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용훈의 한반도톡] 헌법재판소가 대북전단 살포를 허용했다고?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탈북단체가 북쪽으로 대북전단을 살포하고, 이에 반발한 북한이 오물풍선을 남쪽으로 날려 보내는 '풍선전쟁'으로 한반도에 위기감이 가득하지만 정부가 수수방관하고 있다.
구병삼 통일부 대변인은 지난 10일 기자브리핑에서 "전단 등 살포 문제는 표현의 자유 보장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의 취지를 고려하여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서 언급된 '헌법재판소 결정'은 지난해 9월 26일 나온 이른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한 위헌 결정을 일컫는다.
정부가 2020년 대북전단이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이 된다는 판단에 따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해 전단 살포를 못 하게 하자, 대북전단을 날리던 탈북민들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결정문을 들여다보면, 우선 헌재는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국민의 생명·신체의 안전을 보장하고 남북간 긴장을 완화하며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국가의 책무 달성이라는 입법 목적은 정당한 것으로 평가했다.
이는 2016년 2월 대법원이 대북전단 살포행위에 북한이 도발로 대응한다는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전단 살포가 살포지역 및 휴전선을 지나가는 지역 부근에 사는 국민들의 생명, 신체에 '급박하고 심각한 위험'을 발생시킨다는 판결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아울러 헌재는 대북전단 금지조항이 북한의 적대적 조치를 억제하기 위한 조항이라는 점에서 입법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한 수단으로 평가했다.
그런데도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근거는 전단 살포를 일률적으로 금지함으로써 '과잉금지원칙'을 어겼다는 데 있다. 이 법은 전단 살포 행위를 한 사람에게 3년 이하의 징역형이 가능하게 했다.
헌재는 일률적인 금지·처벌 방식이 아니라 '경찰관 직무집행법'(경직법) 제5조 제1항 등을 활용해도 입법 목적을 달성할 것이라고 봤다.
경직법 제5조 1항을 보면, '사람의 생명 또는 신체에 위해를 끼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위험한 사태가 있을 때', 경찰관은 그 장소에 모인 사람에게 경고할 수 있다. 또 그 장소에 있는 사람 등에게 위해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하게 하거나 직접 할 수 있다.
즉, 헌재는 현행법에 따라 경찰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결정문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서처럼 전단을 날리려는 사람은 사전에 관할 경찰서에 시간, 장소, 방법, 수량 등을 신고하고 경찰서장이 국민의 안전에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면 '살포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만약 금지 통고에도 살포를 강행한다면, 경찰이 이를 제지하고 해산을 명령할 수 있도록 한다면 더 나은 수단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대북전단이 국민의 안전을 해칠 가능성이 크지만, 징역형과 같은 과잉처벌은 '표현의 자유' 등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경찰권이나 행정권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셈이다.
그러나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제지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물풍선이 경직법상 제지할 수 있는 근거인 '국민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급박하고 심각한 위협'에 해당한다는 게 명확지 않다고 본다"고 했다.
탈북민단체는 대북전단 살포를 지속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대한 국민의 우려가 커지는데도 정부가 적극적인 대책을 내놓지 않는 것은 사실상 사태를 방관하는 것과 다름없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대북전단의 위험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를 날리는 행위에 대해 과도한 징벌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라며 "표현의 자유니까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주문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의 제일가는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것"이라며 "탈북단체의 대북전단에 북한이 오물풍선으로 대응하면서 국민들의 안위와 재산이 침해되는 상황이라면 정부는 단속이든, 설득이든, 북한과 대화든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jy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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