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인 오지 마”…휴양지의 나라가 용기를 냈다

한겨레 2024. 6. 15.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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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구정은의 현실 지구
작지만 당찬 몰디브
팔레스타인에 특사, 모금행사도
서울 절반 크기, 국민 99% 무슬림
평균고도 1.5m ‘기후위기’에 취약
인도-중국 경쟁…친중 정부 들어서
지난해 9월 몰디브 대선에서 야당 후보였던 무함마드 무이주가 수도 말레에서 유세를 위해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몰디브가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전쟁범죄자로 지탄받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미국 의회가 초청하면서 시끄러운 시점에,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항의하는 국가적인 결정을 내렸다. 팔레스타인에 보낼 대통령 특사를 임명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모금 행사도 하기로 했다. 몰디브 힘으로 어떻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구하겠냐마는, 연대의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비취색 해변, 산호초 관광과 스쿠버다이빙으로 유명한 휴양지 몰디브. 코로나19 이전에는 170만명에 이르는 관광객이 방문하던 나라다. 이스라엘 관광객은 연간 1만5000명 정도였다. 하지만 작년 10월 전쟁을 시작한 뒤로는 많이 줄어서 올 1월부터 4월까지는 528명이 왔을 뿐이다. 몰디브 입장에선 그들을 막아도 경제적 타격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문제로 미국의 압박을 받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용기를 냈다.

이슬람 왕국 이후 독재·민주화

면적 300㎢, 서울 절반에도 못 미치는 크기다. 인구는 50만명이 좀 넘는데 그중 20만명가량이 외국인 노동자다. 몰디브 국민은 99%가 이슬람 수니파다. 이것이 반이스라엘 여론에 물론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막는 나라는 많다. 알제리, 방글라데시, 이란, 이라크, 파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과 아시아,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국가들이다. 지난 3월 이스라엘 정부는 소셜미디어에 이 나라들 목록을 올리면서 보란 듯이 “우리는 좋다”라는 글을 올렸다. 미국이 뒤에 있으니 저 나라들이 입국금지를 하건 말건 상관없다는 뜻이었다. 몰디브가 뒤를 잇자 이스라엘 외교부는 일단 몰디브에 체류 중인 자국민들에게 되도록 현지를 떠나라고 권고했다. 아무것도 아닌 척하지만, 체면을 구긴 것은 틀림없다. “중요하지도 않은 나라”, “20년 안에 가라앉아버렸으면 좋겠다.” 이스라엘인들이 몰디브의 입국금지 결정을 조롱하며 소셜미디어에 올린 글이다. 몰디브는 기후변화로 해수면이 올라가 물에 가라앉을 처지다. 그래서 국제사회에 기후 대응을 더 강력하게 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호소해왔다.

몰디브는 외부 세계에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14세기 북아프리카 출신 여행자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도 나온다. 위치는 스리랑카와 인도의 남서쪽에 있으며 아시아 대륙 본토에서 약 750㎞ 떨어져 있다. 적도를 가로질러 26개 환초가 뻗어 있고, 그 환초들을 중심으로 1200개 가까운 산호섬들로 구성돼 있다. 면적 기준으로는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작은 국가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작은 나라다. 평균 해발고도가 1.5m밖에 안 되고 가장 높은 곳도 2.4m에 불과한, 세계에서 가장 고도가 낮은 나라이기도 하다.

