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모델 연구로 난임치료 열쇠 찾을까

한겨레 2024. 6. 15.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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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선웅의 인간과 오가노이드
배아줄기세포와 배아모델
배아에서 유래하는 줄기세포
여기서 다시 ‘배아 유사품’ 얻어
수정란 대신해 ‘인간발생’ 연구
발생 과정 난임 원인 밝혀낼 수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의 성진우 박사 제공.

배아줄기세포는 생명 발생의 초기 단계인 배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결국 개체 전체를 만들 수 있다. 배아줄기세포는 장기 오가노이드의 원재료가 되기도 한다. 이런 배아줄기세포는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서 수정이 일어난 뒤 4~5일밖에 지나지 않은 초기의 인간의 싹인 배아(embryo)에서 유래했다. 초기 배아의 안쪽 세포덩어리를 꺼내서 체외에서 배양하면 배아줄기세포가 된다. 혹시 오가노이드를 만들 때마다 인간 초기 배아를 망가뜨려서 배아줄기세포를 꺼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배아줄기세포는 무한하게 자가증식(self-renewal)할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전 세계 실험실에서 사용하고 있는 배아줄기세포 대부분은 20세기 말 배아에서 꺼내 만들어낸 것들이다. 기독교 원리주의적 철학을 가졌던 미국 부시 정부가 윤리적 이유를 들어, 21세기 들어 더 이상 인간 배아를 망가뜨려 새로운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것을 억제하는 정책을 폈기 때문에 20세기의 배아줄기세포를 지금도 쓰고 있는 셈이다.

수정란 우회하는 배아모델

배아줄기세포는 우리 몸 거의 전체를 만들 수 있는 능력(다분화능)이 있기 때문에, 오가노이드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발생 중인 인간 배아와 비슷한 유사품도 만들 수도 있다. 이를 배아모델(embryo model)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매우 낮아서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도 난임으로 고통받는 가족도 많다. 인간 발생 과정은 초기부터 복잡하다. 이 단계의 문제로 인한 난임도 많을 텐데 뭐가 문제인지를 알아내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이를 위해 인간의 수정란을 연구해야 하는데 수정란은 난임클리닉의 인공수정 시술 과정에서 간간이 남는 경우가 전부이기 때문에 이것도 쉽지 않은 경로다. 그래서 수정란이 아닌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얻는 배아모델 연구가 우회로로 제시된다. 배아모델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연구하면 난임치료약을 찾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배아줄기세포는 원래 다양한 세포 집단(배엽)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실험동물에 이식하면 기형종(teratoma)이 형성되는 게 관찰됐다. 배아에서 발견되는 배엽 세포들이 혼합돼 이런저런 장기의 특징이 섞여 있는 종양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는 배아줄기세포가 몸속 여러 장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배아줄기세포를 어떻게 조절해야 무작위적인 종양이 아니라 실제 배아와 비슷하게 잘 발달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야 하는 게 관건이다.

2013년에 미국 록펠러대학의 알리 브리반루 교수 연구팀은 줄기세포를 좁은 공간에 꽉 밀집되게 붙이기만 해도 줄기세포들이 세포 집단의 중심에 있는지 가장자리에 있는지에 따라 어떤 배엽이 되는지 자동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보고했다. 사람의 초기 배아는 배아원반(embryonic disc)이라는 납작한 원반 모양의 구조물로부터 배엽들이 만들어지는데, 배아줄기세포가 원반 형태를 갖추기만 해도 위치 정보를 알아서 저절로 배엽들이 나누어진다는 것이다. 이를 줄기세포의 ‘자기조직화(self-organization) 능력’이라고 한다. 초기 배아에서 배엽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복잡한 요소를 제거해 오류가 날 가능성을 줄이고 멸종의 위기를 피하는 생명의 원리인 셈이다. 아직 줄기세포가 위치에 따라 자기의 분화 운명을 어떻게 결정하는지는 완전히 파악되지 못했지만, 세포 집단에서 가운데 세포들은 더 밀집되어 빽빽해지고, 가장자리 세포들은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밀집되기 때문에, 이로부터 생겨나는 물리적 힘 차이를 감지하는 세포 내 시스템이 작동해서 일어나는 과정이라는 가설이 우세하다.

세포를 3차원으로 뭉쳐도 덩어리 안쪽과 표면에서는 서로 다른 반응이 일어난다. 세포덩어리를 하이드로젤 같은 물질로 감싸거나 말랑한 표면에 붙이면 겉과 속 세포에 가해지는 물리적 힘 차이가 생긴다. 사람 초기 배아 상태와 비슷한 물리적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이후 발생을 유도하는 단백질이나 약물 적당량을 배지에 넣어주면 배아줄기세포를 꺼낸 시기(배반포 시기) 이후의 발생과 유사한 과정을 보인다. 배양 조건에 따라서는 신경관이 형성되기도 한다. 배아모델이 체외에서 실제 인간 배아와 비슷하게 모양을 잡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다 보면, 신기하다 못해 약간 무서운 생각까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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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초기 배아 대량생산 단계까지

과학자들은 좀 더 근원적인 것을 추구하고, 아무도 가지 못한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배아모델 연구에 있어서는 배아줄기세포를 꺼낸 시점보다 더 이른, 완전 초기 배아를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해서 만들어내고자 하는 목표가 그런 것이다. 포유류 수정란은 자궁에 붙어서 발생하기 때문에 배아가 자궁에 착상하기 위해서는 영양세포(trophoectoderm)가 있어야 한다. 실험용 쥐의 배아에서 영양세포를 채취한 뒤 배아줄기세포와 잘 섞어주면, 초기 배아와 비슷한 모델을 한번에 수백~수천개씩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인공 마우스 배아를 배양하면 심장이 뛰고 신경계와 눈이 만들어지는 정도까지 잘 자란다. 2022년 오스트리아 분자생명공학연구소(IMBA)의 니콜라 리브롱 교수와 성진우 박사 연구팀은 이 인공 배아를 대리모(실험용 쥐)에 이식해 초기 착상 반응이 잘 일어남을 관찰하는 성과를 거두었지만, 아직 어느 누구도 완전한 개체로 새끼가 태어날 수 있게 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다.

사람의 경우 영양세포를 인간 배아로부터 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발생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배아줄기세포로부터 영양세포를 만드는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마그달레나 괴츠, 이스라엘 바이츠만 연구소의 야코브 한나, 미국 예일대의 베르나 소젠 연구팀 등에서, 거의 완전해 보이는 인간 초기 배아를 대량생산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논문을 동시다발적으로 발표했다. 현재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이 모델들은 체외에서 14일 이내까지 배양되는 과정을 관찰했고 대리모 이식 연구는 수행되지 않았다.

배아모델에 관한 기술의 발전이 인간 대량생산 등의 선 넘는 파멸적 기술이 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술을 어디에 사용할지는 인간이 결정하는 문제이고 과학자들도 이런 부분에는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 관련 연구 윤리에 관한 연구와 토론도 활발하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사회적인 관심은 꼭 필요한 연구 분야다.

고려대 의과대학 해부학교실 교수

어릴 때는 건강이 좋지 않아 혼자 집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대학에 진학하고 발생학에 관심이 생겨 신경발생학 분야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나는 뇌를 만들고 싶다’, ‘첨단기술의 과학’, ‘생물학 명강 3’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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