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전세난’ 비아파트 ‘역전세’…임대차법 시행 4년, 돌아보니
임차인 주거 안정 취지 무색
아파트 전세난 갈수록 심화
갱신권 사용 비율 20~30% 저조
‘임대차법 폐지’ 국토부 장관 주장에
시장에선 “시장 혼선만 가중”
문제는 임대차 2법의 4년 계약 만기가 도래하며 전세 시장이 다시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입자는 10가구 중 2~3가구 정도로 임대차 2법을 활용하는 이가 저조한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아파트로 전세 수요가 쏠리면서 아파트 전셋값은 치솟고 있는 반면, 빌라(다세대·연립) 등 비아파트는 역전세가 늘어나고 있다.
15일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6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지수는 0.10% 오르며 지난해 6월 상승 전환한 뒤 1년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역대 세 번째로 긴 상승 기간 기록이다.
역대 최장 기록은 2014년 6월 셋째 주부터 2017년 1월 둘째 주까지 135주다. 이어 2019년 7월 첫째 주부터 2022년 1월 셋째 주까지 134주 순이다.
서울의 전셋값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수급 불일치를 원인으로 지목한다. 또 상반기 입주물량 감소와 임대차2법 만기 도래 등으로 당분간 전셋값 상승세는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임대차 2법은 2020년 7월부터 시행됐다. 임차인에게 계약을 연장할 수 있는 권리를 1회 보장하고 재계약 시 보증금 인상률을 5%로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전세 계약이 통상 2년씩 체결되는 만큼, 계약 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전세 매물의 4년 만기가 돌아오면서 전셋값 인상률이 5%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더욱이 빌라 전세사기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어 아파트 전세로 수요가 몰리면서 아파트 전셋값은 오르는 데 반해 비아파트의 경우에는 전셋값이 떨어지며 역전세가 발생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올해 1~5월 서울에서 거래된 연립·다세대 전세의 46%가 역전세 주택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을 바탕으로 2022년 1~5월 전세 거래 4만2546건과 올해 1~5월 동일 주소지에서 전세 거래가 이뤄진 9653건을 분석한 결과, 46%에 해당하는 4437건은 기존 전세 보증금 대비 전세 시세가 하락한 역전세 주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역전세 주택의 전세 시세 차액은 평균 979만원으로 2년 전과 비교해 4% 하락했다.
지난해 다방의 동일 조사에서 역전세 주택 비율이 34.7%, 시세 차액은 평균 2859만원(11.2%)으로 조사된 바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역전세 주택의 전세 시세 차액은 줄었지만, 역전세 거래 비중은 11.3%포인트 상승한 것이다.
정성진 어반에셋매니지먼트 대표는 “임대차 2법 만기 시점이 8월에 다가오면서 계약갱신 만료 매물의 경우 그동안의 가격이 반영되며 전셋값이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아파트 전세 수요는 여전히 많은 데 비해, 전세 매물은 상대적으로 부족해 전셋값 상승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당분간 전세시장에서 아파트 쏠림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비아파트의 역전세난에 대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부동산R114가 전월세신고제가 시작된 2021년 6월부터 올해 5월까지 국토교통부에 신고된 전국 아파트 전월세 거래(356만9139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들어 임대차 재계약에서 갱신요구권을 사용한 비율이 26%에 그쳤다. 같은 기간 서울에서도 갱신권 행사는 29%에 불과했다.
전셋값이 급등했던 2021년, 2022년에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계약에서 갱신권 사용은 각각 평균 68%, 59%였다. 전세만 보면 21년과 22년 상반기 갱신권 행사는 각 72%로 높았다. 전국 기준으로도 각각 67%, 60%였다.
