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맘에 쏙 든 '맹개마을'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현장+]
"자연이 완전히 그대로 살아 있는 매력에 관광객이 모이는 것 같다. 여기에서 술도 직접 만들고 하는데 조금만 예술적 콘텐츠를 더 하면 정말 손님이 밀려들 것 같다. 오히려 너무 와서 문제가 될까봐 걱정이다. 이렇게 오지고 버려진 땅이라도 결국 어떤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살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 관광이란게 돈으로 도로 넓히고 그런 게 전부가 아니란 걸 이곳이 잘 보여준다. 소멸지역에서의 관광모델이 이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렇게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 있다.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의 이병헌과 김태리, 예능 '인더숲'의 세븐틴, 아마존TV '버터플라이'의 대니얼 대 김. 이들이 촬영차 찾았다가 한 눈에 반한 곳이기도 하다. 경북 안동시 도산면 산골짜기에 있는 맹개마을이다.
기암절벽으로 이뤄진 청량산과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로 둘러싸여 관광이란 관점에선 천혜의 장소다. 하지만 차가 들어갈 수 없는 '오지'다. 얕지만 강을 건너야 해서 트랙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장마 땐 보트가 필요하다.
"불편해서 더 좋은 곳."
이 곳에 왔다가 좋은 인상을 받은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온천마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굴 속 공간처럼 마을 입장부터 현실 세계와 차단된 동화 속 세상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국내외 드라마와 예능에서 앞다퉈 촬영장소로 섭외할 정도로 이 곳은 특별한 풍광을 자랑한다.
농업법인 '밀과 노닐다'의 박성호 대표 부부가 2007년부터 꾸민 이 공간은 현재는 숙박예약이 수개월 간 힘들 정도로 인기다. 숙박과 체험 프로그램이 가능한 이 곳에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지난 13일 방문했다. 유인촌 장관은 문체부와 한국관광공사가 함께 진행하는 '6월 여행가는 달' 캠페인 홍보와 지역관광 프로그램 체험과 발굴을 위해 11일 오후부터 2박3일간 대구·경북에 체류했다.
1시간 남짓의 체험과 간담회였지만 유 장관은 깊은 인상을 받은 듯 했다. 이후 일정인 이철우 경북도지사 및 지역예술인들과의 오찬과 안동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렸던 '광역관광개발 활성화 포럼'에 참석해서도 "맹개마을을 가서 본 게 이번 대구·경북행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유 장관 일행이 인근 농암종택을 출발해 트랙터에 올라 맹개마을에 들어섰을 때, 흐드러진 메밀밭에서 인생샷을 찍고 있는 관광객들조차 수채화 속 인물로 보일 정도로 아름다움 광경이 펼쳐졌다.
유 장관도 연신 감탄사를 뱉으며 풍경을 감상했다. 강원 봉평에서 운영했던 연극인 마을에 본인이 직접 심었던 메밀이 생각난다며 추억에 잠기기도 했다.
이 곳에서 박 대표 부부, 숙박객들과 함께 차담회를 연 유 장관은 "지역 환경을 살리면서도 거기에 맞춤으로 꾸미고 관에서 조금만 뒷받침해주면 이렇게 지역 관광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명소로 만들 수 있던 게 아니냐"며 "일본 나오시마의 지중미술관도 TV도 없고 불편하지만 세계적인 관광지가 됐다. 이런 환경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곳은 하루 만에 보고 가기 어려워서 숙박도 하고 하면서 천천히 즐길 수 있다. 결국 콘텐츠가 중요하다. 폐허로 버려진 마을을 현대적 감각으로 잘 지어놓았다. 화장실과 샤워장 등 요즘 사람들이 신경쓰는 그런 부분을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게 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다. 곳곳에 감동 요소가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 장관은 "이 옆에 퇴계, 농암 선생의 걷는 길도 즐길 수 있어 그런 부분도 잘 살린다면 더 좋겠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이에 박 대표는 "농사만 지어선 생활이 안 되어서 하나씩 해 본 것이다. 숙소도 제 방을 빌려주다가 손님들이 늘면서 더 늘려 나갔다. 농가가 갖는 다양한 기능을 묶어 본 것이다"라며 17년간 직접 부부가 꾸민 공간이 지역을 대표하는 관광명소가 된 과정을 설명했다.
유 장관은 "농촌에 농가숙소 체험프로그램도 다 있는데 못 살리고 있다. 그런 게 잘 유지가 안 된다"며 "떠 먹여 주기만 원할 게 아니라 이렇게 누가 진심을 가지고 하느냐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가장 큰 요인이다"라고 짚었다.
실제 큰 예산을 써서 기반 시설을 해 달라고 정부 부처 등에 조르는 다른 관광지들과 달리 박 대표의 요청 사항도 소박했다. 얕은 강을 트랙터 없이도 손님들이 건널 수 있도록 돌 징검다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맹개마을엔 숙박을 위한 '소목화당', 단체 숙박과 체험공간인 '공방-밀그리다' 그리고 박 대표 부부가 처음 주거공간으로 썼던 '토굴'이었다가 지금은 술 숙성창고로 쓰이는 '맹개술도가'가 있다. 박 대표가 직접 나무를 짜서 만든 돔모양의 하우스에선 작은 음악회도 종종 열린다.
유학 후 귀국해 1990년대 말부터 IT사업을 했던 박 대표는 사업에 지쳤던 순간 우연히 본 경매사이트에서 마음에 드는 안동 땅을 본 뒤 직접 발품을 팔며 다니다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우연히 맹개마을을 발견했다. 쓰러진 초가 하나만 남아 있던 이 곳은 주민들도 살기 어려워 밖으로 모두 떠난 상태였다.
전기와 물이 들어오지 않는 이곳에 원시인같은 생활로 시작해 토굴을 파고 생활하다 집을 짓고 우리밀과 메밀을 심어 농사를 시작했다. 농업의 꽃이고 평소 자신의 꿈이던 '양조'도 이 곳에서 시도했고 지금은 유명 백화점에 납품하는 '진맥소주'를 만들 정도로 성공했다. 직접 농사지은 밀로 만든 진맥소주를 오크통에 담아 싱글몰트 위스키향을 내는 상품도 낸다. 안동소주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살린 술이다. 젊은 시절부터 무전여행을 숱하게 다닌 여행 마니아의 특별한 감각이 오지를 관광명소로 만든 셈이다.
유 장관은 맹개마을을 떠나면서 토굴 속 오크통에 "맹개마을, 자연이 살아 있는 곳! 철학이 익는 도가!"라는 글귀와 함께 사인을 남기기도 했다. 다음 일정을 위해 일어서자고 하자 유 장관은 "판 깔고 얘기 좀 더 하고 싶은데…"라며 아쉬워했다.
안동(경북)=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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