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창 ‘속전속결’ vs 여당의 방패 ‘거부권’ [여의도가 왜 그럴까]
더불어민주당이 11개 국회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선출한 지난 10일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여야 협상 과정에서 막판 타협안을 제시한 사실을 털어놨다.
타협안은 결과적으로 거부당했다. 추 원내대표가 설명한 협상 과정이 맞는다면, 민주당은 법사위원장 자리 만큼은 절대 내줄 수 없다고 판단한 셈이다.
야권은 10일 본회의에서 민주당 강경파 정청래 의원을 법사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법안은 발의되면 상임위원회→법사위→본회의를 거쳐 처리된다. 민주당은 의사지휘권을 가진 국회의장(우원식 의원)과 모든 법률안의 길목을 지키는 ‘수문장’ 격인 법사위원장 자리를 모두 확보함으로써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됐다.
상임위 180일, 법사위 90일, 본회의 60일 등 최장 330일이 걸리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절차를 굳이 밟을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 위원장이 이끄는 상임위 소관 법안은 이론상으로는 단 하루 만에도 처리가 가능해졌다.
법안은 상정되기 전 ‘숙려기간’을 두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은 15일, 제정안은 20일이다. 법사위에 회부되면 다시 5일의 숙려기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각 위원회가 ‘긴급하고 불가피하다’고 판단하면 숙려기간을 생략한 채 바로 상정→심사→의결 과정을 거칠 수 있다.
1. 일부개정법률안: 15일
2. 제정법률안, 전부개정법률안 및 폐지법률안: 20일
3. 체계·자구 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 5일
4. 법률안 외의 의안: 20일
실제 민주당 최민희 의원이 이끄는 과방위는 14일 전체회의에서 이른바 방송3법(방송법·방송문화진흥회법·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과 방송통신위원회법 개정안을 곧바로 상정했다. 야당 소속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숙려기간 없이 심의하는 방안을 의결한 것이다.
① 위원회는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는 안건(예산안, 기금운용계획안, 임대형 민자사업 한도액안 및 체계·자구 심사를 위하여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법률안은 제외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을 심사하기 위하여 재적위원 3분의 1 이상의 요구로 안건조정위원회(이하 이 조에서 “조정위원회”라 한다)를 구성하고 해당 안건을 제58조제1항에 따른 대체토론(大體討論)이 끝난 후 조정위원회에 회부한다.
여야 이견이 있는 법안은 재적 위원 3분의 1 이상 요구로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재는 국민의힘이 상임위 강제 배분에 반발해 일괄 사임계를 내고 상임위를 보이콧 중인 상황이어서 안건조정위 소집 요구가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현재 여야 의석수는 108석 대 192석으로, 각 상임위도 이와 비슷한 비율(11 대 7)로 구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본회의는 위원회가 법률안에 대한 심사를 마치고 의장에게 그 보고서를 제출한 후 1일이 지나지 아니하였을 때에는 그 법률안을 의사일정으로 상정할 수 없다. 다만, 의장이 특별한 사유로 각 교섭단체 대표의원과의 협의를 거쳐 이를 정한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지난달 28일 열린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김진표 당시 국회의장은 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한 7개 법안 중 4개 법안만 상정했는데, 바로 이런 경우다.
김 의장은 “나머지 3개 법안은 상임위 심사 과정에서 여야 및 정부와의 이견이 커서 1일 의무 숙려기간을 규정한 국회법 제93조의2의 취지에 따라 오늘 본회의에서는 처리하지 않겠다”며 “국회의장으로서 국회법 정신을 지키는 것이 최우선적 도리라는 점을 양해해 달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상황은 4년 전 21대 국회 초반과 비슷했다. 제1당 민주당이 18개 상임위원장을 독식했기에 법안 처리 속도전을 펼칠 수 있었다.
게다가 민주당은 당시 여당이었다. 법 시행까지도 일사천리로 진행할 수 있었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그랬다.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 등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2020년 7월29일 법사위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2시간 만에 의결한 뒤 다음날 본회의에서 50분 만에 통과됐다. 31일에는 정세균 국무총리가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14일 법사위 제1법안소위로 넘어온 채 상병 특검법도 이론상으로는 바로 의결해 다음 본회의 때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법사위는 오는 21일 채 상병 특검법 입법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12명의 증인과 3명의 참고인을 부르기로 했다. 적어도 21일 전에는 본회의 통과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민주당은 채 상병 순직 1주기인 다음달 19일까지는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에도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마지노선은 7월초로 보인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정부로 이송된지 15일 안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입법 독주를 한다면 거부권으로 맞불을 놓겠다는 태도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 12일 민주당을 향해 “의회독재의 마약을 맞은 것 같다”고 맹비난하면서 “여야가 함께 참여하는 정상적인 국회 논의과정을 깡그리 무시한 채 민주당이 일방 독주로 만든 엉터리 법안들이 본회의를 통과한다면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책임감을 갖고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경고했다.
여권은 거부권을 “대통령이 국회 권력에 대응하는 최소한의 방법”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11건의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연방정부 수립 이후 2000건 넘게 거부권이 발동된 바 있다고 국민의힘은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2022년 5월 취임 후 지금껏 14건의 법안을 국회로 다시 넘긴 바 있다.
재의결 요건은 ‘재적 과반수 출석, 출석 3분의 2 이상 찬성’이다. 재적 300명 중 여당 의원 108명이 똘똘 뭉친다면, 야당이 일방 처리한 법안이 재의결 문턱을 넘기는 힘들다는 얘기다.
유태영 기자 anarchy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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