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입법 독주’와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의 방정식 [기후가 정치에게]

김승환 2024. 6. 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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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22건 무더기 당론 채택한 민주 의총
태양광 등 이격규제 간소화法도 논의했지만
이격거리 ‘100m’ 기준에 이견 제기돼 당론 불발
전문가도 “비과학적 기준…보급확대 취지에도 반해”

4·10 총선 압승을 등에 업은 더불어민주당의 ‘입법 독주’가 거침이 없다.

최근 법사위·운영위 등 11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했고, 국민의힘의 ‘보이콧’에도 아랑곳 없이 상임위를 단독 운영 중이다. 13일엔 당 정책의원총회를 열어 김건희특검법 등 법안 22건을 한꺼번에 당론 채택했다. 민주당이 18개 상임위 독식을 예고하고 있는 가운데 말 그대로 입법으로 몰아칠 만반의 준비에 들어간 모습이다.

민주당은 총선 민심을 받들어 ‘일하는 국회’를 구현하기 위한 것이라 항변하지만 거대 야당의 일방 독주에 우려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실제 민주당이 이런 식으로 법안을 통과시키더라도 행정부 수반인 윤석열 대통령이 이를 그대로 공포할지도 미지수다.

제22대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여야 대치가 극단으로 치닫는 중에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문제가 말 그대로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바로 압도적 원내 1당인 민주당이 당론으로 채택해 법안 22건을 사실상 ‘입법 고속도로’에 올린 13일 정책의총 자리에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책의원총회에서 박찬대 원내대표의 발언을 듣고 있다. 뉴시스
◆간발의 차로 못 오른 ‘입법 고속道’

민주당이 애초 이 자리에서 당론 채택 여부를 논의한 법안은 모두 24건이었다. 딱 두 건이 ‘불발’된 건데 바로 그 중 하나가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발전 이격거리 규제 간소화를 골자로 한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이었다. 정책의총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된 건 21대 국회서 발의됐다가 임기 만료로 자동폐기된 신영대 의원안이다. 그 골자는 이렇다.

‘과학적이고 합리적 근거 없이 무분별하게 규정돼 있는 이격거리 규제를 해소하기 위해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입지에 관해 특정 시설로부터 이격거리를 설정하는 걸 허용하지 않는다. 다만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에만 태양광 설비는 주거지역으로부터 최대 100m, 풍력설비는 주거지역으로부터 500m 이격거리를 설정할 수 있다.’

이는 현재 개별 기초지자체가 조례 등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입지에 대한 이격거리 규제를 제각각 적용하고 있는 걸 법률로 일괄 통일해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취지다. 그간 기초지자체 조례에 의존하는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가 재생에너지 보급의 ‘발목’을 잡고 있단 지적이 꾸준히 나온 터다. 

산업통상자원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기초지자체 228개 중 129개(지난해 1월 이격거리 규제 개선방안)가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를 적용 중이다. 수도권·광역시 제외하면 95%가 시행 중으로 매년 증가 추세란다. 산업부는 이와 관련해 “지자체별로 민원 최소화 목적으로 과학적·기술적 근거 없이 과도한 수준으로 설정하고 있다”며 “동일 시설에 대해 지자체별로 상이한 이격거리를 설정해 사업자·주민의 민원 및 갈등이 심화한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자체의 이격거리 확대로 재생 발전사업 축소 및 이에 따른 관련 산업 발전 위축이 우려된다”고 했다.
충북혁신도시 태양광 발전시설. 진천군 제공
◆‘뜻’은 좋았지만 ‘속’이 설익었다

정부가 이 정도면 민주당이 신재생에너지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할법도 한데 왜 불발된 걸까. 

실제 민주당 의원들은 정책의총에서 이 개정안의 ‘이격거리 규제 간소화’라는 취지 자체에는 대개 동의했지만, 그 법안 내 이격거리 기준으로 제시된 ‘태양광 주거지역 100m’, ‘풍력 주거지역 500m’를 놓고 이견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산자위 야당 간사로서 정책의총에서 해당 법안을 발표한 김원이 의원은 통화에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 (이격거리) 표준을 만들자고 하는 데에는 대부분 의원들이 동의했다”며 “그런데 이제 그 개정안 내 ‘태양광 이격거리 100m, 풍력 500m’ 내용에 대해 ‘그걸 표준으로 삼는 게 적절하냐’는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태양광 주거지역 100m’와 관련해서는 ‘본인이 전기를 쓰기 위해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는 지역주민들을 고려할 때 세심한 정책적 배려가 부족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고 한다.

실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민주당 정책의총에서 논의된 개정안 내 기준에 대해 “비과학적”이란 지적이 나오는 터다. 기후솔루션 조은별 팀장은 통화에서 이와 관련해 “태양광 주거지역 이격거리로 정한 ‘100m’라는 게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다”며 “태양광 시설은 어떤 유해성도 없다는 게 보편적인 연구결과인데, 이 ‘100m’ 이격거리 규제를 왜 두냐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산업부 또한 태양광 설비의 유해성 등에 대해 국내·외 연구기관이 수행한 실증연구를 검토한 결과 전자파·빛반사·소음 등에 대한 주변 지역 피해 영향은 없었다고 결론내린 바 있다(지난해 1월 이격거리 규제 개선방안). 조 팀장은 “태양광의 경우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격거리 규제를 법으로 정하는 건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풍력 시설의 경우 소음이나 설비 파손에 따른 위험 등 주거지역과의 이격거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지만, 법안 내 ‘주거지역 이격거리 500m’는 태양광과 마찬가지로 비과학적인 데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위한 규제 간소화’란 애초 취지에도 반한다는 게 조 팀장의 설명이다.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의 정책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국회 예결위회의장의 문틈 사이로 국회 앰블럼이 보인다. 연합뉴스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 중에 풍력 이격거리 규제를 조례로 두고 있는 곳이 50여개다. 이걸 법률로 이격거리를 ‘500m’ 등으로 못 박아버리면 나머지 170여개 기초지자체에 오히려 규제가 생겨버리는 셈이 되는 것이다. 풍력의 경우 개개 시설마다 환경영향평가 체계를 통해서 주거지역과의 적정 이격거리를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

결국 신재생에너지 개정안이 민주당의 ‘입법 고속도로’를 타지 못한 건, 그 ‘뜻’은 좋았으나 세부내용이 설익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민주당은 일단 산자위 차원에서 이 개정안을 다듬기 위한 논의를 이어간다는 입장이다. 산자위 야당 간사인 김 의원은 이와 관련해 “산자위가 열리면 그 단위에서 좀더 심도있게 제기된 문제들을 논의해보자고 (정책의총에서) 뜻을 모았다”고 했다. 다만 현재 산자위원장은 여야 간 원 구성 갈등으로 공석인 터라 회의가 가동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은 산자위원장을 국민의힘 몫으로 남겨놓은 상태다. 국민의힘이 계속 원 구성 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은 17일 본회의에서 자당 의원의 위원장 선출 강행도 마다하지 않겠단 입장이다.

※참고자료
이격거리 규제 개선방안(2023년 1월·산업통상자원부)
 
정치가 기후에 답하는 그 날까지 씁니다, 기후가 정치에게.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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