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업고 튀어’도 여기서 찍었다고요? 인기드라마 단골 촬영지 수원
“오로지 ‘솔선 커플’ 때문에 한국을 찾았어요.”
지난 4일 수원시 행궁동에서 만난 말레이시아 관광객 조세핀(28)은 2주 동안 한국에 머물며 tvN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주인공 임솔(김혜윤)과 류선재(변우석)가 누비던 촬영지를 돌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 여행의 추억을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K드라마로 가득 채울 생각에 조세핀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최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실패 확률이 낮다. 좋아하는 드라마, 영화, 음악, 문학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취향저격 코스가 되기 때문이다. 수원은 최근 종영한 <선재 업고 튀어>를 비롯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그해 우리는> 등 인기 드라마를 찍은 곳이다. 화성행궁을 품은 덕에 역사 영화·드라마의 단골 배경으로 등장한다. 행궁 근처 행리단길에는 맛집과 카페가 즐비해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많다.
오랜 세월 머금은 골목…드라마 단골 촬영지
화홍마트, 왕대포집, 깡보분식, 칠보장여인숙…. 수원 화홍문 문화의거리에 들어서자 오랜 세월을 머금은 간판들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어릴 적 뛰놀았던 골목처럼 정겨운 분위기 때문일까. 분명 처음 와본 곳인데, 익숙한 풍경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상인들의 설명을 듣고서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바로 이 골목에서 인기 드라마들을 촬영했단다. 드라마 장면 속 그곳이 마치 나의 추억같이 느껴졌던 것이다. 최근엔 행궁동 일대에서 찍은 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가 큰 인기를 얻었다. 이 때문인지 평일 오전인데도 인증사진을 찍는 인파가 끊이지 않았다.
가게를 통째로 촬영팀에 내줬었다는 화홍마트는 드라마 속 장면을 인쇄해 가게 앞에 걸어놓았다. 극중 류선재가 심부름으로 술을 사가던 임솔이 술을 마시려고 한다고 오해해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 등 다양한 에피소드가 마트와 이 앞 골목에서 촬영됐다.
화홍마트를 10년 넘게 운영한 윤미영 사장은 “2~3월 한창 추울 때 배우들이 반소매를 입고 드라마를 찍었다”며 “드라마가 잘되면서 한국팬은 물론 인도네시아, 중국, 태국 등 세계 각지에서 팬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지역 상인들은 드라마·영화 촬영팀에 익숙하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최근에도 유명 배우가 나오는 드라마를 이 골목에서 찍었다”면서 “원래 화성행궁이 유명해서 관광객이 많았는데 드라마 덕에 사람이 더 많이 찾아와서 좋다”고 뿌듯해했다.
행궁동 골목을 걷다 보니 드라마 속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드라마 팬들도 골목을 걸으며 명장면을 되새기는 듯 보였다. <선재 업고 튀어>의 임솔이 열아홉 살 때 살던 집은 현재 카페 ‘몽테드’로 운영 중이다. 평일임에도 수십 명이 카페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카페 맞은편엔 드라마 주인공 류선재가 살던 파란 대문 주택이 있다. 이 집은 주민이 살고 있는 만큼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방문객들은 드라마 속 사랑의 매개체였던 노란 우산을 들고 사진을 남겼다. 친구들과 여행을 온 조세핀도 노란 우산을 들고 인증사진을 남겼다. 조세핀은 “한국 드라마를 좋아한다”며 “특히 <선재 업고 튀어>는 풋풋한 사랑 이야기에 탄탄한 타임슬립 구조가 들어가 있어 흥미진진하게 봤다”고 했다. 세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이번 여행은 모든 일정을 드라마 촬영지에 맞춰서 짰다”면서 “오직 드라마 때문에 한국을 찾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드라마를 콘셉트로 사진을 찍는 사람도 많았다. 사진작가 치요는 모델 방현서씨와 드라마를 모티브로 사진 촬영 중이었다. 치요는 “파란 대문, 노란 우산, 알록달록 벽화 등 풋풋한 감성을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면서 “드라마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사진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효심으로 쌓은 행궁, ‘핫플’이 되다
드라마 촬영지로 이름이 나기 전부터 수원화성 성곽 주변은 ‘핫플’로 통했다. 예스러운 한옥과 구옥에 카페, 맛집, 공방 등이 들어서면서 MZ세대 감성 골목으로 입소문이 났다. 이 일대는 서울 이태원 인근 유명 거리 경리단길과 수원 행궁동을 합쳐 ‘행리단길’로 불려왔다.
하지만 주민들은 행리단길 이전부터 이곳이 관광 명소였다고 입을 모았다. 바로 화성행궁 때문이다. 화성행궁은 조선 22대 정조 대왕이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며 축조한 궁이다. 사도세자의 묘소를 수원부 읍치 자리(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건립됐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가 임금이 수원에 행차할 때는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궁실로 이용했다. 수원화성 축조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화성행궁은 약 600칸 규모로,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최대 규모였다.
19세기 말까지 궁실이자 관청으로 사용됐던 화성행궁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훼손됐다가 2002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이 시작됐다. 현재 수원화성에는 4개의 문루, 동쪽 창룡문과 서쪽 화서문, 남쪽 팔달문과 북쪽 장안문을 이어주는 성곽길이 있다. 걸어서 성곽길을 다 돌아보려면 약 3시간이 걸린다. 화서문에서 장안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경사가 가파르지 않아 성곽을 따라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선재 업고 튀어>의 로맨스 배경이 된 곳도 성곽길에서 만날 수 있다. 야경으로 유명한 ‘화홍문’은 수원화성의 성벽이 수원천을 지나는 부분에 설치한 수문이다. 수원천 징검다리와 인도교, 바로 옆 누각 ‘방화수류정’ 등 걷다 보면 주인공들이 알콩달콩 추억을 쌓은 배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정조의 발자취를 따라 골목길을 걸어봐도 좋다. ‘행궁동 왕의 골목’은 정조가 행차했던 길, 백성들과 교감을 나누었던 곳 등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효심으로 쌓아 올린 행궁은 수백 년 후 사람들의 추억을 특별하게 만드는 매개체로 작용하고 있었다.
☞알고 가세요
화성행궁과 행리단길 외에도 수원에는 볼거리가 많다. 못골시장, 공방거리, 황구지천, 효행공원, 수인선협궤열차길 등 수원 명소를 더 둘러보고 싶다면 공유차를 이용해보는 것도 좋다. 수원역 500m 이내에 쏘카 약 40대가 배치돼 있다. 중소형차 기준 4시간 이용료가 2만원대로 부담 없이 여행하기 좋다.
이윤정 기자 y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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