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콸콸’ 물을 끌어와야 복원? 얕은 물길에도 이야기는 흐른다[허남설 기자의 집동네땅]
청계천은 어디에서 왔을까? 태평로 청계광장 앞에서 동쪽으로 10㎞쯤 흘러 한양대학교 부근에서 중랑천에 합류하는 이 물길의 시작이 그냥 광장일 리는 없다. 중랑천은 청계천을 흡수한 다음 서쪽으로 계속 흘러 서울숲 근처에서 한강과 한줄기가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청계천은 이렇게 중랑천을 거쳐 흘러든 한강에서 온다. 한강 물을 정수해 하루 4만t씩 끌어다 만든 물길이 지금의 청계천이다. 이걸로도 부족해서 주변 지하철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도 하루 2만t씩 청계천에 흘려보낸다.
청계천은 2005년 ‘복원’되었다. 복원, 즉 원래 모습으로 되돌린 것이라면 청계천엔 원래 이렇게 물이 콸콸 흘렀단 말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청계천은 비가 올 때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었다. 평소엔 말라 있거나 물줄기가 끊긴 물웅덩이만 듬성듬성 자리했다. 20세기 초만 해도 고인 물에 오물이 섞여 썩은 내가 진동했다. 콜레라·장티푸스가 유행하자 일제 조선총독부는 청계천을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1907년부터 청계천은 조금씩 복개, 즉 땅 밑에 파묻히기 시작했다.
한강 물 정수해 다시 흘리는 청계천
2005년 ‘복원’됐지만 사실상 ‘창조’
도심 하천 대부분 유량 적은 ‘건천’
복원 과정서도 시민 지지 못 얻어
도로 파헤치고 물 쏟아붓는 대신
실개천으로 ‘시대적 복원’ 의견도
“물길을 건너며 떠올리는 기억들이
지루한 도시를 풍성하게 할 수도”
그럼 지금의 청계천은 ‘복원’이 아니라 사실상 ‘창조’된 물길에 가깝다. 물과 풀숲, 물고기와 왜가리, 그리고 사람이 어우러진 도심 하천은 적어도 21세기 이전에는 존재한 적 없는 청계천이다. 서울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청계천의 잊힌 물길까지 찾겠다고 한다. 각각 인왕산과 북악산에서 시작해 경복궁 근처를 지나 청계천으로 흘러든 백운동천과 옥류동천, 삼청동천이 그것이다. 이 물길도 일제강점기부터 점차 발아래로 사라졌다. 이는 또 어떻게 복원, 아니, 창조할 수 있을까?
몇해 전부터 그 방법을 탐색 중인 허서구란 건축가가 있다. 그의 설계작으로는 마포구 성산동의 옛 석유저장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창조한 ‘문화비축기지’가 널리 알려졌다. 신인도 아니고 나이 일흔을 바라보는 건축가는 요즘 누가 의뢰하지도 않았는데 ‘백운동천 물길공원 계획안’을 그려 백방으로 뛰는 중이다. 구청, 국회의원 선거사무소, 언론사 등 닥치는 대로 찾아갔다. 오세훈 서울시장 앞에서도 직접 발표했다.
허서구의 구상은 백운동천의 발원지인 자하문터널 위쪽 인왕산 자락을 물길과 생태숲, 역사적 의미가 어우러진 공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활약한 김가진(1846~1922)의 땅으로, 창덕궁 중건 후 남은 자재를 하사받아 지었다는 저택 백운장이 있었다. 김가진은 청운동 주변 땅 1만평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빼앗겼는데, 백운장도 그때 함께 넘어갔다. 해방 후 후손의 반환 소송을 이승만과 김구가 지원했다. 한국전쟁 중 그 후손이 납북되며 소송은 중단됐고, 1963년 정부는 한 종교단체에 이 땅을 불하했다. 지하조직 ‘대동단’ 창설 등 김가진이 독립운동을 한 궤적은 뚜렷하다. 하지만 그 이전 친일 이력과 대동단의 좌익 성향 탓인지 그는 아직 서훈을 받지 못했다. 백운장 터에서는 지금 푸른 이끼로 뒤덮인 돌계단과 석축, 김가진이 바위에 직접 새겼다는 ‘白雲洞川(백운동천)’ 각자만이 묵묵히 비운의 근현대사를 전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백운동천은 강희맹(1424~1483)의 시조, 정선(1676~1759)의 화첩에도 등장한다. 허서구는 “땅은 역사”라고 말한다. 백운동천 물길의 재생은 그에게 이런 기록과 서사를 현시대로 다시 잇는 작업이다.
