단도 뿌려졌다.
이 같은 양상은 냉전 종식과 더불어 변화하게 된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상호 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남한 내 국가 주도 대북전단 살포는 중단됐다. 이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남한에서 전단 살포를 통한 심리전이 민영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대북 민간단체들은 전단과 USB, 1달러짜리 지폐 등을 담은 꾸러미를 풍선에 매달아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
이들 단체가 살포하는 전단은 정보를 북한에 유입시켜 주민의 행동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기존과 다르지 않다. 다만 남한의 발전상을 알려서 주민의 탈북을 꾀하는 것보다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지도층과 체제의 실상을 폭로하고 비난하는 내용이 더 눈에 띈다. 폐쇄적 체제를 고수하는 북한에 새로운 정보를 전달하는 심리전 수단이라는 평가와 극단적 표현을 사용해서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시각이 공존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대북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는 남북 관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2020년 6월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전단 살포를 맹비난하면서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라”고 주장했다. 이에 문재인정부는 접경지역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하는 내용 등을 감은 ‘대북 전단 살포 금지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지난해 9월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해당 법률은 효력을 잃었다. 정부는 대북전단 살포에 대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를 존중해 접근하고 있다”며 막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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