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 확인에만 5000억원, 동해 유전 '도박과 투자' 사이 [추적+]
동해 유전 손익예상서
尹 정부, 탐사 시추 계획 승인
1조4000억 달러 가치 있나
정부 발표 신빙성도 논란거리
정부가 '동해 유전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하면서 산유국 도전에 나섰다. 시장은 매장량과 경제적 가치 등 정부가 발표한 숫자에 열광적인 호응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가 정확한지는 따져봐야 한다. 시추에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왕고래 프로젝트'로 명명된 윤 정부의 산유국 도전기는 과연 대박으로 막을 끝낼까.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산유국의 꿈을 이룰 수 있을까. 정부가 동해 영일만 석유·가스 유전 탐사 시추 계획을 승인했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시작은 윤석열 대통령의 입이었다.
지난 3일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첫 국정브리핑을 열고 "동해 앞바다에 최대 140억 배럴에 달하는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결과가 나왔고, 유수 연구기관과 전문가의 검증도 거쳤다"며 "실제 매장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확인하는 탐사 시추 단계로 넘어갈 차례"라고 밝혔다.
이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주식시장이다. 석유·강관 관련 기업이 탐사 시추 관련주로 묶이면서 일제히 상승세를 기록했다. 3거래일 연속 상한가를 기록한 동양철관의 주가는 5월 31일 696원에서 지난 5일 1527원으로 119.3% 상승했다. 한국석유의 주가도 같은 기간 1만3810원에서 2만3300원으로 68.7% 치솟았다.
시장이 동해 유전개발 소식에 반응한 이유는 막대한 가치에 있다. 정부는 포항 영일만에서 38~100㎞ 떨어진 지역(8광구· 6-1광구, 7개 유망구조)의 깊이 1000m 부근에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탐사자원량)의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매장 예상 자원은 천연가스 75.0%, 석유 25.0%로 각각 3억2000만~12억9000만톤(t), 7억8000만~42억20000만 배럴이다. 천연가스는 최대 29년, 석유는 최대 4년을 쓸 수 있는 규모다. 정부는 "유전의 가치는 1조4000억 달러(약 1927조3000억원)에 달한다"며 "올해 말 첫 시추 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다. 이른바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서막이 오른 셈이다.
■ 부풀려진 동해 유전 가치 = 산유국 도전이라는 의미 있는 소식이지만 마냥 들떠선 안 된다. 사업을 시행하는 데 적지 않은 혈세를 투입할 게 뻔해서다. 이 지점에서 정부가 주장한 동해 석유·가스 매장량 140억 배럴의 가치 1조4000억 달러부터 분석해보자.
정부는 동해 유전의 가치가 삼성전자 시가총액의 5배에 이른다는 분석을 제시했지만 이는 부풀려진 수치일 공산이 크다. 정부가 발표한 140억 배럴은 시추를 통해 확인한 매장량이 아닌 추정치다. 실제 매장된 석유·가스양은 140억 배럴을 밑돌 가능성이 높다.
유재선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물리 탐사 결과로 확인한 탐사자원량(미발견 원시부존량)이 최소 35억 배럴에서 최대 140억 배럴"이라며 "일반적으로 최소치가 신뢰성을 갖는다"고 분석했다. 석유·가스 매장량을 140억 배럴이 아닌 35억 배럴로 계산하는 게 타당하다는 거다. 그러면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가치는 1조4000억 달러가 아닌 3500억 달러(약 479조5000억원)로 줄어든다.
그렇다고 3500억 달러가 정확한 가치인 것도 아니다. 동해 유전의 가치를 배럴당 100달러로 계산한 결과여서다. 현재 국제 유가가 80달러를 밑돌고 있다는 걸 감안하면 20% 이상 부풀려져 있다는 거다.
■ 시추공 하나당 1000억 = 물론 400조원이 훌쩍 넘는 경제적 가치가 적은 건 아니다. 유전을 찾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동해 유전의 존재를 확신한 심해 기술 평가 전문기업 액트지오(Act-Geo)는 탐사 시추 성공률이 20%로 비교적 높다고 밝혔다. 21세기 최대 유전으로 불리는 남미 가이아나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이었던 16%보다도 높은 수치다.
[※참고: 현재 액트지오를 향한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가 동해 유전 탐사 분석을 의뢰했을 당시 액트지오가 세금 체납으로 법인 자격을 박탈당했다는 것이다. 액트지오의 본사가 가정집이라거나 직원이 2~10명에 불과해 세계적인 업체라고 볼 수 없다는 것도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이번 기사에선 이런 논란은 논외로 했다.]
문제는 비용이다. 유전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선 시추가 필수적인데 비용이 만만치 않다. 시추공(구멍) 하나를 뚫는 데 드는 비용은 1000억원가량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20%의 확률을 근거로 5번의 탐사 시추를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어림잡아 5000억원의 비용이 필요한 셈이다.
유전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대박이 나는 것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석유와 가스가 매장돼 있는지 확인하는 평가정시추를 진행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사업성과 경제성을 인정받아야 유전개발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정부의 발표처럼 막대한 유전을 발견하면 400조원이 넘는 잭팟이 터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5000억원이 넘는 혈세를 고스란히 날려야 한다는 거다. 시추 비용은 정부의 예산으로 마련할 게 뻔해서다.
■ 대왕고래 프로젝트 성공 가능성 = 이런 맥락에서 "140억 배럴의 석유·가스가 묻혀 있다"는 정부의 발표를 둘러싸고 신빙성 논란이 일고 있는 건 반드시 따져봐야 할 문제다. 먼저 그 과정을 복기해보자. 정부는 지난해 2월 액트지오에 동해 심해 탐사자료의 분석을 의뢰했다.
액트지오는 10개월 후인 12월 7개 유망구조에 최대 145억 배럴 규모 석유·가스가 매장돼 있을 수 있다는 보고서를 전달했다. 이후 정부는 해외 자문단(2023년 7월), 국내 자문단(12월)의 피드백을 받고, 석유공사와 외부 전문가의 점검을 거쳐 "액트지오의 보고서를 신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액트지오에 앞서 2007년부터 2022년까지 동해 유전을 탐사했던 호주 최대 석유개발회사 우드사이드가 사업성을 이유로 철수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부의 불명확한 해명이 논란을 키운 면도 없지는 않다. 정부는 지난 7일 우드사이드가 철수한 이유를 다른 기업과의 합병 과정에서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을 재조정한 탓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우드사이드의 동해 유전을 탐사한 후 작성한 보고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더 큰 논란이 일었다.
우드사이드는 사업철수 직전인 2022년 작성한 보고서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2014년과 2021년 대규모 3D 탐사를 거쳤음에도 동해 유전개발은 위험성이 매우 높다."
이를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15년 동안 동해를 탐사한 기업이 내린 "사업성 없다"는 결론을 액트지오가 단 10개월 만에 '유망 사업'으로 탈바꿈시킨 셈이다. 전문가들이 "답은 시추에 있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종근 서울대(에너지공학과) 교수는 "동해 유전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시추"라며 "석유가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해야 유전의 경제성과 생산성을 따져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시추를 통해서만 동해 유전을 둘러싼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는 거다. 결국 '산유국'이란 군불을 땐 정부는 시추에 필요한 '5000억원'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건데, 이는 도박일까 투자일까. 현재로선 가늠하기 어렵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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