나라는 작지만 역사는 길다. 기원전 6∼5세기에 몰디브에 이미 왕국이 있었다. 그러다가 스리랑카(실론섬) 등을 거쳐 인도계가 흘러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후대에 아랍어로 기록된 책에 따르면 이 섬 주민들은 ‘데이비’(Dheyvi)라는 사람들인데 기원전 3세기 이전에 인도에서 왔다고 한다. 4세기의 로마 기록에 ‘디비’라는 나라에서 율리아누스 황제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적혀 있는데 이것이 몰디브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인도인들은 섬에 불교를 가져왔고, 이후 1400년 동안 몰디브는 불교 시대였다. 이 시기에 언어와 문자, 건축, 통치제도와 관습 등이 형성됐다. 12세기에 아랍인과 페르시아인 무역상들이 이슬람을 전파한 후로는 6개에 걸친 이슬람 왕조가 이어졌다. 이븐바투타가 14세기에 방문했을 때에는 바다 건너 오늘날의 소말리아에서 온 사람들이 지배계급을 구성하고 있었다고 한다. 16세기 중반부터 유럽 세력이 들이닥쳤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가 간섭했고 1887년 영국의 보호령이 됐다. 그러나 공물을 바치는 대신에 이슬람 왕국을 유지하며 자치를 했다. 1965년 영국 보호령에서 벗어났고 3년 뒤 공화국이 수립됐으나 초창기는 혼란스러웠다. 파벌 싸움을 벌이던 초대 대통령 이브라힘 나시르는 국고에서 수백만달러를 챙겨 1978년 싱가포르로 달아나버렸다. 그 뒤 집권한 마우문 압둘 가윰은 1978년부터 2008년까지 무려 30년간 대통령으로 재임했다. 그의 통치 기간에 관광업이 커지고 경제가 성장했지만, 2004년 인도양 쓰나미 뒤의 경제 타격과 장기집권 독재에 대한 반발이 커지면서 2008년 민주화가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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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아름다운 인도 해변으로”

2014년 12월, 인구가 10만명이 넘는 몰디브 수도 말레의 정수공장이 고장 났다. 사람들은 물을 배급받기 위해 곳곳에 줄을 섰고, 주변국들이 군함과 비행기로 물을 실어날랐다. 며칠간 벌어진 이 소동은 ‘기후 난민 시대’에 지구 곳곳에서 어떤 위기가 닥칠 수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줬다.

그렇다고 몰디브가 빈국이라 생각하면 오해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작년에 2만달러 좀 못 미쳤지만, 구매력 기준 실질 지디피는 1인당 4만달러에 육박한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국제 제재를 받자 올리가르히라 불리는 신흥 부자들이 호화 요트를 비롯해 국외로 빼돌린 재산들을 몰디브에 등록해놨다는 얘기도 있다. 사실 조개껍데기 화폐가 일종의 국제통화로 쓰이던 시절 이 섬을 아랍인들은 ‘돈의 섬’이라 불렀고, 아프리카에서 몰디브 조개껍데기가 돈으로 유통된 까닭에 유럽인들도 그걸 구해다 뿌리며 노예를 사들였다고 한다.

몰디브 정치가 국제 이슈로 부각되는 일은 많지 않았으나, 작년 대선과 현 대통령 무함마드 무이주의 승리는 세계 언론의 뉴스가 됐다. 아시아의 두 거인 중국과 인도의 경쟁이 심해지는 가운데 반인도 친중국을 내세운 무이주가 몰디브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1978년생인 무이주는 영국에서 공부한 토목공학자로 주택부 장관과 말레 시장을 지냈다. 대선에서 무이주는 인도의 영향력을 줄이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옛 독재자 마우문은 정권이 흔들릴 것 같으면 인도군을 불러들여 기사회생하곤 했다. 그러니 국민 사이에 반인도 감정이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무이주 정부가 남아 있던 인도군을 철수시키고 이전 정부가 인도와 맺었던 비밀협정들을 끝내버리자 인도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무이주 내각이 이스라엘인 입국 금지를 결정하자 이스라엘 언론들은 “이제 인도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여행을 가면 된다”고들 썼다. 그 이면에는 몰디브와 이스라엘의 관계뿐 아니라, 몰디브와 인도의 껄끄러운 관계가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에서는 영향력이 거의 없을지 몰라도, 몰디브라는 작은 나라의 역사에는 수천년 인도양의 세계사가 새겨져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 인도와 중국의 경쟁,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의 전쟁 같은 국제사회의 온갖 이슈가 이 섬에서 만난다. 세계는 이처럼 이어져 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신문기자로 오래 일했고,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10년 후 세계사’ 등의 책을 냈다.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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