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몬 변화에 민감한…중2 딸과 엄마의 ‘전쟁’
월경전불쾌장애
월경전증후군보다 더 심한 증상
감정 기복·분노 발작 갈등 심화
엄마·딸 함께 겪을 가능성 30~80%
꾸준히 치료받으며 여유 찾아야
40대 초반의 여성 민주(가명)씨는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평소 감정 기복이 큰 편입니다. 기분이 좋다가도 작은 일에도 짜증이 나고 급격히 우울해지곤 합니다. 회사에서는 직속 선배와 특히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 선배도 민주씨 못지않게 감정 기복이 심합니다. 특히 직속 선배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민주씨는 화난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심하게 화가 난 경우에는 숨이 막히고 손이 떨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 다른 동료들과는 문제없이 잘 지내며 감각이 좋고 아이디어를 잘 내는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모녀·부부 갈등까지
민주씨에게는 중학교 2학년 딸 주아(가명)가 있습니다. 주아는 민주씨보다 더 심한 감정 기복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초경과 함께 감정 기복도 시작됐습니다. 짜증을 내며 학교에 가지 않으려는 아침부터 주아와 민주씨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주아와 민주씨, 민주씨의 남편까지 아침부터 서로 언성을 높입니다. 결국 민주씨가 차로 주아를 등교시키는데 소리 지르고 야단치느라 에너지가 완전히 바닥으로 내려앉습니다.
주아는 하교 뒤 혼자 방에서 게임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주씨가 공부하라고 하면 주아는 싫다고 반항하고 가끔 물건을 집어 던집니다. 그날은 주아가 던진 물건에 민주씨가 맞았고 민주씨는 주아를 때리기 시작했고 주아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를 보던 남편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둘 다 나가라”고 했습니다. 주아는 결국 집을 나가 버렸습니다.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이 되지 않자 부부는 서로의 양육 방식을 탓하며 다시 싸우게 됐습니다. 저녁 늦게 주아가 집으로 돌아왔지만 민주씨와 남편의 사이는 회복하지 못할 만큼 갈등이 깊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민주씨는 전화만 와도 깜짝깜짝 놀랍니다. 혹시 주아가 사고 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느라 직장에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안절부절못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씨의 직속 선배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다른 동료들까지 힘들어요. 집에 힘든 일이 있다는 건 알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하면 곤란하지”라고 말했습니다. 민주씨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사무실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민주씨네 세 식구는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 진료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민주씨와 주아는 월경 전 불쾌 장애(PMDD)로 진단됐습니다. 월경 전 불쾌 장애는 월경 전 증후군(PMS)과 구별됩니다. 월경 전 증후군은 생리 주기 시작 며칠 전에 시작돼 보통 월경 첫날 몇 시간 뒤에 끝나는 신체적·심리적 증상입니다. 예민함, 불안, 감정 기복, 우울감 등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이에 비해 월경 전 불쾌 장애는 생활에 지장을 주는 심한 경우에 진단합니다. 감정 기복과 분노 발작으로 업무, 사회생활이나 관계에 지장을 초래하고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한겨레S 뉴스레터 구독하기. 검색창에 ‘한겨레 뉴스레터’를 쳐보세요.
☞한겨레신문 정기구독. 검색창에 ‘한겨레 하니누리’를 쳐보세요.
사춘기 지나면 잦아들어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여성정신건강센터에 의하면 월경 전 불쾌 장애는 가임기 여성의 3~8%, 14~16살 사춘기 아동의 2~6%가 경험한다고 합니다. 원인은 한가지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한 체질’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혈액검사로 호르몬 수치에 이상이 나타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정상적인 월경을 하기 위한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해 감정 기복과 짜증이 나타나게 됩니다. 특히 월경 전 일주일간은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분비에 변화가 오면서 민감한 체질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월경 전 불쾌 장애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족 연구에서 엄마와 딸이 월경 전 불쾌 장애가 함께 올 가능성이 30~80%라고 합니다.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한 체질이 영향을 주고 엄마가 이런 체질이라면 딸도 같은 체질일 가능성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런 체질의 엄마는 산후우울증도 경험할 수 있고 노년기 폐경기 우울증도 나타나서 치매와 같은 기억력 저하를 동반할 수 있습니다.
감정 기복이 심하고 짜증이 많아지면 충돌이 일어나고 가족 간에 갈등이 심해질 수 있습니다. 민주씨도 자신의 사춘기를 생각해 보면 주아와 비슷한 시기를 경험했던 것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민주씨가 월경 전에 느끼는 심한 감정 기복을 주아는 사춘기가 되면서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기 때문에 학교를 안 가려고 한다든지 화를 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춘기가 지나가고 호르몬이 안정되면 감정 기복이 많이 줄어들 것입니다.
민주씨와 주아는 진단을 받고 나서 월경 전 불쾌 장애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기분 변동을 확인해 보니 둘의 월경 전 불쾌 장애가 겹칠 때 심각한 싸움이 일어났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월경 전 불쾌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활습관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여성정신건강센터에 의하면 카페인(커피), 설탕, 나트륨(소금) 섭취를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알코올(술)과 니코틴(담배)을 줄이고 밤에 충분히 잠을 자는 것이 좋습니다. 규칙적인 유산소 운동이 효과가 있습니다. 자신의 기분 변동을 차트로 만들어서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해서 우울증에 대해서 치료를 받는 것이 정상 생활 복귀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칼슘을 하루에 1200㎎ 복용하는 것과 비타민 B6를 50~100㎎ 복용하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민주씨와 주아는 공통적으로 월경 전 불쾌 장애가 있고 호르몬의 변화에 민감한 체질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서로 심하게 부딪치지 않으려 조심합니다. 생활습관을 교정하고 치료도 꾸준히 받았습니다. 다행히 사춘기가 지나면서 주아는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민주씨도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직속 선배의 이야기에도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모녀의 갈등이 줄어들자 남편도 기분 좋은 생활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책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상담소’를 썼습니다. 글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임기 중반 ‘심판’받은 대통령이 가야 할 길
- 의대 학부모들 “환자 불편에도 행동할 때”…강경 투쟁 압박
- 7만원 차이와 7분 논란…‘세기의 이혼’ 승패 갈랐다
- 식당은 팔아도 남는 게 없고, 월급 깎인 직장인은 먹을 게 없다
- 전국 30도 이상 더위 이어져…야외 활동 주의
- 김호중, 뺑소니 35일 만에 합의…택시기사 “운전할 엄두 안 나”
- 500일 만에 서울광장 떠나는 이태원 분향소…“함께 해 고마웠습니다”
- 서울의대 비대위 “교수 1천명 중 400여명 휴진 참여”
- 집단휴진 앞두고 병원 찾아 헤매던 50대…병원장이 직접 수술
- 온몸이 오돌토돌, 근육통까지…발리 여행객 덮친 이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