서울시는 백운동천 복원에 관심이 있다. ‘복원’된 청계천은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다 흘려보내는 방식 때문에 종종 ‘거대 콘크리트 어항’이란 비판을 받았다. 서울시는 그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했다. 2~3년에 한 번꼴로 청계천의 원류, 즉 백운동천·옥류동천·삼청동천을 되살려 청계천을 ‘진정한’ 생태하천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2018년 서울시가 펴낸 백운동천 관련 보고서는 꽤 구체적이다. 자하문터널에서 토속촌삼계탕 어귀 약 1.5㎞ 구간은 2020년까지, 그 아래로 서울경찰청에서 세종문화회관 뒷마당을 지나 동화면세점 앞 약 1㎞ 구간은 2035년까지 복원한다는 시간표를 짰다. 물론, 이 계획은 실행되지 않고 보고서로만 남았다.
왜일까? 모두가 ‘복원’을 말하지만, 현실에선 그 상이 될 ‘원래 모습’에도 도통 합의하질 못했다. 물길을 덮어 길을 냈으니 그 길의 포장을 걷어내면 몇십㎝ 아래 물길이 나온다는 건 틀림없다. 문제는 유량이다. 청계천과 똑같이 백운동천도 건천이었다. 기왕 ‘복원’하는 입장에서는 청계천처럼 어디선가 물을 펌프로 끌어와 콸콸 흐르는 천을 만들고 싶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역사학자나 환경주의자가 꼭 시비를 건다. 생태하천을 만들려는 거 아니었냐고, 왜 청계천의 과오를 되풀이하느냐고.
그럼 그냥 물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 천을 만들자는 건가? 그게 백운동천의 원래 모습이니, 어쩌면 ‘진짜’ 복원의 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서울시는 백운동천 복원 과정 중 하나로 2021년 세종문화회관 뒷길인 새문안로9길과 새문안로5가길을 보행자 전용도로로 전환하려고 했다. 멀쩡한 도로에 차량 통행을 막고, 그 도로를 파헤쳐서 기껏 물이 흘러도 그만, 안 흘러도 그만인 물길을 낸다? 시민의 지지를 얻기 쉽지 않다. 그래서 무엇보다 시장 같은 선출직 공무원의 구미를 당기지 못한다.
청계천과 그 지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 36개 하천 약 240㎞ 구간 중 약 30%가 여전히 아스팔트 등으로 덮인 상태다. 지역구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이 복개 하천을 복원하겠다는 공약을 내건다. 그러면서 물이 콸콸 흐르는 조감도로 유권자를 설득한다. 거짓말이다. 대부분 하천의 풍경은 원래 그리 낭만적이지 않았다. 서울에 성공적으로 복원됐다는 하천 중 청계천만 유독 다른 물을 인위적으로 끌어다 쓴 것도 아니다. 그래서 질문이 필요하다. 시가지 근대화 과정에서 잊힌 천을 이제 와서 대체 왜 복원해야 할까?
허서구는 ‘시대적 복원’을 주장한다. 굳이 도로를 파서 물길을 바깥으로 드러내거나, 거창하게 물을 쏟아부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자는 거다. 다시 말해 ‘청계천 모델’을 벗어나야 한다. 원래 물길을 따라가되 현존 도로 표면에 가느다란 실개천으로 조성하자는 게 그의 구상이다. 아장아장 걷는 꼬마도 건널 수 있는 30㎝ 안팎의 얕은 물길. 약간의 집수 작업만 뒷받침되면 그 정도 유량은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어반 브루클릿(urban brooklet)’이라 해서 교토나 코펜하겐 같은 아기자기한 도시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물길이다.
그는 이런 시대적 복원이 현실적이면서 그 물길이 지닌 이야기를 전해 도시를 한결 더 풍성하게 만든다고 본다. 사람들은 작은 물줄기를 살며시 건너 카페로 들어간다. 그 자체로 도시에 흥미로운 행위가 새로 생겨난 셈인데, 그러면서 사람들은 또 이렇게 물을 것이다. 이 물은 대체 어디서 오는 거지? 인왕산, 백운장, 김가진, 청계천 따위의 단어들이 그 물을 따라 흐른다. 우리가 복원하고자, 기억하고자 했던 건 이런 게 아니었던가?
이것이 시민의 동의를 충분히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청계천 모델만 떠올리는 사람에게는 시시해 보일 수 있다. 역사적·환경적 관점에서 사고하는 사람은 이 또한 청계천 모델과 다르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것을 ‘왜’ 하는지에 무게를 두면 방법이야 얼마든지 유연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떠들썩했던 ‘노들섬 글로벌 예술섬’ 공모전에 당선된 영국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은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우리 모두가 지루함이라는 전염병 속에 살고 있다.” 그는 오늘날 도시와 건축에 ‘감정의 기능’이 빠졌다고 비판한다. 물길을 없애 거리의 켜를 심심하게 만든 이 도시에 이 말을 그대로 돌려줄 수 있겠다. 오늘날 우리 도시의 전염병은 이 지루한 길이다. 방법이 뭐든 물길을 되살려보려는 이유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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