그런데 2022년 하반기부터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전셋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갱신권 사용이 빠르게 줄었다. 역전세가 나타났던 지난해 서울 아파트 갱신권 사용 비중은 33%로 21~22년에 비해 반 토막 났고, 올해는 감소폭이 더 컸다. 대신 2021~2022년 30~40%대에 머물렀던 전월세 신규 계약이 작년부터 50~60%대로 크게 늘었다. 갱신권을 쓰지 않고 더 싼 매물을 찾는 게 낫다고 본 세입지가 늘은 영향으로 풀이된다.
김지연 부동산R114 책임연구원은 “전월세 가격이 연간 10% 넘게 뛰었던 2020~22년에는 보증금 인상 폭을 5%로 묶는 갱신요구권이 효과를 냈지만, 전세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부터는 갱신권을 쓸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임대차 2법은 4년 간 임대료를 통제해 집주인이 전세 가격을 한꺼번에 많이 올리게 만드는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 시행 초기 전셋값이 폭등했고, 대다수 임차인의 주거 안정성을 떨어트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실제 임대차 2법 시행 초기인 2020년, 2-21년 전셋값은 전국적으로 19%, 14%씩 치솟았다. 지난 1년 간 서울 전셋값이 오르고 있지만 누적상승률은 5% 정도다. 지방은 아직도 역전세인 곳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장에서는 “임대차 2법이 지역이나 시장 상황에 다르고 무엇보다 4년마다 전셋값 불안 요소가 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요즘 시장에선 임대차 2법이 다시 전셋값을 자극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재계약 만기가 도래하면서 집주인들이 4년동안 밀린 상승분을 반영할 수 있다는 관측 때문이다.
강남·성동·송파 등 서울에서 인기 있는 지역은 벌써 몇 달 새 1억~3억씩 오른 전세 계약이 부쩍 늘고 있다. 일례로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전용 84㎡는 지난달 24일 13억원(16층)에 전세 거래가 체결됐다. 이 거래 전 지난달 4일 같은 면적이 11억원(31층), 10일 12억3000만원(15층)에 거래된 것을 고려하면 한 달 동안 2억원이 뛴 셈이다.
동작구 흑석동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84㎡(2~3층)도 지난달 1일 10억3000만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된 이후 11일 11억5000만원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다. 성동구 금호동 ’서울숲푸르지오 2차‘ 전용 59㎡는 지난달 11일 7억7000만원(6층)에 전세 세입자를 찾았다. 지난 4월 6일 6억3500만원(5층)에 거래된 지 한 달여 만에 1억원이 넘게 전세가격이 뛰었다.
이런 가운데 박상우 국토부장관의 언급이 시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연일 ’임대차2법 폐지‘를 주장하고 있어서다. 앞서 박 장관은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임대차2법은 원상복구가 맞다는 게 제 개인과 국토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한데 이어, 지난 9일 언론 인터뷰에서도 “2+2 임대차 갱신요구권은 (기존 2년 단위 계약으로) 원상회복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도입 4년차에 접어든 임대차2법을 폐지해야 할 명분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폐지가 되레 더 큰 시장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안정을 도모해야 할 주무 부처 장관이 실현 가능성이 낮은 폐지론을 재차 꺼내들며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임대차2법이 전세시장에 미칠 영향이 과장됐다는 의견도 있다.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은 법 시행 이듬해인 2021년부터 이뤄진 만큼, 2+2년 만기 도래 매물은 지난해부터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갱신계약이 끝나고 4년치 임대료를 올려 받으려는 전세매물이 한 번에 쏟아지는 것이 아닌 만큼, 임대차2법이 전셋값 변동에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란이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2월 헌법재판소는 임대차2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만장일치 판단을 내놓은 바 있다. 헌재는 “임차인의 주거안정 보장이라는 입법 목적이 정당하고, 차임(임대료·임차료) 상승 제한이라는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는 것이다.
법 제정을 주도한 야당이 원내 과반 의석을 갖고 있어 폐지 가능성이 낮다는 현실도 폐지보다는 유지에 힘이 실려 보이는 원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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